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인삼공사 한송이. 사진제공 | KOVO
밋밋할 뻔했던 V리그 여자부 막판 순위경쟁을 흥미롭게 해준 팀은 KGC인삼공사다. 최근 5연승을 달리며 3위 흥국생명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지난 시즌 연패를 거듭하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9연패를 끊었던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결과다. 모두가 잘 했지만 베테랑 한송이(36)의 역할이 컸다. 중앙에서 새로운 공격옵션을 자리를 잡으면서 KGC인삼공사는 외국인선수 디우프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 했다.
V리그 출범멤버로 16번째 시즌을 맞이한 한송이는 2월25일 IBK기업은행과의 6라운드에서 V리그 3번째인 개인통산 4000공격득점을 기록했다. 한창 때의 나이에는 윙 공격수로 활약하다 이번 시즌 본격적으로 미들블로커로 자리를 잡은 그는 “올해 행복하게 배구하고 있다. 갈수록 배구가 재미있다”고 했다. 장기 중기 단기 인생계획을 세우고 차근히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송이가 모처럼 외박을 나온 날 연락이 닿았다. 한송이는 조곤조곤하게 V리그 16년의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 이렇게 오래 배구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V리그 출범 때가 21살 때였다. 10년 뒤 나를 봤을 때 그때까지 배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여자선수가 서른이 넘으면 은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배구가 재미있기보다는 힘든 때였다. 10년 넘게 버텨낼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다. 선수생활 중에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욕도 많이 먹었다. 내 실력을 타인으로부터 평가받고 그 평가의 나쁜 말들에 많이 힘든 때도 있었다. 이번 시즌에는 ‘이렇게 욕을 먹지 않고 보내는 시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지금은 행복하다. 배구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주위의 칭찬에 행복감을 많이 느꼈다.”
김연경. 스포츠동아DB
●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기억과 김연경의 그늘
“가장 욕을 많이 먹었던 때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중국과의 결승전일 것이다. 결정적 순간에 공격범실을 했는데 그 때문에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 그 전부터 대표팀에서 김연경의 대각에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면서 ‘공격력이 부족하다, 리시브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 뒤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나쁜 이미지가 쌓이다보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비판적으로 보는 팬들은 항상 리시브를 못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선수가 같은 실수를 해도 내가 한 것은 더 커보였다. 그 이미지 때문에 오랫동안 부담이 됐고 의식하다보니 깊은 상처로 남았다.”
KGC인삼공사 한송이. 스포츠동아DB
● 지난 시즌 뒤 배구를 포기할 뻔했다
“지난 시즌 뒤 팀 성적이 나빴고 많이 뛰지도 못했다. ‘이제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때 서남원 감독께서 ‘네가 더 잘 할 수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팀 형편 때문에 이것저것 여러 포지션으로 쓰고 기회도 많이 주지 않아서 미안했다. 1년만 더 해보자’고 말해주셨다. 그때 포기하지 않게 잡아줘서 이처럼 기회가 생겼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 진흙 속의 나를 꺼낸 것은 결국 자부심과 희망
“누가 뭐래도 내 스스로는 배구를 잘하는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항상 부활의 꿈을 갖고 있었다. 내가 먼저 ‘이제는 안 된다’고 포기했으면 진짜 끝났을 텐데 아무 것도 아닌 선수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배구가 재미있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경기의 기대감이 커지고 빨리 경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배구를 더 잘하고 싶어졌다. 코트에만 가면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다. 최근 3년간 진흙 속에서 허덕이다 이제 진흙을 털어내고 다시 나온 느낌이다.”
● 디우프도 질투한 20대 몸매의 비결
“지난 16시즌 동안 변하지 않은 몸매는 체질이다. 이런 몸을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살이 찔까봐 걱정하는 않는다. 제대로 많이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지는 스타일이라 그 것을 더 신경 쓴다. 체중이 빠지지 않기 위해 평소에도 잘 먹고 잘 쉬려고 한다. 대신 다른 선수보다 근육이 없어서 보강운동을 열심히 한다. 야간훈련 때는 쉬지 않고 단 10분이라도 보강운동을 하는 습관을 10년 이상 하고 있다. 이 것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습관적으로 미리 보강운동에 매달린다.”
● 크게 다치지 않았기에 꾸준히 활약했다
“선수생활 동안 2번 발목수술을 받았다. 인대가 끊어졌는데 다행히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재활해서 지금까지 뛰고 있다. 무릎이나 십자인대 어깨 아킬레스건 등은 한 번 다치면 선수생활을 위협하는데 다행히 이런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2007~2008시즌 692득점으로 득점 1위를 한 뒤 발목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다음 시즌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는데 재활이 덜 된 상태에서 경기에 서둘러 나가려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면서 가장 힘든 시즌이자 나쁜 성적(115득점)을 기록했다.”
●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배구도 새로워졌다
“미들블로커로 올해 달라진 것은 마음가짐이다. 이전까지는 내 자리가 아니고 메우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것을 버렸다. 내가 원래 미들블로커였다고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고 싶었다. 윙 공격수의 경험을 살려 가능하다면 공을 더 강하게 때리려고 했다. 양효진이나 한수지 등과는 달리 나만의 방식으로 미들블로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살살 때리는 공격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다부지게 때리는 것이 더 좋다.”
● 내게는 항상 목표가 있다
“우선 KGC인삼공사가 플레이오프에 나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그 다음은 베스트7에 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FA재계약이고 네 번째는 도쿄올림픽 최종엔트리에 들어서 다시 메달에 도전하는 것이다. 다음 시즌이면 통산 5000득점과 200서브가 가능할 것 같다. 기록은 오랜 시간 노력한 것의 보상이자 평생 남는 것이기에 항상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계속 목표를 설정하고 그 것을 이뤄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려고 한다. 단기~중기~장기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상황에 따라 수정하지만 인생에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의지와 열정 그 것을 달성했을 때의 즐거움이 있다.”
팀에서 17살이나 어린 후배들과 함께 뛰면서 한송이는 배구하는 것이 행복한 눈치다. 요즘 경기 때 다부지게 때리는 스파이크를 보면 정말 이기고 싶어 하는 열정이 보인다. 새로운 포지션에서 제2의 전성기를 스스로 만들어낸 한송이의 배구인생은 여전히 한창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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