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할리우드 배우 오순택, 연극에 깊이를 더하다

입력 2014-07-02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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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누빈 원조 ‘월드스타’다. “연기의 밀도와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배우 오순택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20대보다 더 뜨겁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 주연 오순택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최후의 카운트다운’ 출연 등
60∼70년대 할리우드·브로드웨이 주조연 활동
제자 연출가 이윤택 제안에 망설임 없이 무대로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 몰두 “극적 지성 담겠다”


말보다 행동이다.

80대 노스승을 위해 모인 제자가 37명이다. 극단에서, 강단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연기하는’ 제자들은 스승이자 선배인 배우 오순택(81)을 위해 모였다. 이미 강단을 떠났지만 여전히 잊지 못하는 스승에게 건네는 헌사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선배를 위한 헌정의 무대를 열었다.

12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초연하는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연은 오순택, 나머지 출연진은 그가 가르친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자들이 채웠다. 연출은 오순택의 첫 제자인 이윤택이 맡았다. 이들은 1972년 서울예대에서 초빙교수와 신입생으로 만났던 사이다.

“참 인연이다.”

공연을 앞두고 충무아트홀 연습실에서 만난 오순택은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로 봐선 마지막 작품이지 싶다. 처음 만난 제자(이윤택)가 작품 하나 해보자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하자면 하는 거지.(웃음) 내 나이에 고맙잖나.”

팔순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역’인 오순택은 1960∼1970년대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한국인 배우였다. 지금은 흔한 ‘월드스타’란 수식어로 가장 먼저 불려야 마땅하다. 영화 ‘007’ 시리즈에 조연으로 참여한 유일한 한국 배우도 그다. 1974년의 일이다.

오순택이 하버드 로스쿨 입학을 위해 도미한 때는 1963년. “부산에서 화물선 얻어 타고 미국 가던 시절” 그는 “비행기 타고 뉴욕으로 유학 간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형 덕분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외교 관저 비서였던 형의 도움으로 오순택 손에는 뉴욕행 비행기 티켓과 15달러가 주어졌다. 공부하길 바랐던 가족의 바람과 달리 뉴욕에서 그는 기다렸다는 듯 진로를 바꿨다. 연기였다. ‘미국에 가기 전부터 어떤 작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물으니 그는 “허허허” 웃었다.

“재능이 없는 대신 운이 좋았지.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다시 브로드웨이로 갔다. 한국 배우 중 브로드웨이 주연으로 서 본 이가 있을까.”

그의 표현대로라면 할리우드에서 오순택은 “문제적 조연을 많이” 했다. 로저 무어의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부터 커트 더글라스와 했던 ‘최후의 카운트다운’ 같은 영화다. ABC가 방송한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도 출연했다. 당시 미국 TV드라마에 동양인 배우의 출연은 이색적이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굶어 죽어도 동양인 정원사나 하인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성공을 불렀다.

한국으로 돌아온 건 10여년 전. 그는 “옛날이라 잊었다”면서도 “나도 인간이라 계산을 했던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돌이켰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를 그는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 개막을 앞두고 요즘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에 몰두한다. “한창 땐 예닐곱 시간도 거뜬했다”지만 지금은 “나이 탓인지, 체력 탓인지 연기의 밀도와 열기가 내 바람보다 크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정점에 이른 배우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그의 작품 ‘리어왕’을 토대로 새롭게 창조해낸 이야기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는 오순택의 지금과 맞닿아 있다. 1989년 세상을 뜬 영국의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를 여전히 추억하며 그의 자서전을 벌써 세 번째 읽고 있는 그는 “젊은 배우들은 극적 지성이 조금 부족한 듯 보여 아쉽다”는 말도 조심스레 꺼냈다.

“왜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이 없을까. 지금 세계에서 가장 연기 잘 하는 배우를 찾고, 관찰하는 일도 필요하다. 연극과 영화에 깊이를 더해서 말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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