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일본 때문에 힘들었고 일본 덕분에 우승했다”

입력 2015-11-23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광의 얼굴들. 한국이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 12’ 미국과의 결승에서 8-0으로 이겨 대회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우승 확정 직후 선수단 전원이 승자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어록으로 본 ‘국민감독’ 김인식

“오타니? 부럽더라” 자나깨나 한국 걱정
정대현·정근우·이대호 등 최고참 예우
“고쿠보 감독, 경험이 없었을 뿐” 위로도


김인식(68·사진) 감독이 또 한 번 한국야구사에 ‘기적’을 썼다. 김 감독은 역대 최약체라고 평가받았던 대표팀을 이끌고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 12’에서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이 다시 한 번 세계야구의 최정상 자리에 서자 “김인식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적재적소에 선수를 투입하는 빼어난 용병술과 더불어 선수단을 따뜻하게 감쌀 줄 아는 넓은 아량을 지닌 명장이 만들어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 “국가대표 감독? 뜨거운 가슴, 냉철한 머리, 따뜻한 배려가 필요”

김인식 감독은 대회 내내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단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를 들었을 때 뭉클하지 않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라며 “나 역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팀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가대표팀을 이끌 후임 사령탑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은 나라를 위하는 뜨거운 가슴, 경기를 풀어가는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선수들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는 반드시 리더가 필요하다”

김인식 감독이 이번 대회가 끝난 뒤 정대현(롯데), 정근우(한화), 이대호(소프트뱅크)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표팀을 꾸리면서 투수조 최고참으로 정대현, 야수조 최고참으로 정근우와 이대호를 선택했다. 정근우는 이번 대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선수단을 이끌었다. 김 감독은 “(정)대현이가 말은 많지 않지만 대표팀 경험은 가장 많다. 투수조 최고참으로 묵묵하게 후배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투수진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본다”며 “야수 쪽에서는 (정)근우와 (이)대호가 잘해줬다. 대표팀에는 반드시 리더가 필요하다. 신구조화를 잘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도 오타니 같은 투수가 나와야”

한국은 이번 프리미어 12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일본 오타니 쇼헤이(니혼햄)의 벽은 결국 넘지 못했다. 한국은 지금부터 10년간 ‘사무라이 재팬’을 이끌 오타니를 공략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았다. 더 뼈아팠던 부분은 한국에 오타니 같은 투수가 없다는 현실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에도 6∼7회까지 경기를 이끌어줄 선발이 있어야 하는데…”라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오타니가 던지는 것을 보니까 어떤 면에서 부럽더라. 한국에 국가대표 에이스가 없어졌다. 한국에도 오타니 같은 투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첫 경기 지고 나서 힘들었다”

김인식 감독은 21일 우승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대회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경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김 감독은 “일본전”이라고 했다. 한국은 8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0-5로 완패했다. 개막전 패배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지만, 김 감독은 “첫 경기 지고 나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 19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선 9회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강호 일본과 힘겹게 승부했던 한국은 결승에서 만난 미국이 상대적으로 편했다. 김 감독은 “일본 때문에 가장 힘들었고, 일본 덕분에 우승했다”는 말로 웃음을 안겼다.


“고쿠보 감독, 앞으로 좋은 지도자 될 것”

일본 고쿠보 히로키 감독은 지도자 경험 없이 국가대표 전임감독을 맡았다. B조 예선에서 5연승하며 승승장구했지만, 19일 한국과의 준결승전에서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국 타선을 1안타로 막고 있던 선발 오타니를 8회 교체해버린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노리모토 다카히로(라쿠텐)는 무너졌고, 일본은 3-0으로 앞서다 9회 3-4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김 감독은 이날 경기가 끝나고 일본 기자들에게 ‘만약 당신이 일본 감독이었다면 오타니를 바꿨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다음날 일본 매체는 ‘고쿠보 감독의 실패’라는 제목으로 초보 사령탑을 질책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내가 일본팀 내부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아직 경험이 없는 감독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쿠보 감독은 이번 실패가 밑거름이 돼 나중에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다”고 덕담을 건넸다.

도쿄 |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