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긍정’ 유희관의 마이웨이

입력 2016-02-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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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희관은 ‘교과서적’이라는 표현과 대척점에 있는 투수다. 운동선수로 보이지 않는 통통한 몸매, 야수의 송구보다 느린 시속 130km의 저속구를 가지고 있지만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호주 시드니에 이어 일본 미야자키에서 전지훈련 중인 그는 평소 유쾌한 성격 그대로 “세상의 편견을 깨기보다 그것을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두산 유희관은 ‘교과서적’이라는 표현과 대척점에 있는 투수다. 운동선수로 보이지 않는 통통한 몸매, 야수의 송구보다 느린 시속 130km의 저속구를 가지고 있지만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호주 시드니에 이어 일본 미야자키에서 전지훈련 중인 그는 평소 유쾌한 성격 그대로 “세상의 편견을 깨기보다 그것을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7kg 다이어트…새 구종 NO, 내 것에 집중

강훈련·식단조절…예전 밸런스 회복
“변화 주기보다 내 장점 갈고 닦을 것”


KBO리그에서 두산 유희관(30)이 지니는 위상은 독특하다. 우리 풍토에서 이런 투수가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진욱 전 두산 감독의 관용적 육성법과 다양성을 인정한 두산의 팀 문화가 발굴한 작품이다. 어느덧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음에도 유희관은 해마다 ‘이번에는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과 충돌한다. 불신의 시선과 마주하는 유희관의 자세는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낙천적이다. 22일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유희관은 “세상의 편견을 깨기보다 그것을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극복의 차원을 넘어 초탈의 경지인 것이다.


● 유희관은 왜 살을 뺄까?

사람은 살이 빠지면 얼굴에서부터 티가 난다더니 정말 그랬다. 열흘 넘게 탄수화물을 멀리 했고, 해가 지면 굶었다. 달리기와 근력운동까지 병행하니 어느새 몸무게가 7kg이나 줄었다. 룸메이트인 함덕주(21)까지 그 덕분에 5kg이 빠졌다. 유희관이 털어놓은 체중 감량의 이유는 2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는 “컨트롤 투수인데 살이 찌면 밸런스와 체력에 부담이 간다”였다. 유희관은 ‘핀 포인트 컨트롤’로 먹고사는 투수다. 즉, 지극히 미묘한 투구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선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난해 후반기 이것이 흔들렸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체중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투수가 살 얘기가 나오는 현실이 창피한 부분도 있다”는 자성이었다. 그렇지 않은 듯하지만 조금만 주춤해도 비관론이 더 커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고 있기에 그런 빌미조차 주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21일 오릭스전은 감량 후 첫 실전 등판이었는데, 1이닝 무실점으로 경쾌했다. 유희관은 “생각보다 밸런스도 좋고, 공도 잘 간다. 이제 루틴대로만 해나가면 되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말의 무게감

인간은 본성적으로 확장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팽창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할 때가 많다. 투수라면 투구폼을 개조해 스피드를 올리거나, 새 구종을 장착하겠다는 장밋빛 얘기가 쏟아질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유희관은 “해오던 것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를 주다가 내 장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갈고 닦는 것이 지금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기의 손이 뻗칠 수 있는 역량의 범위를 스스로 안다는 것은 또 다른 비범함이다.

유희관은 평소 “신은 공평하다. 스피드를 안 주신 대신 투구감각은 타고 났다”고 말한다. 실제로 공을 다루는 솜씨는 천부적인데, 그 증거로 유희관이 던지는 저속구의 위력은 회전수에 있다. “회전수가 많으니까 볼끝이 좋다. 전광판에 찍히는 스피드보다 체감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고 하더라.” 구단 내부에선 그의 스타일을 인정한지 오래다. 유희관은 “캠프 기간에 김태형 감독님한테는 ‘살찌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며 웃었다. ‘공이 빠르지 못한 투수는 언젠가는 한계가 온다’는 고정관념은 옮겨도, 옮겨도, 또 굴러 내려오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견고하다. 그러나 어느새 유희관은 굴하지 않고 바위산을 움직이고 있다.

미야자키(일본)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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