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나보다 더 땀 흘린 자, 금메달 가져가도 좋다”

입력 2016-02-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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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레슬링의 에이스 김현우가 최근 서울 송파구 한체대 레슬링장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나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향한 각오와 레슬링선수로서 자신의 인생관을 전한 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 리우서 2연속 올림픽 제패 도전…레슬링 간판스타 김현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는데….”매트에 오르기 전, 운동화 끈을 동여매던 한국남자레슬링의 간판스타 김현우(28·삼성생명)가 싱긋 웃었다. 4년 전 느꼈던 벅찬 감동, 아름다운 추억을 잠시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가 목에 걸었던 2012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6kg급 금메달로 잠시 침체기를 걷던 한국레슬링도 활짝 웃었다.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다. 한 체급 올린 75kg급으로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8월 5∼21일) 정상을 꿈꾼다.


강자들과 붙고 싶다…한 체급 올려 도전
런던서 금메달 맛 봤기에 누구보다 간절


한국레슬링에서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을 딴 선수는 심권호(44)가 유일하다. 1996애틀랜타올림픽 48kg급에 이어 2000시드니올림픽 55kg급(이상 그레코로만형) 시상대 꼭대기에 우뚝 섰다. 체급을 바꿔가며 내리 정상을 밟았기에 의미는 더욱 컸다. 김현우가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리우올림픽이 성큼 다가온 지금, 설 연휴도 잊은 채 매트를 뛰고 구른다. 태릉선수촌과 한국체육대학교 레슬링장을 오가며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현우를 만나봤다.


● 올림픽, 그 맛을 기억하다!

주변에선 우려를 표했으나 김현우는 체급을 올린 뒤에도 위상을 잃지 않았다.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고전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여러 국제대회 최강자의 자리를 지켰다. 2013세계선수권대회,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내리 석권했다. 그래도 역시 올림픽은 다르다.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김현우는 “간절하다”고 했다. 런던에서 올림픽 금메달의 맛을 봤기에 누구보다 그 느낌을 잘 안다. “점차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금메달이 아른거리고, 그 맛이 떠오른다. 나와 가족은 물론, 레슬링인과 국민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걸 경험했다. 그저 ‘행복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기억이다.”

런던올림픽을 준비할 당시 김현우는 당돌한 한마디를 남겼다. “나보다 더 땀을 흘린 이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그랬다. 정직한 땀은 가장 이상적인 결실로 다가왔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우문에 현답은 이랬다. “당연히 똑같다.” 다만 걱정은 있다. 본의 아니게 그 때보다 준비가 부족하지 않느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이곳저곳 잔 부상에 시달려왔다. “운동선수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다. 열심히 훈련하면 부상도 따라온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마음이 복잡했다. 너무 운동하고 싶은데, 부상 때문에 마음처럼 운동할 수 없는 상황이 가져온 스트레스가 굉장했다.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이뤄낸 꿈에서 찾아온 혼란

김현우는 오직 올림픽 금메달만 바라보고 뛰었다. 인생을 올림픽과 금메달에 다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런던올림픽 금메달, 행복은 잠시였다. 다음 걸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이 찾아왔다. “기술과 힘, 실력 모두 부족했지만 런던에서 금빛 낭보를 전할 수 있었던 건 절박함과 절실함 덕분이었다. 그런데 올림픽 이후 준비를 전혀 안 했다. 그저 상상한 순간이 닥치자 한없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올림픽 금메달만 따면 남은 인생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작년 세계선수권 실패가 약”

김현우는 겉으로 보기에 주변과 잘 어울리는 듯한데, 실은 예민한 성격이다. 내성적이진 않지만, 홀로 외로움도 많이 타고 고독하다. 쉽게 낫지 않던 부상으로 인해 아픈 몸과 정신적인 혼돈. 역대 3번째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도 달성해봤으나 알면 알수록 레슬링은 어렵게 다가왔다. 특히 지난해가 슬럼프의 정점이었다.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5세계선수권대회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리우올림픽 출전권도 아직 따지 못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찌감치 올림픽 체제에 돌입하자는 당초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조급하지 않다. 리우올림픽 금메달은 큰 목표이자 과제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 대신 또 다른 동기부여가 생겼다. “그저 금메달만 향하지 않는다. 레슬링을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훗날 매트를 떠난 뒤 우리 레슬링을 떠올렸을 때 심권호∼박장순(48·국가대표팀 자유형 감독)∼안한봉(48·국가대표팀 그레코로만형 감독) 등 쟁쟁한 선배들에 이어 내가 거론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김현우가 레슬링을 멋지게 했지’란평가를 받고 싶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려고 한다.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일종의 책임감이기도 하다. 비인기종목 중에서도 비인기종목인 레슬링이 조금이라도 더 노출되고, 알려지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그다.


● 그럼에도 난 리우를 향해 뛴다!

4년 전과 지금, 어떤 차이가 있을까. 김현우는 강력한 라이벌과 만나는 것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강자들을 피하고픈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더 강하고 센 상대를 만나고 싶다. 더 이상 대진 운을 바라지 않는다. 나보다 실력이 우수한 상대를 만나 이겼을 때의 쾌감을 즐기게 됐다. 글쎄, 성숙해진 건 아니다. 그냥 레슬링을 좀더 즐기게 됐다고 할까?”

예나 지금이나 한국레슬링은 김현우에게 큰 기대를 건다.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3월부터 3차례에 걸쳐 이어질 올림픽쿼터대회에서 무조건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본인도 일단 여기에 매진하고 있다. 멋진 레슬링을 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또 한 번 올림픽 무대를 밟아야 한다. 리우올림픽 개막에 시계를 맞추기보다는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카자흐스탄 대회에 시선을 두고 있다. “올림픽 출전 티켓부터 따고 다음을 바라보겠다. 세계선수권 실패가 약이 됐다. 부족한 점이 뭔지 다시 일깨워줬다. 공격적인 움직임과 체력에 비해 그라운드(파테르) 훈련이 부족했다고 판단해 이 점을 집중 보완하고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열심히 한다. 그의 휴대폰은 각종 영상으로 용량이 꽉 찼다. 올림픽 등 각종 무대에서 마주치게 될 경쟁자들의 경기 영상이다. 잠재적 적수들에 대해서도 거의 파악했다. “난 지금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다. 질 수도 있겠지만 그 준비과정을 즐기려고 한다. (체급전환은) 문제없다. 내 본래 체중이 지금이다. 예전 66kg급에 나설 때는 10kg 이상 감량을 했다. 그게 더 힘들었다. 잘되리란 믿음, 자신감이 있다.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이유가 분명한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준비가 있으면 걱정도 없다)’과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미치지못한다)’. 지금 이 순간의 김현우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다.


● 김현우는?

▲소속=
삼성생명

▲생년월일=1988년 11월 6일

▲키·몸무게=174cm·73kg

▲출신교=강원고∼경남대

▲국가대표 경력=2010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런던올림픽,2014인천아시안게임

▲수상 경력=아시아 선수권대회 우승(2010·2013·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2013년), 올림픽 우승 (2012년), 아시안게임 우승(2014년)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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