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리더십] 발굴·소통·지배…실험 즐기는 3색 카리스마

입력 2011-01-28 22:39:38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남자”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 컵 3, 4위 전을 앞둔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 스포츠동아DB

K리그 감독시절 유망주 찾아 육성 일가견
대표팀서도 젊은피 중용 세대교체 이끌어
전술메모-편지 통해 선수들과의 공감 유도
빠른 패스로 경기 장악 스페인축구 롤모델
51년 만의 아시아 정상에 도전했던 한국은 결국 실패했다. 4년 뒤엔 55년만의 정상 도전이 될 것이다. ‘왕의 귀환’도 아쉬움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하지만 결코 실패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100%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조광래호의 도전은 충분한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11 카타르 아시안 컵에서 한국은 완벽에 가까운 세대교체를 이뤘고, 향후 10년을 이끌고 갈 한국축구 주역들의 빠르고 놀라운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 12월 서귀포 전지훈련부터 시작된 조광래호의 아시안 컵 정상 도전. 한 달 반 동안 대표팀을 전담 취재하며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낀 조광래 감독의 리더십을 정리해본다.


● 조광래 어록

“변화 없는 고인 물은 썩기 마련”
-아시안컵 젊은 멤버 대거 발탁하며
“호랑이는 토끼 잡을 때도 최선”
-조별 예선 약체 인도전을 앞두고
“경기 지배 선수들에 희망 봤다”
-4강 일본전 승부차기 패배후


● 태극마크 유치원

감독 조광래 하면 연상되는 게 있다. 바로 남다른 선수 발굴 안목이다. K리그 경남FC를 이끌 때 그의 닉네임은 ‘유치원장’이었다. 그저 그런 선수들을 최고 실력가로 키워내는데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

2014브라질월드컵까지 내다본 시선으로 선수들을 대거 발굴했다. 단순히 아시안 컵 우승이 목표였다면 2010남아공월드컵 당시 멤버들만 선발했어도 충분했겠지만 선택은 달랐다. “변화 없이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며 새로운 변화를 줄기차게 모색했다.

그 결과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젊어졌다. 10대 손흥민(함부르크)은 말할 것도 없고 주전 대부분이 1985년생 미만의 젊은 멤버들로 구성됐다. 아시안 컵에서 스타팅으로 출격한 지동원도 이제 막 성인(20세)이 됐다.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쌍용’ 이청용(볼턴)과 기성용(셀틱)은 빼더라도 89년생 구자철(제주)과 90년생 윤빛가람(경남) 등 K리그에서 농익은 실력을 발휘해온 기대주들을 우량주로 성장시켰다.

도하 현장에서 만난 일본 닛칸스포츠의 시카마 기자는 “올림픽 팀인지, 청소년 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의 세대교체가 빠른 것 같다”고 갈채를 보냈다.

‘새내기’란 표현은 딱히 어울리진 않지만 1986년생 이용래(수원)의 선발도 흥미로웠다. 당초 왼쪽 풀백 이영표(알 힐랄)의 백업으로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새로운 면모를 과시했다. 당초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의 짝으로 점찍은 이는 홍정호(제주)였지만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전지훈련을 통해 이용래가 주전 자리를 확실히 꿰찼다. 새로운 포지션 부여와 함께 긍정의 내부 경쟁까지 한 번에 엮은 셈이다.


● 편지로 소통하는 리더

조 감독은 K리그 시절이나 대표팀이나 훈련장에서 직접 뛰고, 세세히 지시를 하는 모습은 큰 변화가 없었다. 도하 알 와크라 훈련장에서 모자를 눌러쓴 조 감독이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뛰며 굵은 땀을 흘리는 모습은 외국 취재진에게도 독특한 흥밋거리로 다가온 듯 했다.

남다른 소통 방식도 있었다. 상대 팀 전술을 확인한 뒤 세밀한 메모와 영상물을 통해 각자에게 임무를 줬다. 일명 ‘속성 프로그램’이다. 한 경기를 마친 뒤 다음 경기를 준비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맞춤형 교육이다.

중요한 순간, 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도 흥미로웠다. 조 감독이 노트북으로 손수 작성한 편지는 경기 킥오프 직전, 선수들 개개인에 배달된다. ‘여러 분은 아시아의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죠.’조별예선 3차전인 약체 인도와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전달된 편지의 첫 구절이다. 한 수 아래의 팀을 맞이해 자칫 따를 수 있는 자만이란 내부의 적을 경계하고, 마지막까지 선수단에 긴장감을 유발시키려는 의도였다.

당연히 효과는 있었다. 비록 조 1위라는 원하는 결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경기를 펼쳐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 빠르게 지배하는 축구

조 감독이 아시안 컵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한 한 마디가 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데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스코어나 결과는 상관없었다. 조별리그 2차전 상대 호주와 1-1 무승부를 기록했을 때, 이란과 8강전을 승리한 뒤, 심지어 4강 상대 일본에 무릎을 꿇은 뒤에도 항상 조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스스로 재미를 느꼈다. 자랑스럽다”며 거의 비슷한 패턴의 말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변화하는 한국 축구, 세계적인 수준에 발맞춰가는 한국 축구”란 말도 자주 등장했다. 조 감독이 원하는 이상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K리그 감독 시절 때부터 유독 패스 게임을 강조했다. 스포츠동아와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도 조 감독은 “한 템포 빠른 패스로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가 바로 내가 원하는 축구”라고 했다. 스페인 축구가 본질적으로 한국이 따라가야 할 부분이라고도 했다.

물론 조 감독의 원하는 전술과 전략이 100% 이뤄진 것은 아니다. 막 시작됐을 뿐이다. 호주전 이후 “단조로운 공격을 하는 상대를 효율적으로 봉쇄하는데 스리백처럼 좋은 수비는 없다”며 짐짓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시안 컵 엔트리 중 30대가 주축을 이룬 포지션은 수비뿐이다. 대회 준비까지 시간이 부족해 그동안 익숙한 포백을 고수했으나 뉴 페이스 선발이 예고된 만큼 새로운 실험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도하(카타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