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해태 김봉연. 스포츠동아DB
“후배들한테 부담을 주고 싶네요. 당연히 100% 우승 전통을 깨지 말아야죠. 11번째 우승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봉연(65) 극동대 교수는 올해 KS를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KIA 타이거즈가 KS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KIA는 해태 시절을 포함해 10차례 KS에 진출해 단 한 차례의 실패도 없이 모조리 우승을 차지하는 신화를 썼다. 해태의 ‘검빨(검정색 하의와 빨강색 상의)’ 유니폼을 입고 1983년 첫 우승 고지에 오른 뒤 1986~1989년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91년과 1993년에 이어 1996~1997년에도 정상에 서는 등 총 9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KIA로 바뀐 뒤에는 2009년에 첫 KS 우승에 성공했다. 10차례 우승은 KBO리그에서 유일하다.
타이거즈 우승 신화를 말할 때 김봉연을 빼놓을 수 없다. 첫 우승을 차지한 1983년 KS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주인공이 바로 김봉연이다. ‘V10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현재 극동대학교 사회체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24일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1983년 우승은 어제처럼 생생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1983년 해태는 새로 부임한 김응룡 감독의 지휘 아래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KS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원년인 1982년 초대 홈런왕에 올랐던 해태의 4번타자 김봉연은 전기리그 우승 후 올스타브레이크 때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머리만 무려 200바늘을 꿰매는 등 얼굴 부위까지 총 314바늘을 꿰매는 중상이었다. 그는 “특히 얼굴을 많이 다쳤다. 코밑 인중 부분에 수술로 흉터가 심하게 남아 이를 감추기 위해 당시 콧수염을 길렀다”고 아픈 기억을 더듬었다.
1983년 한국시리즈 MVP 김봉연. 사진제공|KBO
생사의 기로에 섰던 김봉연은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고 기적처럼 그라운드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1983년 KS 무대에서 콧수염을 휘날리며 원맨쇼를 펼쳤다. 해태는 MBC를 4승1무로 격파하고 우승을 확정했는데, 김봉연은 홈런 1방을 포함해 19타수 9안타(0.474), 8타점을 올려 MVP로 뽑히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썼다.
그는 “나도 그때 내가 그렇게 미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KIA가 2009년 우승하고 8년 만에 다시 우승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도 미치는 선수가 나오기를 바란다”며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기대했다.
그의 몸속엔 여전히 호랑이의 피가 흐르고 있다. KIA가 정규시즌에서 우승하면서 KS 직행 티켓을 따내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플레이오프(PO)에서 두산이 승리하며 KS 파트너가 되는 과정도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두산이 투타에서 많이 올라와 있더라. 만만찮은 상대”라고 진단하면서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팀의 기세가 좋아보여도 결국 위에서 기다리는 팀의 우승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역대 사례를 봐도 그렇지 않느냐”고 말했다.
레전드는 덧붙여 타이거즈 후예들에게 응원과 당부를 전했다. ‘부담감을 떨쳐라’라고 말할 줄 알았지만 그는 “오히려 후배들한테 부담을 주고 싶다”며 웃더니 “타이거즈는 그동안 (KS 무대에) 열 번 올라가 열 번 다 우승했다. 2009년 우승 이후 8년 만에 11번째 우승의 기회가 왔다. 100% 우승 전통을 깨서는 안 된다”면서 “투수는 1이닝만 던진다는 생각으로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고, 타자는 내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해야지 남이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