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한국야구대표팀 김인식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결승으로 이끈 김인식 감독이 이제야 솔직하게 털어놨다. 노(老) 감독은 반드시 이겨야하는 국가대항전을 앞두고 ‘전력이 약하다’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심 ‘8강만 가자’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만 해도 ‘위대한 도전’이라는 표현을 쓰며 승리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프리미어12는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었다.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부상과 불미스러운 일 등으로 선수들이 대거 빠지면서 역대 대표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팀 경험이 풍부한 김 감독의 눈에도 희망보다는 불안이 앞섰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한국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김 감독은 2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공식훈련에 모습을 드러낸 뒤 “야구는 끝까지 모른다. 강팀인 일본이 우리에게 질 것이라고 예상했겠는가. 강팀이 약팀에게 질 수 있는 게, 그게 야구”라며 미소를 지었다.
단기전은 변수가 많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기 전까지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 야구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 이유다. 김 감독도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갈 수도 있고,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될 수도 있는 게 야구”라며 “선수들이 대회를 치르면서 점점 좋아졌다. 내가 굳이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더라. 일본전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 말처럼 한국 대표팀은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패했지만 대만에서 열린 조별 예선 도미니카공화국전(11일)부터 조금씩 꼬였던 실타래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승리가 쌓이면서 선수들은 더더욱 하나가 됐다. 살인적 일정에 피로가 쌓여 지칠 대로 지쳐있고, 저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었지만 가슴팍에 달린 태극마크를 위해 기꺼이 방망이를 잡고, 글러브를 꼈다.
프리미어12 한국야구대표팀.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목표였던 8강을 지나 4강에 올랐고,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까지 무찌른 선수단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고다. 김현수(27·두산)는 “대표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처음부터 좋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재호(30·두산)도 “재미있다. 선수들끼리 모여서 밥 먹으면서 얘기도 많이 한다. 또 올 수 있으면 오고 싶다”고 즐거워했다.
정근우(33·한화), 이대호(33·소프트뱅크)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주장 정근우는 “내가 잘 했다기보다 후배들이 잘 해줘서 좋은 결과를 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선수단을 하나로 만드는 데 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이대호도 동참했다. 허경민(25·두산)은 “대표팀에 와서 (이)대호 형과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는데 정말 살갑게 대해주셨다.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겠는가. 대표팀에 온 게 참 좋다”며 웃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비록 대회 전 전망은 밝지 못했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대표팀은 힘을 냈다. 대회 개최국 일본의 꼼수로 인한 악조건 속에서도 기적을 일궈냈다. 선수 개개인은 약했을 수 있지만 ‘팀 코리아’는 강했다.
도쿄(일본) |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