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당무의 경마오디세이] 애무전문 시정마 ‘판우드세시’를 아시나요?

입력 2016-02-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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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렛츠런팜 장수에서 17년간 시정마로 활동한 ‘판우드세시’.

경주마 꿈꿨지만 덩치 작아 데뷔 못해
하루 최대 40회 씨수말의 합방 도우미


애무 전문마 ‘시정마’를 아시나요?

시정마는 교미 때에 암말에게 혈통 좋은 수말이 채이지 않도록 암말의 기분만 떠보는 말이다. 암말이 씨수말과 원활히 합방할 수 있도록 애무를 통해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경마산업은 약 8조원대. 그 근간은 경주마다.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하기 위해선 혈통 좋은 씨수말이 중요하다. 따라서 유명한 씨수말들은 특급 대우를 받으며 1000억원을 호가하는 몸값을 자랑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씨수마는 ‘메니피’로, 1회 교배료만 700만원에 달한다. 교배기가 되면 1년 평균 200회, 하루에는 2번에서 많게는 3번까지 교배를 하기에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엄청나다. 때문에 이런 ‘황제마(馬)’를 다룰 땐 ‘옥체’가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발정기가 되면 암말은 성격이 포악해져, 마음에 들지 않는 수말에게 곧잘 뒷발질을 해 씨수말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러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결사 역할을 하는 말이 바로 ‘시정마’다.

프로 시정마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특기로 흥분한 상태의 암말을 진정시킨다. 암말의 뒷발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엉덩이를 비롯해 신체 곳곳을 애무하기도 하고, 오히려 신체 일부를 공격하며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이들은 1년 동안 평균 400∼500번의 시정을 담당하고 있다.

시정마는 말 그대로 암말에게 애무만 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씨수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되는 불운한 수말이기에 받는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하다. 일부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또 일부는 자신이 씨수말인줄 알고 달려들었다가 뒷발에 차여 시정마로서 장기간 활동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팜 장수에는 17년 동안이나 이런 ‘혹독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기 시정마가 있다. ‘판우드세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당초 경주마로의 화려한 데뷔를 꿈꿨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덩치로 인해 시정마가 된 비운의 말이기도 하다.

발정기에 포악해진 암말의 격렬한 뒷발질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는 다른 시정마와 달리 ‘판우드세시’는 오히려 더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몇 분이고 적극적인 구애활동을 펼치며 결국에는 암말의 승낙을 받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오랜 경력만큼이나 나이도 적지 않다. 무려 21세로 사람으로 치면 예순 살이 훌쩍 넘은 나이다. 그럼에도 ‘판우드세시’는 교배기가 되면 하루 최대 30∼40회의 시정 활동을 담당할 정도로 노련함과 정력을 뽐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눈물겨운 구애활동의 결말은 늘 씨수말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의 씁쓸한 새드앤딩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늘 아쉬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농가에서는 시정마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기분을 풀어주고자 교배시즌이 끝나면 실제 암말과 교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통상 말의 교배기는 3월에서 6월 사이로 본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팜 장수는 이보다 조금 이른 2월 20일 전후로 교배 활동을 펼치며, 방문객들에게 그 모습을 공개한다. 일종의 이색 이벤트인 셈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하는 덕분에 매년 많은 사람들이 힐링 명소로서 이곳을 방문한다.

경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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