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세계태권도연맹
“러시아 침공으로 힘겨워하는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21일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우크라이나 대표로 출전한 루슬란 가브릴로프(42), 다비드 가브릴로프(13), 예바 가브릴로바(12) 세 가족은 이번 대회 참가 의의와 함께 전쟁으로 시달리는 고국 동포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세 가족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결의에 차 있었다.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다섯 가족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태권도 가족’ 가브릴로프 가족은 2월 24일 러시아 침공으로 확 바뀐 일상을 마주하게 됐다.
아버지 루슬란은 전쟁 발발 후 자신이 운영하던 태권도장을 난민 수용 공간으로 개조해 동포 구제에 나섰다. 아내와 세 아이들도 도장 청소와 정비에 동참했고, 올해로 태권도를 시작한 지 8년째가 된 다비드와 예바는 도장 구석에 있는 작은 방을 활용해 오뎃사에 거주 중인 트레이너와 화상 강의 수업으로 매일 2시간씩 품새를 연마해 왔다.
매일 포탄 소리와 비극적인 소식, 주변의 우려 섞인 연락이 반복됐지만 이들 다섯 가족은 태권도를 향한 열정과 난민 구제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루슬란과 다비드, 예바는 이번 달 초 자동차로 30시간을 달려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해 비자를 발급받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해 전 세계 선수들과 자웅을 겨루게 됐다.
루슬란은 “전쟁으로 일상이 모두 바뀌었고 3월 우크라이나 국내 컵을 비롯한 모든 태권도 대회가 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아내는 막내아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여전히 난민을 돕고 있다”며 “다자녀 가정이라 징집령을 피할 수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잃어 너무 슬프다”고 전했다.
다비드와 예바는 이번 대회에서 공인품새 카뎃(12~14세) 남녀 개인전에 각기 출전한다. 품새를 본격적으로 익힌 지 5년째가 됐고, 2년 전부터 품새 선수로 진로를 결심한 만큼 22일 첫 경기부터 자신들의 기량을 유감없이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다비드와 예바는 “화상 강의로 대회를 준비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세계무대에 꼭 도전장을 내밀고 싶었다”며 “실력을 증명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우크라이나 동포들이 우리를 보고 용기를 얻고, 자신들이 용맹하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가브릴로프 가족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유행하고 있는 그림을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큰 새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나, 개구리는 잡아먹히지 않고자 새의 목을 잡고 버틴 끝에 결국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가브릴로프 가족은 대회를 마치고 26일 귀국한다.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한 뒤, 버스나 차로 약 30시간을 가야 고향에 도착한다. 세 가족이 이번 대회 선전소식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 전쟁으로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고양 I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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