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없는 편지] 롯데 캡틴 조성환 “하늘나라의 임수혁 선배님에게 보냅니다”

입력 2010-10-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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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하늘 높이 날아 간 ‘영원한 부산 갈매기’ 임수혁이 그라운드 위에 쓰러졌을 때, 조성환은 타석에 있었다. 10년 간 캡틴으로 성장한 조성환은 임수혁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로, ‘우승’을 약속했다. 스포츠동아DB

2000년 4월 18일 잠실 LG전. 당시 서른한 살이던 롯데 2루주자 임수혁은 갑자기 쓰러진 뒤 의식불명에 빠졌다. 뇌사 판정을 받은 그는 간절한 주변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10년에 걸친 투병 끝에 올 2월 세상을 떠났다.

10년이란 세월 속에 그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현역 선수들도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하늘에 있는 그에게, 현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주장 조성환(34)이 그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스포츠동아 지면을 통해 전달한다. 임수혁이 쓰러지던 그 순간, 잠실구장 대기타석에서 준비 중이던 선수가 당시 프로 2년차 조성환이었다.

선배님께.

많은 시간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선배님은 언제나 제게 ‘밝고 유쾌하신 큰형님’으로 기억됩니다. 언제나 후배들에게 밝은 얼굴로 조언해주시던 모습,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2루에서 쓰러지셨을 때 거의 모든 스태프, 선수들이 선배님 곁으로 달려갔지요. 아마 유일하게 달려가지 않은 사람이 저일 겁니다. 저도 모르게 다리가 전혀 움직여지질 않았어요. 제가 달려갔다고 상황이 바뀌진 않았겠지만, 제게 그 순간은 무거운 짐처럼 남아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억합니다. 병상에 누워계실 때 후배들이 찾아뵈면, “동생들 왔다”는 아버님 말씀에 선배님은 눈을 껌뻑이셨지요. 전 그때 선배님께서 우리를 알아보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후배들이 매년 가을이면 선배님을 위해 일일호프를 여는 것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려는 단순한 목적이 아닙니다. 보다 더 많은 팬들의 가슴 속에 선배님을 기억하게 하고, 저희들도 그 마음 변치 않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올해도 물론 또 해야지요.

선배님,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입니다. 올해 초, 사이판 전지훈련 때 선배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이런 내용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올시즌 우승을 목표로 한 만큼, 시즌이 끝난 뒤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고 선배님께 인사드리러 가겠다’고요.

다행히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겼다고 방심하지도, 졌다고 좌절하지도 않겠습니다. 선배님이 흘리신 땀을 기억하겠습니다. 남은 경기에서도 우리 후배들은 최선을 다해 우승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선배님께서도 하늘에서 저희 모습을 보고 계시겠지요.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습니다. 흐뭇하게 웃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선배님, 시즌 끝나고 찾아뵙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2010년 10월 1일. 후배 조성환 올림

정리·부산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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