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터공부’ 권영민, ‘솔선수범’ 문성민

입력 2015-12-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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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문성민(왼쪽)이 8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원정경기 도중 상대 블로킹을 피해 연타를 시도하고 있다. 구미|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V리그 베테랑의 책임감

KB손해보험 권영민, 전성기 때 영상 분석
낮아진 토스 타점 문제점 파악·해법 모색

현대캐피탈 문성민도 팀 리더로서 책임감
쉬는 날에도 훈련…다른 선수들까지 동참

V리그의 벤치 토크 때 자주 듣는 단어가 있다. ‘책임’이다. 코트 위의 6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배구에선 유난히 책임이 강조된다. 리시버는 상대의 위협적인 서브에 책임을 가지고 받아내 세터에게 올려줘야 한다. 세터는 공격수가 가장 때리기 좋게 연결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이를 반드시 득점으로 만드는 책임은 공격수가 진다.

‘2015∼2016 NH농협 V리그’에선 새로운 배구 브랜드로 이슈 몰이에 성공한 현대캐피탈 문성민(29)의 변신이 눈에 띈다. 주장이자, 팀의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솔선수범으로 보여주며 동료들의 생각을 바꿨다. 3라운드 반전의 계기를 잡은 KB손해보험도 주전 세터 권영민(35)의 자각으로 희망을 보고 있다. 권영민은 베테랑의 책임을 다하려고 세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 35세에 세터 공부를 다시 시작한 권영민의 책임감


최근 KB손해보험은 한국배구연맹(KOVO)에 영상자료를 요청했다. KOVO는 V리그 원년부터 시작해 대부분의 영상을 베타테이프로 보관하고 있다. 예산이 없어 방대한 자료를 디지털로 전환해 영구보존하는 단계까지는 진행하지 못했다. 중요한 자료가 외부로 유출됐다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어 소정의 절차를 거친 뒤에야 외부 반출을 허용한다.

최근 KB손해보험이 KOVO에 요구한 자료는 2005∼2006시즌 삼성화재-현대캐피탈의 챔피언 결정전 장면이었다. V리그 원년 챔프전에서 패했던 현대캐피탈은 2005∼2006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뒤 다시 챔프전에서 삼성화재와 복수전을 치렀다. 1차전을 2-3으로 내준 현대캐피탈은 2·3·5차전을 3-0으로 잡고 대망의 우승을 달성했다. 인하대를 졸업한 뒤 2003년 현대캐피탈에 입단해 김호철 감독으로부터 혹독한 조련을 받았던 당시 26세의 권영민은 챔프전에서 펄펄 날았다. 5경기 동안 200개의 세트를 성공시켰다. 권영민의 배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 중 하나였다.

팀을 통해 권영민이 당시 경기 영상을 요청한 사실은 코칭스태프 몇몇만 알고 있다. 남들이 알새라 권영민이 조용히 자료를 요청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권영민의 토스 타점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기에 그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권영민은 한창 때에 비해 토스하는 순간 손 위치(전문가들은 토스 타점이라고 부른다)가 가슴 쪽으로 많이 내려왔다. 토스 타점이 낮아지면 공격수에게 향하는 토스가 높은 곳에서 쏴주는 토스보다 늦거나 볼 끝이 죽은 상태로 전달되기 쉽다. 그래서 감독들은 항상 세터에게 “머리 위에서 토스하라”고 주문한다. 고려증권 시절 유명한 세터였던 이경석 KOVO 경기감독관은 “세터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토스 타점이 내려온다. 인체구조상 손이 어깨 아래에 있기 때문에 토스 타점이 점차 낮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KB손해보험이 지닌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줄 구세주로 기대를 모았던 권영민은 시즌 초반 부진했다. 한창 때의 면도날 같은 토스가 그다지 자주 보이지 않았다. 팀이 1∼2라운드 10연패의 수렁에 빠진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권영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한 것에 익숙해졌던 현실과 대면한 뒤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스스로를 돌아보기로 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선택한 모양이다. 한창 때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비교·확인해가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찾아보기로 한 듯하다. 선수생활의 끝자락에 서 있지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한 권영민의 용기와 열정에서 책임감이 보인다.


리더가 되자 쉬는 날에도 훈련하는 문성민의 책임감

4월 9일 현대캐피탈과 KB손해보험은 2대1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최태웅 감독을 현역에서 사령탑으로 승격시킨 현대캐피탈은 여오현과 윤봉우를 플레잉코치로 임명했고, 팀의 최선참 권영민을 KB손해보험으로 이적시켰다. 그 트레이드는 현대캐피탈에 새로운 팀 컬러를 입히는 중요한 결정이었다.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29세의 문성민에게 팀의 리더 역할을 맡겼다. 당시 구단은 “앞으로 팀은 문성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리더가 된 문성민은 확실히 달라졌다. 올 시즌 쉬는 날 문성민이 홀로 코트에 나와 훈련하는 모습을 본 구단 직원들은 놀랐다. 문성민이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리더가 솔선수범해 개인훈련을 시작하자 다른 선수들도 동참했다. 요즘은 외국인선수 오레올까지 자율훈련에 나온다.

경기 때도 문성민의 책임감과 팀을 위한 헌신은 여기저기에서 엿보인다. 세터가 제대로 된 토스를 올려주지 못했을 때도 문성민은 세터를 위로해가며 경기를 풀어나간다. 입맛에 들지 않은 공을 때릴 때면 불만도 튀어나올 법하지만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올 시즌 문성민이 얼마나 힘들게 공격을 하고 있는지는 수치로 잘 드러난다. 자신의 6번째 시즌의 공격성공률은 47.19%에 그치고 있다. 유일하게 50%를 넘지 못한 시즌이다. 그 대신 디그는 세트 평균 1.396개로 자신의 역대 최고 수치다.

문성민이 자신을 빛내는 득점보다는 팀을 위한 공격과 수비에서 책임을 다해주면서 현대캐피탈은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이런 문성민을 고맙게 여긴 최태웅 감독은 가끔 훈련 뒤 맥주 한잔을 하면서 많은 대화도 나눈다. 올 시즌 후 FA 자격을 얻는 문성민은 최근 면담에서 “현대캐피탈의 선수로 영원히 남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세상사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문성민은 ‘원 클럽 맨’으로 배구인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눈치다. 그가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기까지 겪었던 우여곡절을 알기에 그 발언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꺾고 3연승

한편 현대캐피탈은 8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3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23 25-20 25-20)으로 이겨 3연승으로 시즌 10승째(5패·승점 30)를 챙기며 선두 OK저축은행(10승5패·승점 32)을 바짝 추격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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