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의 야생일기] 야생야사 열혈팬 있기에…프로야구 1억 관중의 힘!

입력 2010-05-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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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스포츠사상 처음 1억 관중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 프로스포츠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1억 관중기록에 난 얼마나 기여했을까? 취재가 아닌 순수 관람으로 100번 안팎 야구장에 갔었던 것 같다. 나름 베이스볼 키드를 자처하고 있는 팬으로 이 정도면 야구 사랑이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야구가 좋아도 1년 내내 야구를 관람하기란 힘든 일. 일과 시간에 쫓기다 보면 한 시즌 10경기 보러 가는 게 힘들 때도 많다.

그러나 홈경기 대부분을 야구장에서 직접 관람하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진짜 열혈 야구팬도 있다. 그들 중 한 명의 깊은 야구사랑을 얼마 전에 만났다.

광주구장에서 KIA 경기가 열릴 때면 몇 시간 전부터 김진수(가명) 씨의 응원소리가 들린다.

KIA 선수들이 타격 연습을 할 때마다 “최희섭 홈런, 이종범 홈런”을 열심히 외친다. 이어 원정팀 선수들이 연습을 시작하면 응원은 야유로 바뀐다. 가끔은 지나치게 원색적인 욕도 들리지만 오래전부터 ‘익숙한’ 타팀 선수들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간다.

선수들의 연습시간은 일반 관중들에게 개방되지 않지만 진수 씨에게는 문제될 게 없다. 몸은 20대 어른이 됐지만 야구장을 찾았던 어린 아이 시절의 순수함을 그대로 갖고 있는 진수 씨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년 여름에 딱 한번 교회에서 수련회를 갈 때만 빼고는 10년 넘게 야구장을 찾으며 이제 선수단 라커룸에도 가끔 들어갈 수 있게 됐다. KIA 선수들도 종종 진수 씨를 라커로 불러 함께 식사할 정도로 반긴다.



경기시작 시간이 다가오면 진수 씨도 덩달아 바빠진다. 텅 빈 관중석에 홀로 앉아 목청을 가다듬고는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간다. 시작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으면 될 것을 왜 매일 그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갈까?

사정을 알아보니 진수 씨는 그 때마다 매표소로 달려가 어린이표를 사서 정식으로 관중석에 입장하고 있었다. 공짜로 야구장에 들어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꼭 잊지 않고 어린이표를 산다.

십수 년 전 처음 야구장에 온 날 손에 쥐었던 어린이표. 몸은 컸지만 마음은 그 때와 똑같은 진수 씨는 그렇게 매번 어린이표를 들고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진수 씨는 광주구장에서 목청 높여 외친다. 볼카운트 0-3에서도 ‘삼구삼진’을 외치지만 선수들과 관중 모두 저절로 즐거워지는 뜨거운 응원이다.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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