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서울)는 베테랑의 관록과 탁월한 체격조건을 앞세워 2년 만에 대표팀 재승선을 노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2002한일월드컵 막내로 쟁쟁한 선배들을 도와 4강 신화를 완성했다. 2010남아공월드컵 때는 든든한 중간 역할을 하며 후배들을 이끌고 원정 첫 16강 금자탑을 쌓았다. 주인공은 차두리(33·FC서울)다. 대표팀에서 잠시 잊혀졌던 차두리가 2년 만에 태극마크에 도전한다. 축구대표팀은 내년 1월 3주 동안 브라질,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한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시즌 중이라 참가할 수 없어 국내파 옥석 가리기의 성격을 지닌다. 차두리 발탁여부에 큰 관심이 모아진다.
● 잊혀졌던 2년
차두리는 조광래 감독 시절이던 2011년 11월15일 레바논과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 원정 이후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한국은 레바논에 1-2 충격의 패배를 당했고, 조 감독은 경질됐다. 이어 지휘봉를 잡은 최강희 감독은 차두리를 외면했다. 한국이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뒤 올 6월 사령탑이 된 홍명보 감독도 차두리를 뽑지 않았다. 홍명보호에서는 ‘뉴페이스’ 이용(26·울산 현대)이 오른쪽 주전 수비수로 자리를 굳혔다.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 김창수(28·가시와 레이솔)는 발목 골절로 현재 재활 중이다. 내년 1월 전훈 참가도 힘들다.
● 유럽과 정면대결 가능
차두리에게는 내년 1월 전훈이 월드컵 출전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홍 감독도 차두리 발탁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왜 차두리 카드가 급부상한 것일까. 한국은 러시아와 벨기에, 알제리와 H조에 속했다. 알제리는 무늬만 아프리카일뿐 대표팀 절반이 프랑스 출신이다. 한국은 유럽 3팀을 상대하는 셈이다. 차두리는 유럽을 상대로 정면대결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자원이다. 폭발적인 파워와 스피드로 ‘차미네이터’로 불린다. 공격 본능도 강하다. 적진 깊숙한 지역까지 들어가 상대 수비를 괴롭힌다.
선이 굵고 다소 투박한 차두리 스타일이 홍명보호와 맞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차두리가 올 시즌 FC서울에서 주전으로 뛰었다는 점을 참고해야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은 짧은 패스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축구를 구사한다. 대표팀과 비슷하다. 차두리가 올 3월 서울 유니폼을 입을 때도 색깔이 안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기우였다. 차두리는 실력으로 증명했다. 올 시즌 정규리그 30경기 3도움으로 프로축구대상 베스트11 오른쪽 수비 최종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국제무대에서 더 경쟁력을 발휘했다. 서울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차두리도 한 몫 톡톡히 했다.
● 풍부한 경험, 팀 분위기 이끌 적임자
홍 감독 코멘트에서도 차두리 선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홍 감독은 지난 달 스위스-러시아와 평가전을 마친 뒤 “본선에 대비해 국내와 해외, 베테랑까지 팀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조 추첨을 마치고 12일 돌아와서도 “경험적인 면과 관계 등을 고려해 (내년 1월 전훈멤버를) 선발할 것이다”고 했다. 스위스-러시아 전에 나선 대표팀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4.3세였다. 이 중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는 정성룡(수원), 이청용(볼턴), 기성용(선덜랜드) 3명뿐이다.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에서는 팀의 중심을 잡아 줄 노련한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홍 감독 판단이다.
차두리가 첫 손에 꼽힌다. 월드컵 경험은 차두리를 따라갈 선수가 없다. 차두리는 현 대표팀 멤버와도 각별하다. 기성용과는 셀틱(스코틀랜드) 시절 한솥밥을 먹은 절친. 기성용은 차두리 덕분에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손흥민(레버쿠젠)은 차두리를 삼촌이라 부른다. 독일이 제2의 고향인 차두리는 구자철(볼프스부르크),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등 분데스리거와도 가깝다. 유럽파와만 친한 게 아니다. 서울 선수들이 가장 잘 따르는 선배다. 나이와 소속을 따지지 않고 누구와도 격의 없이 지낼 수 있고, 벤치에서도 후배들을 격려하며 팀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선수가 차두리다.
차두리가 올 3월 서울에 입단할 때 최용수 감독과 ‘차붐 가(家)’의 대를 이은 인연이 큰 화제였다. 차두리 아버지 차범근 SBS해설위원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지휘봉을 잡았을 때 최 감독은 주전 스트라이커였다. 차두리와 최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 때 ‘방졸’과 ‘방장’이었다. 차두리는 홍 감독과도 똑같은 인연으로 얽혀 있다. 홍 감독은 1998프랑스월드컵 간판수비수로 차 위원과 함께 했고, 2002한일월드컵 주장으로 차두리와 한솥밥을 먹었다. 차두리가 소속 팀에 이어 대표팀에서도 또 한 번 11년 전 ‘형’을 ‘감독’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