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p Of Life, 나의 월드컵] ⑨ 김정남·이회택·김호 감독의 월드컵 추억

입력 2018-05-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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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감독 당시 김정남(왼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한국은 이번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통산 10번째 본선 무대를 밟는다. 데뷔 무대였던 1954년 이후 32년이라는 긴 산고 끝에 1986년 멕시코 대회에 출전한 한국은 이후 아시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성과였다. 멕시코월드컵의 김정남 감독을 비롯해 이회택 감독(1990년 이탈리아) 김호 감독(1994년 미국)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지도자들이다.


지난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장면. 사진제공|FIFA


● 김정남 감독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절”


한국은 일본과의 아시아 최종예선 홈&어웨이 경기에서 모두 이겨(2-1, 1-0) 분위기는 최고였다. 본선에선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가 한조에 묶였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 아르헨티나와 1차전을 가졌다. 톱스타 마라도나가 주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김정남 감독은 “상대 팀 정보가 거의 없어 부담감이 너무 컸다. 그런 탓에 겁을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특히 상대 볼의 위력을 직접 보고 많이 놀랐다고 했다. “상대가 문전으로 크로스 하는 볼은 우리 골키퍼가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 휘었다. 또 강하고, 빨랐다. 수비하기 정말 어려웠다. 경기 당시에는 이런 걸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대회가 끝난 뒤 골키퍼 실수를 지적하면서 이 점을 발견했다.”


마라도나에 대한 기억을 묻자 김 감독은 “진짜 세계적인 선수였다. 우리뿐 아니라 대회에 출전한 모든 국가들이 가장 경계했다. 빠르고, 슈팅 좋고, 시야도 넓었다. 드리블을 하면서 상대 수비수를 한쪽으로 다 모아놓고 동료에게 패스하기도 했고, 상대 수비가 조금 허술하다 싶으면 바로 뚫고 들어갔다. 특별난 선수였다”면서 “우리는 그를 투망식으로 가두려는 작전을 펼쳤다”고 전했다.


경험 부족을 절감한 대회였다. 큰 경기에 뛰어본 선수가 적다보니 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상대 분석이 부족했다. 지원도 열악했다. 스태프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위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불가리아와 이탈리아전이 아쉬웠다. 불가리아전은 해볼만했는데 1-1로 비겼다. 이탈리아전은 우리가 먼저 실점을 하고 1-3에서 2-3까지 따라붙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 감독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 같지만, 그 때 본선 출전으로 경험이 쌓였고, 벌써 9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서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후배들은 쉽게 무너지는 수비에 대한 훈련과 세트피스 훈련을 철저히 해 후회 없는 경기를 했으면 한다”고 응원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경기 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이회택 감독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


1990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의 적수는 없었다. 한국은 1, 2차 예선 합계 9승2무로 무패였고, 29골을 넣은 반면 단 1골만을 허용했다. 이회택 감독도 자신만만했다. 국내에선 16강 진출의 희망이 타올랐고, 외신에서도 복병이라며 한국을 띄웠다. 하지만 지역예선을 압도적으로 통과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 본선에서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3전 전패를 당했다.


이 감독은 졸전의 원인 중 하나로 컨디션 조절 실패를 꼽았다. 개최지인 이탈리아로 너무 늦게 출국한 게 패착이었다. 한국은 벨기에와 1차전이 열리기 1주일 전인 6월5일 출국했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촉박했다. 이 감독은 “일주일이면 시차적응이 충분할 줄 알았다”고 했다. 정보수집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럴수록 빨리 도착해 시차와 분위기를 익혔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선수들의 몸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이 감독은 “정말 최악의 컨디션이었다”고 기억했다. 벨기에에 이어 스페인전도 실력발휘를 못하고 무너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들은 컨디션을 되찾았다. 우루과이와 3차전이 열린 날은 6월21일이었다. 현지에서 보름 정도 적응한 뒤였다. 이 감독은 “늦었지만 선수들의 몸이 올라오니 우루과이전은 해볼만했다. 골 찬스도 여러 번 났고, 이길 수도 있었다. 그 경기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고 했다. 결국 한국은 0-1로 지며 조별예선을 3패로 끝냈다. 하지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감독은 “본선 진출의 연속성이 유지됐다는 점은 성과”라고 했다.


이 감독은 러시아월드컵을 앞둔 후배들에게 “너무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기든 지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그러면 팬들은 실망하지 않고 격려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또 그런 자세로 경기를 하다보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게 된다”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주문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 당시 김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김호 감독 “더운 날씨에 대비한 게 주효”


아시아축구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회는 1994년 미국월드컵이다. 한국은 최종예선에서 ‘도하의 기적’으로 본선행을 거머쥐었다. 세대교체를 이룬 뒤여서 경험 많은 선수가 부족했던 점은 불안했다. 김호 감독은 “베테랑들이 많이 빠져 부담이 많았던 대회”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과 한조에 속한 한국은 2무1패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조 3위에 주어지는 16강 와일드카드를 얻지는 못했지만 가장 준비를 잘했고, 가진 기량을 다 보여줬던 대회였다.


더운 날씨를 대비한 게 주효했다. 한국은 1차전 스페인과 3차전 독일과 텍사스주 댈러스 코튼보울스타디움에서 맞붙었다. 당시 날씨는 섭씨 40도를 넘는 가마솥더위였다. 김 감독은 “더웠지만 습도가 적은 게 다행이었다. 그걸 충분히 분석하고 대비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시 스페인은 핀란드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몬트리올에서 쉬고, 텍사스로 갔고, 우리는 LA를 거쳐 텍사스로 갔다. 날씨를 감안한 동선이었는데, 우리가 컨디션 조절을 위한 선택에서 더 잘했던 것 같다”고 했다. 2주 정도 현지 적응을 통해 1차전을 대비했다.


김 감독은 스페인을 잡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이름값에서는 볼리비아가 약했을지 몰라도 당시 볼리비아엔 에체베리와 산체스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다. 난공불락의 브라질을 최종예선에서 이긴 복병이었다. 김 감독은 “본선에 많이 안 나와 약해 보일지 몰라도 볼리비아는 스페인이나 독일에 못지않은 팀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스페인전에 승부수를 띄웠다. 김 감독은 “스페인이 소문보다는 약해보였다. 두려움보다는 아시아가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는 서정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쉽게도 스페인과 볼리비아에 연속으로 비겼다. 마지막 독일전은 막판 대추격전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추억의 경기다. 전반 3골을 먹은 상황에서 후반 황선홍과 홍명보가 만회골로 2-3까지 따라붙었고, 더위에 지친 독일 선수를 상대로 끝까지 밀어붙였지만 동점골을 뽑지는 못했다.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큰 경기를 많이 못해본 게 아쉬웠다. 스케일이 크지 않았다. 그런 게 차이점이었다”면서도 “아시아 국가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건 큰 수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태용호에 대한 조언으로 김 감독은 “신태용 감독이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선수의 컨디션 조절이나 기용을 어떻게 할 지 세밀하게 준비해서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수 있다”고 전했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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