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로스 울프.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눈물 삼키고 마운드 올라 꿋꿋이 투구
‘할머니, 이제 제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계신가요?’
SK 외국인투수 로스 울프(32)는 23일 새벽 조모의 영면 소식을 들었다. 전화를 끊은 뒤, 비통한 마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청할 수 없었다. 그 날 오전 문학구장에 나온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울프는 이날 선발투수로 나설 예정이었다. 보통 미국선수들은 가족상을 당할 경우, 구단의 동의 하에 고향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울프는 달랐다. SK 코칭스태프가 등판 의사를 타진했지만, “던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경기 전 통역인 SK 김현람 매니저는 올프에게 “할머니께서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덤덤한 표정의 울프는 “You know what?(너 그거 알아?)”이라고 답했다. “할머니께서 병상에 계신 동안엔 앞을 보실 수가 없었어. 내가 던지는 경기 역시 보지 못하셨지. 하지만 이제 하늘나라에 가셨잖아. 그곳에선 내 경기를 지켜보실 수 있지 않을까?” 김 매니저는 뭉클한 마음을 달랬다.
슬픔을 억누르며 등판한 울프는 1회 5실점하며 부진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며 2∼4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경기 후 그는 “1회엔 할머니가 떠올라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팀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울프는 지난 시즌 다승왕(14승) 크리스 세든(요미우리)을 대신해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의 활약 여부는 올 시즌 SK 성적의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문학구장 하늘 어느 한편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할머니에게, 울프는 어떤 투구를 선사할까.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