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캡틴’ 박지성은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숱한 감동을 안겼다. 1.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 신화를 쓴 2002한일월드컵에선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로 기쁨을 줬고, 2. PSV아인트호벤 입단을 통해 유럽무대에 진출했다. 3. 물론 그의 성장 뒤에는 ‘영원한 은사’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 스포츠동아DB
2010년 남아공선 그리스전 풍차 세리머니
맨유서의 7시즌 아시아 최고선수로 활약
14일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33)은 ‘3개의 심장’, ‘3개의 폐’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그라운드를 거침없이 누볐다. 화려하진 않아도 끈기와 열정으로 많은 국민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끔 했다. 숱한 영광이 함께 했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한국축구의 역사였다. 파란만장했던 박지성의 명장면 10선을 추렸다.
● 2002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결승골
조별리그 최종전 상대로 포르투갈을 만났다.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즐비했다. 앞선 2경기서 1승1무. 16강행을 확정하려면 승리가 절실했다. 간절한 염원은 현실이 됐다. 박지성이 중심에 있었다. 후반 25분 이영표가 띄운 볼을 가슴으로 받아 수비를 제친 뒤 골망을 흔들었다. 사상 첫 월드컵 16강이 그의 발끝에서 이뤄졌다.
● 2002년 평가전 시리즈 연속골
2002년 5월, 월드컵을 앞둔 한국은 유럽 강호들과 3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전은 그 중 하이라이트였다. 박지성은 굉장했다. 서귀포에서 열린 잉글랜드전에서 골 맛을 보며 1-1 무승부를 이끌더니, 수원에서 열린 프랑스전(2-3 한국 패)에서도 득점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지성은 “강한 팀을 만나 더욱 강해진 날 찾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2006독일월드컵 프랑스전 동점골
프랑스전의 유쾌한 추억은 4년 뒤 독일에서도 재현됐다. 한국은 조별리그 2번째 상대로 만난 프랑스에 최소 비겨야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었다. ‘믿을 맨’은 역시 박지성이었다. 문전 앞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끝내 탈락의 고배를 들었지만 박지성은 최선을 다했다.
● 2010년 원정 한일전 ‘쉿’ 세리머니
남아공월드컵은 박지성의 3번째 월드컵 도전이었다. 무게감은 달랐다. 부담감이 엄청났다. 주장 완장이 주는 압박은 굉장했다. 당시 대표팀은 본선 직전 일본 사이타마에서 원정 한일전을 치렀다. ‘패할 경우’란 가정이 따랐지만,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아 보였다. 그러나 박지성이 있었다. 파란 물결로 가득 찬 사이타마스타디움에서 그는 결승골을 넣었고, 손가락을 입에 대는 일명 ‘쉿’ 세리머니로 적지를 잠재웠다.
● 2010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 쐐기포
한국은 그리스와의 본선 첫 대결에서 기분 좋은 결과를 엮었다. 박지성은 쐐기골을 책임졌다. 폭발적 드리블 돌파도, 절묘한 슛도 대단했다. “첫 경기 결과가 예선 전체 8할을 좌우 한다‘는 속설은 틀리지 않았다. 박지성과 함께 한국은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일궜다.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득점도 과거 한국선수 중 누구도 이루지 못한 금자탑이었다.
● 2011 아시안컵 한일전, 태극마크 고별무대
박지성은 2011년 1월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일본과의 대회 4강전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당시 조광래호는 결승 진출이 유력한 듯했다. 그러나 연장 후반 15분 극적인 동점골로 2-2를 만든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박지성은 연장까지 120분 풀타임을 뛰었고, A매치 100회 출전 기록(통산 13골)을 세웠다.
●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득점
2004∼2005 UEFA 챔피언스리그. 박지성은 한일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PSV아인트호벤(네덜란드)의 일원이 됐다. 결승 진출의 길목에서 PSV가 마주친 상대는 AC밀란(이탈리아). 원정 4강 1차전에서 0-2로 패한 PSV는 전반 9분 만에 터진 박지성의 선취골로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아쉽게도 PSV는 1-3으로 져 결승행이 좌절됐지만, 이날 득점은 박지성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인도했다.
● 200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출전
박지성은 2007∼2008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 대회 4강전에서 박지성은 엄청난 수비력으로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FC바르셀로나(스페인)를 괴롭혔고, 결승에 올랐다. 환희는 금세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맨유는 승부차기 끝에 첼시(잉글랜드)를 따돌렸지만, 정작 결승무대에 박지성은 없었다. 이듬해 박지성은 드디어 결승전 선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상대는 역시 바르셀로나였고, 돌아온 것은 아쉽게도 패배였다.
● 맨유에서의 7시즌
PSV에서 시즌 2관왕의 기쁨을 만끽한 2005년 5월 29일, 박지성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맨유 사령탑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거친 스코틀랜드 억양의 영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분명한 메시지였다. “반갑다. 난 네가 우리 팀에 왔으면 하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지성은 맨유로 향했다. 아시아선수로 최초였다. 그리고 2012년 2월 첼시전에서 통산 200경기를 뛰었다. 박지성은 아스널, 첼시 등 강호를 상대로 많은 골맛을 봤고, 이른바 ‘강팀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맨유에서의 7시즌 동안 205경기에서 27골을 넣었다.
● 되돌리고픈 QPR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시간을 되돌린다면 QPR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광보다는 아쉬움이 컸던 곳이었다. 2012∼2013시즌 아시아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주장 완장을 차며 벤치의 신임을 샀지만, 박지성도 QPR의 강등 운명을 막을 순 없었다. 그는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QPR에 대한 남다른 단상을 드러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