[한국스포츠의 길을 묻다] ① KBO 정운찬 총재, “한국야구의 시대정신을 논하다”

입력 2018-04-0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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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만난 KBO 정운찬 총재는 “야구의 산업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3년의 임기 동안 기초를 닦겠다. 솔직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인 KBO로 꾸며보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저서 ‘야구예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 총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스포츠동아는 3월 24일 창간 1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체육 전문가를 상대로 종목별 파워피플을 뽑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창간 10돌이 된 스포츠동아는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파워피플로부터 한국 체육의 나아갈 길을 묻는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첫 번째 순서는 프로야구에서 영향력 1위로 선정된 KBO 정운찬 총재다.

KBO 정운찬(71) 총재는 인터뷰가 끝나자 책을 한권 선물했다. ‘야구예찬.’ 부제는 ‘야구바보 정운찬의 야생야사 이야기’였다. 취재를 기사로 옮기기까지 약 1주일의 시간, 틈날 때마다 읽었다. 왜 정 총재가 이 책을 건넸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안에 정 총재의 야구관, 그리고 KBO의 방향성이 들어있었다. 정 총재는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경제학자 출신이다. 이론의 정립이 치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만나 대화해보니 여느 학자 이미지와 다른 면모를 정 총재는 두 가지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야구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낙관론자’라는 것이었다. 정 총재는 “야구에 보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정 총재는 KBO를 ‘개혁’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개혁이란 무엇일까? 구체적 방법론과 지향성을 듣고 싶었다.

야구 경기를 관전하는 정운찬 총재. 스포츠동아DB



● 외국과 교류하고, 현장과 소통하자

-팬으로서 야구와 커미셔너로서의 야구, 어떻게 다르던가?


“두산 팬이었다. 두산에 대해서 많이 안다. 다른 팀은 관심이 많지 않았다. 커미셔너가 되니까 ‘두산 어떻게?’ 소리를 많이 들었다. ‘탈(脫) 두산, 출(出) 두산, 엄정중립’ 할 것이다. 이제는 다른 팀 선수 공부 많이 하고 있다. (어렸을 적) 야구를 해봤고 좋아하지만 행정은 다른 영역이라 많이 만나고, 듣고 있다.”

정 총재는 취임한 뒤 미국, 일본을 순방했다. 스포츠동아는 일의 우선순위를 놓고, 정 총재의 초반 행보를 신문 지면을 통해 지적했다. 정 총재는 “비판이 있어야 발전도 있다. 그래도 외국에서 참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한국을 베이스캠프 삼아서 중국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LA에서는 피터 오말리 전 구단주를 만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야구경기 중 하나가 1977년 LA 다저스-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였다. ‘미스터 옥토버(10월의 사나이)’ 레지 잭슨의 4연타석 홈런이 그때 나왔다. 오말리 전 구단주가 레지 잭슨에게 연락해서 44번 백넘버가 찍힌 사인볼을 보내왔다.”


-커미셔너로서 취임 후 약 100일이 됐고, 개막을 맞았다.

“미국, 일본의 KBO 10개 구단 스프링캠프를 다 돌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런 시간이었다. 커미셔너로서 두려움과 즐거움을 느낀다. 자동 고의4구, 비디오판독 시간 축소 등을 도입했다. 대만, 호주, 일본 커미셔너를 만나 4개국 야구의 협력을 논의했다. 37번째 시즌이다. 1982년 첫 경기 삼성-MBC청룡전이 지금도 기억난다. 2018시즌 개막전(삼성-두산전)을 이승엽 홍보위원과 함께 봤다. 서로 자기 팀 응원하지 말자고 다짐했다(웃음).”

KBO 정운찬 총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야구의 산업화,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

-잠재적 총재 후보군으로 거론되다가 드디어 맡았다. 맡기로 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야구를 좋아하지만 모르니까 못한 것이다. 지금 프로야구는 타고투저다. ‘재미없다’는 말이 있다. 과장됐다는 말도 있지만 (지난해 KBO를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어릴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외로웠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야구가 어려움과 외로움을 달래줬다. 내 일생에서 야구를 빼놓곤 아무 것도 논할 수 없다. (야구 위한) 봉사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야구에 보답하려고 맡았다.”

정 총재는 미국 유학 때 4년에 끝내야 할 박사학위를 받는데 5년 걸렸다. 야구 때문이었다. 5년째는 장학금이 없었다. 취직을 해야 했다. 콜롬비아대학에 가서 인터뷰를 했다. 면접에서 야구 얘기만 했다. 면접 교수가 야구광이라 합격했다. 정 총재는 “그 당시(1970년 중후반) 양키스와 메츠 기록은 다 외울 정도였다. 매일 ‘뉴욕 타임스’에서 야구 기사를 봤다”고 돌이켰다.


-야구의 산업화는 시대정신인 것 같다.

“돈 버는 야구를 해야 한다. 그동안 KBO는 사무총장에 권한이 몰려 있었다. 벅찼을 수 있고, 힘이 한군데 쏠리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행정은 사무총장, 재정은 KBOP 대표이사로 나눴다. 타이틀스폰서(신한은행)로서 연 80억 원 이상을 받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날 때마다 ‘서울시민을 위해 LG, 두산, 넥센이 즐거움을 주는데 보조금은 못 줄망정 대관료를 그리 받아 가면 어찌합니까?’라고 말한다. 내가 부지런하다(웃음).”


-산업화를 위해선 획기적, 공격적, 선제적 사업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경제학에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다. 생산규모를 늘릴수록 단위당 생산비용이 줄어든다. 각 팀 저지를 한군데에 맡기면 제작비용이 줄어든다. 인기 많은 팀들은 단기적으로 보면 납득이 안 갈 것이다. ‘왜 10분의 1로 나눠?’ 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인기 팀에도 도움이 된다. NFL(미 프로풋볼리그)의 기본 경제 컨셉이 그렇다, NFL 입장료 60%는 홈팀이 가져가고, 40%는 중앙(사무국)에 보낸다. 그 돈을 32분의 1로 나눈다. 이러면 32팀 간의 재정 차이가 많이 줄어든다. 약한 팀도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어 선순환이 이뤄진다. 동반성장의 좋은 예다. 그런데 우리는 다 각자 플레이다. 미국에 비해 시장도 약한데 각자 플레이 하면 어떡하나? 내가 임기 3년 동안 어찌 다하겠나? 기초를 닦는 것이다. 솔직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인 KBO로 꾸며보고 싶다.”

KBO 정운찬 총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KBO리그 생태계의 동반성장을 꿈꾼다

-넥센 사태가 심상치 않다.


“넥센타이어 타이틀스폰서 비용 지급이 안 되고 있다. 박준상 대표를 KBO로 오라 해서 설명을 들었다. ‘금년은 무난하다. 알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KBO에 알리겠다’고 하더라. 히어로즈 야구단 주주들 얘기도 들었다.”


-KBO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기능할까?

“사람이 부족하다. 심판까지 100명이라서 놀랐다. 행정인력은 40명도 안 된다. 늘릴 것이다. 그러나 제약이 있다. 사장단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 여론화 시켜서 직원을 더 뽑을 것이다. KBOP가 7명이다. 7명이 무슨 사업을 하나? 더 뽑아야지. 구단에서 사람을 데려오는 논의도 할 것이다. KBO는 엉성한 연방국가다. 10개 구단이 주(州), KBO는 워싱턴 D.C다. 그런데 KBO는 미국 연방정부보다 더 허약하다. (구단들로부터) 회비 받아서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 벌어서 구단에 더 많이 나눠주고, 회비 더 받아 직원 더 뽑는 선순환이 되어야 한다.”


-미국 민주당에 가까운 성향인 듯하다.

“정당에 가입한 적 없다. 선출직에 가본 적도 없다. 머리는 보수인데, 가슴은 진보다(웃음). 경제적으로 케인스적 관점을 지지한다. 굳이 고르자면 미국 민주당 쪽에 가깝다. 효율성과 공정성의 동반성장, 구단과 구단의 동반성장, 구단과 선수의 동반성장을 꿈꾼다. 프리에이전트(FA) 제도가 있다고 해도 아직도 구단의 힘이 세다. KIA 양현종의 연봉이 23억인데, 2군선수가 연봉 2700만원 받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최저임금을 올릴 것이다. 한국야구 규모에 비해 (고액)선수 몸값이 많은 면도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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