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긴장한 타자, 자기 헬멧 치고 있었다”

입력 2012-08-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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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가슴 선수와 강심장 선수의 차이

100승 투수 김상진 번트수비엔 쩔쩔
“번트 타구만 보면 부정적 생각이…”

현역 시절 배짱 소문난 김기태 감독
“만루찬스, 당연히 때린다 생각한다”

긍정 마인드가 새가슴·강심장 결정

찬스에 약한 선수를 ‘새가슴’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잘하다가도 유난히 위기 또는 찬스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선수가 있다. 스타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구분하는 기준은 담력 또는 가슴의 크기다. 왜 찬스에 강하고, 반대로 약한 선수가 나오는 것일까.


● 만루를 무서워하는 타자와 ‘앗 뜨거 패스’

“2사 1·2루. 대기타석에선 우리 포수가 준비했다. 렉가드(다리를 보호하는 장비)를 풀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공수교대 때 빨리 장비를 갖추기 위해서라고 하더라. 그럼 타석에 있는 우리 타자가 아웃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경기를 앞두고 어느 팀 감독과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그 감독은 찬스를 무서워하는 타자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다른 팀 감독도 맞장구를 쳤다. “‘앗 뜨거 패스’란 말이 있다. 자기에게 패스가 오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그냥 동료에게 공을 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야구에서도 자기에게 오는 찬스를 피하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많다.”

현역시절 누구보다 배짱이 좋았던 LG 김기태 감독.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가면 1루주자부터 봤다. 3루주자를 불러들이는 것은 당연했고, 어떻게 하면 1루주자까지 불러들일지 그것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앞에 주자가 모이는 찬스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딱 맞아떨어지면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과 전혀 다른 마인드를 가진 선수도 있다. 만루가 되면 마운드가 눈에 들어오고, 투수 땅볼을 칠 것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먼저 그려진다는 선수도 있다. 결국 그는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만루 상황이 두려운 선수는 상대 투수와의 대결이 버겁다. 상황이 주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른다. 그저 공을 맞히기에 급급한 스윙이다. 물론 결과도 나쁘다. 100승 투수 김상진(전 OB)과 롯데 우승의 주역 염종석은 유난히 번트수비를 못했다. 번트타구가 오면 부정적 생각부터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루서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투수도 마찬가지다. 부정적 생각이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 선수는 누구나 긴장한다!

어느 선수나 담력을 테스트 받는 상황은 온다. LG의 영구결번 투수 김용수가 털어놓은 에피소드. 199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전까지 구원투수로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한국시리즈, 더군다나 1차전이라 부담감이 상당했다. “마운드에 섰는데 양쪽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른 선수들이 볼까봐 걱정하던 차에 어디선가 ‘딱딱딱’ 하는 소리가 났다. 타석에 선 삼성 타자가 배트를 치켜들었는데, 긴장해서 몸이 떨렸는지 방망이로 자신의 헬멧을 치고 있었다. ‘나보다 저 친구가 더 떨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김용수는 두려움을 이기고 2승을 올려 그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장성호(전 KIA·현 한화)는 황당한 플레이를 했다. 대타로 출장하면서 배트에 스윙연습용 링을 낀 채 타석에 들어섰다. 주심이 그 모습을 보고 지적해준 뒤에야 알았을 만큼 그는 긴장했다.


● 긴장을 이기는 것은 선수 자신이다!

1991년 한일슈퍼게임. 도쿄돔에서 벌어진 개막전 때 우리 선수들 대부분은 정상이 아니었다. 실력이 앞선 일본프로대표팀과의 첫 경기인데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돔구장의 화려한 시설에 모두들 몸이 붕 떠있었다. 그 시리즈에서 체면을 구긴 한대화(당시 해태)의 회고. “프리배팅 때 돔구장 스탠드에 펑펑 홈런 타구가 꽂히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좋은 시설에 주눅도 들었고, 어깨에 힘까지 들어갔으니 좋은 스윙이 될 리 없었다.”

1999년 슈퍼게임에 참가한 양준혁(당시 해태)도 긴장했다. 3차전까지 무안타를 친 뒤 같은 왼손타자 김기태(당시 삼성)에게 조언을 구했다. 슈퍼게임을 이미 경험한 김기태의 대답은 이랬다. “여기서 안타 못 친다고 연봉이 깎이지 않는다. 편하게 해라.” 양준혁은 4차전에서 홈런 포함 2안타를 친 뒤 “하니까 되네요”라고 했다. 누구나 긴장은 한다. 선수라면 피할 수 없다. 그것을 이겨내느냐, 아니냐는 선수의 마음에 달렸다. 단지 부정적 생각과 긍정적 생각, 어느 것이 먼저냐의 차이다.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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