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빠로서,아들로서아!고민되네

입력 2009-01-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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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저는 중학교 1학년 딸아이와 약속 하나를 했습니다. 딸아이가 휴대전화가 낡았다고 새로 바꿔달라고 그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 그럼 기말고사에 세 과목 이상 100점 받아와. 그러면 아빠가 휴대전화 사 줄게”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딸아이는 그 전까지 시험에서 80점 이상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빠 진짜 심하다. 제가 어떻게 세 과목이나 100점을 맞아요?”라며 딸애는 말도 안 된다며 툴툴거렸습니다. 저는 “아니 왜 못 맞아? 열심히만 하면 되지∼”하고 살짝 약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딸애가 대뜸 “그럼 강아지도 사줘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는 좀 곤란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어머니가 강아지라면 질색하는 분입니다. 어머니도 제가 퇴근해 들어가면 “애비야. 저 개 좀 어떻게 할 수 없니? 난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집안에 동물하고 있는 게 영 마뜩치 않다∼” 하면서 앓는 소리를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강아지는 다른 집에 보내졌고, 저희 집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강아지를 사달라니 이건 정말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제 표정을 읽었는지 딸애가 “그럼 점수를 좀 낮춰주세요. 90점 어때요”라고 했습니다. 이 녀석이 강아지가 어차피 안 되는 줄 알고 해 본 소리였던 겁니다. 그 말에 알 수 없는 제 승부욕이 발동해서 “그건 안 되지∼ 대신 세 과목 중에 수학이 있으면 강아지 사 줄게” 하고 더 센 조건을 걸었습니다. 이 녀석도 저 못지않게 승부욕이 강한 아이라 “알았어요! 대신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 입니다” 하고 약속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 딸애가 드디어 기말고사를 봤습니다. 저는 건설업을 하기 때문에, 그 때 강릉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낮 12시를 갓 넘기자 제 전화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아빠! 오늘 국어 100점 맞았어요. 잘했죠? 체육도 다 맞을 수 있었는데 아∼ 고쳐서 하나 틀렸어요. 한문 공부도 많이 안 했는데 2개밖에 안 틀렸구요” 이러면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전 일이 워낙 바빴기 때문에 건성으로 ‘그래 그래’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튿날, 어김없이 또 12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오늘은 100점짜리가 하나도 없어요. 아깝게 틀린 게 너무 많은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하기에 “봐주는 게 어딨어? 내일 하루 더 남았으니까 잘 해봐”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래. 100점 세 개가 어디 쉽겠어. 그냥 두 개만 받아와도 휴대전화는 사줘야겠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마(魔)의 12시가 되자 어김없이 제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런데 받자마마 “아빠, 나 수학 100점이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뭐? 수… 수학이 100점이야? 다… 다른 건?”하니까 “과학은 두 개 틀렸고, 미술은 세 개 틀렸고, 그런데 도덕이 100점이다! 아빠∼ 저 휴대전화랑 강아지랑 사주세요∼” 이러는데,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 역시 무모한 약속은 하는 게 아니었는데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 날 저녁 강릉 일이 마무리가 돼서 집에 올라갔는데, 딸애가 졸린 눈을 비비며 자기 시험 본 거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딸애가 옆에서 얘길 해도 웃음이 잘 안 나왔습니다. 약속을 지키자니 어머니가 걸리고 안 지키자니 아빠로서 면목이 안 서고, 딸애가 평균성적을 10점이나 올렸는데도, 제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경기 양주 | 지철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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