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원 전 대한항공 감독. 스포츠동아DB
최근 FIVB는 아시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륙별 인구분포를 살폈을 때 매력적인 곳이다. FIVB가 아시아배구에 큰 관심을 갖도록 설득하고, 아시아배구연맹(AVC)에도 많은 창의적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 박기원 전 대한항공 감독(70)이다. 현재 AVC 코치위원회 의장이자, FIVB 기술&지도위원회 10명 중 한 명이다.
요즘 그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젊은 지도자들이 전문적인 배구기술과 지도법을 교육받는 사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당초 예정보다 출발이 늦어져 6일 온라인으로 첫 미팅이 시작됐다. 유럽, 아시아의 젊은 지도자 8명을 대상으로 전문강사들이 교육한다. 3~4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유럽과 태국에서 수강생들이 한데 모여 강의를 듣고 전문가들과 토론도 벌일 예정이다. 박 전 감독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토론 때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도 건넬 계획이다. 2019~2020시즌을 끝으로 V리그 현장에서 물러난 그는 아시아배구의 발전과 한국배구의 외교력을 높이는 데 남은 열정을 쏟고 있다.
가능성만 있었던 이란대표팀을 맡아 아시아 최강으로 육성했던 그는 오랜 지도자 경험과 성공, 실패의 기억을 혼자만 간직하려고 하지 않았다. 외국에서의 경험은 물론이고 V리그 대한항공과 LIG손해보험, 대한민국남자대표팀을 지휘하며 겪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있다. 지도자로서 무엇을 했고, 어떤 선수는 어떻게 지도해서 성공했고, 어떤 팀을 맡았을 때는 왜 실패했는지 등을 솔직하게 기록해 남기려고 한다. 일종의 영업비밀이지만, 다른 후배 지도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공유하고 싶다는 열린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내 머리를 비워야 앞으로 더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이탈리아는 경기 후 감독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를 연맹이 마련해준다. 두 팀 감독이 자연스럽게 배구 얘기를 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이것이 리그 전체에 널리 퍼지도록 했다”며 “지금의 기술은 언젠가는 낡은 것이 된다. 내 것을 고집하지 말고 버려야 더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은 대한민국배구의 국제경쟁력과 외교역량 부족을 한탄한다. 화려했던 과거의 선배들처럼 용감하게 해외에서 개척하고 역량을 과시하는 사례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풍요로운 좁은 곳에서 우리끼리만 경쟁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질 위험에 노출된다. 해외로 눈을 돌리고 마음을 여는 젊은 생각이 필요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