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37세 강동우가 야구를 하는 이유

입력 2011-07-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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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강동우는 올 시즌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야구를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뿐이다. 어머니가 식도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한동안 의기소침했지만 다행히 오진으로 밝혀져 시름을 덜었다. 스포츠동아DB.

한화 강동우는 올 시즌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야구를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뿐이다. 어머니가 식도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한동안 의기소침했지만 다행히 오진으로 밝혀져 시름을 덜었다. 스포츠동아DB.

홀로 삼형제 키우신 어머니 식도암 판정…눈앞이 캄캄
몇번의 재검끝에 “암 아니다” 확진…새로 태어난 기분

친정팀 킬러? 부상·트레이드 속에서 싹튼 오기의 힘
매경기 안타쳐 어머니께 기쁨드리는게 나의 최선이다

“식도암입니다.” 검진을 마친 의사의 한마디. 순간 가슴에 큰 구멍이 나는 느낌이었다. 1998년 플레이오프(PO)에서 펜스에 부딪혀 들것에 실려 나갈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어머니를 마주한 강동우(37·한화)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시범경기가 한창이던 올 봄의 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태어난 2011시즌

강동우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워낙 어릴 때 사별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어머니 민경숙(65) 씨는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삼형제를 키웠다. 그 중에서도 강동우는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였다. “아마 어머니께서 안계셨다면 야구선수 강동우도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최후의 신인 3할타자로 맹활약했던 1998년 겨울. PO에서 당한 왼쪽 정강이뼈 골절로 소리 없이 울부짖던 아들을 지켜주던 어머니였다. 병원에서 보낸 석 달의 시간, 어머니는 아들보다 더 시린 가슴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아직 제 짝을 찾지 못한 막내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향 대구를 떠나 대전에 새 터를 잡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강동우는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 내가 그 분 곁에 있어야 할 시기임을….’

백방으로 뛰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눈가에서도 맑은 효심이 떨어졌다. 시범경기에서의 부진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다시 한번 받았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결국 담당의사는 암이 아니라는 확진을 내렸다.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을 못합니다. 어머니 인생뿐만이 아니에요. 저 역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어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머니가 다시 곁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들이 “회춘했다”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친정팀 킬러, 그 뒤에 감춰진 효심

강동우는 10일까지 팀 내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78)에 출장하며 1998·2009년 세운 개인 시즌 최다홈런기록(10개)과 타이를 이루고 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례적인 일이다. 득점권 타율(0.344·7위) 역시 높다. 하지만 그는 “아직 멀었다. 1번타자로서 타율(0.264)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며 몸을 낮췄다.

강동우의 성공 비결에 대해 한대화 감독은 “하체 사용”을, 강석천 타격코치는 “노련미가 더해진 기술”을 꼽는다. 정작 본인은 이론보다 “승부욕”을 더 강조한다. “잘 나갈 때 다쳐서 거의 2년을 쉬어보기도 하고, 올해 어머니 일도 겪어보니 알겠더라고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요…. 내일은 없어요. 오늘 당장의 훈련, 오늘 당장의 경기에서 근성을 발휘해야 돼요. 나이 많다고 후배들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강동우의 올 시즌 상대팀별 타율을 살펴보면 1위가 두산(0.317), 2위가 삼성(0.302), 3위가 KIA(0.281)다. 이들은 모두 강동우의 친정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한화로 오기 바로 직전(2008년) 소속팀인 KIA전에서는 무려 4개의 홈런을 집중시켰다. 부상과 트레이드의 풍파 속에 싹튼 그의 오기를 역설하는 기록들이다. 그리고 친정팀 킬러의 서슬 퍼런 배트 뒤에는 따뜻한 효심이 감춰져 있다.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아들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시는 거예요. 한번은 해외전지훈련 갔다 오면서 좋은 가방을 하나 사다드린 적이 있는데, 워낙 어렵게 자식들 키우시느라 검소함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하고 다니지도 않으시더라고요. 매일 경기에 나가고, 안타 쳐서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37세 베테랑에게 ‘야구’와 ‘어머니’는 같은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대전|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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