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기부’ 박성현 “우승했을 때보다 더 뿌듯하네요”

입력 2015-12-2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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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청계천을 찾은 박성현이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KLPGA 대세’ 박성현의 따뜻한 겨울

알아보는 분들 많아져…유명해지긴 했구나
이 또한 지나가리…항상 겸손 잊지 말아야
첫 승보다 힘들었던 두 번째 우승 기억 남아

미국 전훈…내년 4월 LPGA 대회까지 소화
푸쉬업 100개 거뜬…체력 하나는 자신 있어
벙커샷 개선…내년에도 ‘닥공 골프’는 계속


2015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박성현(22·넵스)이 연말 큰 선물을 받았다. 22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쾌척한 박성현은 “마음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면서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내 좋은 일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박성현과 잠시 청계천(서울시 종로구) 나들이를 했다.


기부하니 마음이 꽉 찬 느낌

“와∼ 화려하네요. 청계천에는 두 번째인데 연말이라 그런지 멋지네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청계광장은 반짝이는 트리로 연인과 친구,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마침 박성현을 만난 날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고 온 날이었다. 좋은 일을 해서인지 표정이 밝았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뿌듯한 일인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질 줄은 몰랐는데 정말 뿌듯한 마음이 든다.”

박성현의 2015년은 성공적이었다. KLPGA투어에서 4승(2015시즌 3승, 2016시즌 개막전 1승)을 거두면서 8억원이 넘는 상금을 벌었다. 작년(상금랭킹 34위 1억2058만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적이다. 주니어시절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골프를 배웠던 박성현은 성공하자마자 자신이 아닌 주위부터 둘러봤다.

“골프를 배우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 그때는 대회에 나가려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스물 두 살의 박성현은 아직 잘 꾸밀 줄도 모른다. 비싸고 근사한 옷도 즐겨 입지 않는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패딩 점퍼의 가격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0만원도 하지 않는 제품이었다. 그런 박성현이기에 1억원이라는 돈은 더 커보였다. 기부는 박성현을 또 한번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는 “더 잘 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야 내년에도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스스로를 향해 동기를 부여했다.

시즌이 끝난 박성현은 더 바빠졌다. 박성현은 “작년 연말에는 집에서 쉬기만 했다. 그런데 올해는 너무 다르다. 시즌이 끝난 뒤 푹 쉴 줄 알았는데 하루도 집에 있지 못했다. 아침에 나가면 늘 저녁에 집에 들어가고 있다”고 푸념했지만 표정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서울 영등포구 한울 지역아동센터를 찾은 박성현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넵스



“식당에서도 저를 알아봐요”

“박성현 선수죠. 같이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청계광장 옆 일민미술관의 커피숍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자마자 나이 지긋한 여성이 박성현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박성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노부부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요즘엔 저를 알아보는 팬들이 많아졌다. 식당에 가도 제 얼굴을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졌다. 올 초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그럴 때마다 ‘내가 유명해지기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박성현에겐 많은 팬이 생겼다. 대회장에 가면 ‘박성현’의 이름이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하는 팬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팬들도 박성현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에 동참했다. 팬클럽 회원들은 올해 1420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서서히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나 바쁘게 1년을 보낸 박성현은 아직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

“1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올해가 가장 빨리 지나간 것 같고 가장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엄마와 진지하게 올해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잠시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이제 곧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박성현은 그 전에 잠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로 짧게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는 박성현의 표정은 벌써 들떠 있었다.


첫 승보다 더 힘든 2승으로 자신감 상승

선수들은 ‘첫 우승보다 2승이 더 힘들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1승을 하고 나서 2승을 해보지 못하고 필드를 떠난 스타들도 많다. 그러다 보면 첫 우승이 ‘실력’이 아닌 ‘운’으로 저평가되기도 한다.

박성현은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어렵게 첫 우승을 이뤄냈다. 일주일 전 롯데칸타타여자오픈에서 연장 끝에 이정민에게 역전패를 허용한 뒤 만들어 낸 우승이라 의미가 컸다. 그러나 박성현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우승 이후 크게 흔들렸다. 성적이 아주 나빴던 건 아니다. 우승 이후 줄곧 10∼20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다 8월 보그너 챔피언십에서 공동 56위로 성적이 뚝 떨어졌다. 이어진 하이원리조트여자오픈에서는 대회 첫날 공동 2위로 경기를 마쳤다가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되는 불운도 겪었다. 이어 한화금융클래식 공동 18위, KLPGA 챔피언십 공동 49위에 그쳤다.

“나 역시 첫 우승보다 2승이 더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두 번째 우승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럴수록 더 크게 흔들렸다.”

위기가 찾아올 무렵 박성현은 기다렸던 2승 물꼬를 터뜨렸다. 9월20일 열린 KDB대우증권클래식 정상에 오르며 첫 우승보다 더 어렵다는 두 번째 우승을 만들어냈다.

“올해 안에 두 번째 우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대우증권클래식에서 기다렸던 두 번째 우승이 터졌다. 첫 우승도 좋았지만 두 번째 우승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박성현은 파죽지세로 뻗어나갔다. 2주 뒤엔 박세리인비테이셔널에서 시즌 3승째를 달성하면서 시즌 막판 전인지(21·하이트진로)와 뜨거운 상금왕 경쟁을 펼쳤다.



예민한 성격이지만 긍정으로 극복

올해 박성현의 경기를 보면서 한 번도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경기가 풀리지 않더라도 표정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게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걱정하는 이도 많다. 사실 박성현은 매우 예민한 성격이라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서 경기에 나서는 스타일이다.

“경기를 하다보면 아주 작은 일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대회 전 입어야 할 옷을 모두 꺼내놓고 다음날 경기를 준비하는데 양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온통 양말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9번홀 경기를 끝내고 옷을 바꿔 입은 적도 있다.”

경기 중에도 화를 내본 적도 없다. 아무리 경기가 안 풀려도 꾹 참고 넘기고 만다.

“그냥 참고 또 참는다. 샷을 잘못해서 실수가 나와도 그렇고 경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냥 꾹 참는다.”

지난해 기대보다 성적이 저조했던 원인도 이 같은 성격 때문이었다. 풀어내지 않고 속으로 담고만 있다보니 성적이 나지 않을수록 일이 더 꼬여갔다. 이런 성격에 대해 누구보다 크게 걱정하는 건 부모님과 스승이다. 혹시 큰 병이 되지 않을까 늘 신경을 쓴다. 다행히 박성현의 성격은 낙천적이면서 매우 긍정적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잘 될 때도 지나가고 반대로 잘 되지 않을 때도 지나가게 되니 겸손함을 잊지 않으면 된다.”


● 박성현은 현재진행형


박성현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테미큘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당초 예정보다 2주 정도 서두른 이유는 조금 빨리 시작할 내년 시즌을 위해서다. KLPGA투어 상금랭킹 2위로 마무리한 박성현에겐 LPGA 초청장이 쇄도하고 있다. 그 중 5∼6개 정도 출전할 계획이다. 첫 대회는 3월 전지훈련 장소에서 멀리 않은 칼즈배드에서 열리는 기아클래식이다. 4월 첫 주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까지 뛴 다음 귀국할 예정이다.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을 위해 박성현은 빡빡한 훈련 일정을 세워 놨다. 크게 두 가지다. 기술적인 측면에선 올 시즌 내내 괴롭힌 그린 주변에서의 벙커샷이다. 박성현은 “그린 주변 벙커에만 들어가면 ‘보기했구나’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체력이다. 내년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투어까지 병행해야 하기에 더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는 박성현은 양 팔을 벌리면서 “지금도 푸쉬업을 하면 100개는 거뜬하다”고 흉내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하체에 비하면 상체 근력이 부족해서 상체 훈련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에도 박성현표 ‘닥공 골프’는 계속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닥공(닥치고 공격)’이 무슨 뜻인 줄도 몰랐었다”는 박성현은 “뜻을 알고 나니 재미있었다. 60%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내년에도 시원한 경기를 계속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2016시즌도 출발이 좋다. 14일 중국에서 열린 KLPGA 투어 현대차 중국여자오픈 우승으로 벌써 1승을 기록했다. 박성현은 “올 시즌 3승을 했으니 내년에도 3승을 하고 싶다. 그러나 올해도 그랬듯이 빨리 목표를 달성하면 목표를 더 크게 수정할 것이다”며 포부를 밝혔다.

다가올 새해를 맞아 인터뷰 전 박성현에게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보자고 제안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박성현은 문자메시지로 삼행시를 보냈다.

박>박성현은 사람들이
성>성공했다고 말하지만
현>현재진행형입니다.


● 박성현은?


▲1993년9월21일생
▲172cm 60kg
▲2012년 KLPGA 입회
▲2013년 KLPGA 드림(2부)투어 상금왕
▲2014년 KLPGA 정규투어 상금랭킹 34위
▲2015시즌 KLPGA 3승(한국여자오픈, 대우증권클래식, 박세리인비테이셔널), 상금랭킹 2위(7억3669만82원), KLPGA 대상 인기상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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