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선방’ 수원 노동건 “골키퍼 명문 수원 명예 잇고 싶다”

입력 2016-04-20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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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지난 19일 일본 감바 오사카와 맞붙은 수원 삼성 골키퍼 노동건(25)은 신들린 듯한 선방 묘기를 펼쳤다.

전반 막판 두 차례 페널티킥도, 후반 위협적인 헤딩슛과 프리킥까지 모두 그의 손에 걸렸다. 수원이 2-1로 승리하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린 것도 노동건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가장 빛난 순간은 전반 막판이었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내준 상황. 그는 키커 우사미 다카시와 맞섰다. “우사미 얼굴을 보니까 긴장하고 있는 게 역력했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우사미가 긴장한 채로 킥을 하리라 예상했다.”

노동건의 예상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우사미의 킥은 노동건의 펀칭에 걸렸고 이어진 인플레이 상황에서 나온 슈팅도 역시 막아냈다.

심지어 주심이 골키퍼가 먼저 움직였다며 다시 차라는 판정을 내린 뒤 우사미가 한 번 더 찬 페널티킥마저 노동건의 벽을 뚫지 못했다. 노동건은 우사미의 킥 방향을 간파했고 자신감을 잃고 찬 킥을 확실하게 틀어쥐었다. 큰 위기를 넘긴 수원은 후반 초반 2골을 몰아쳤고 승부를 갈랐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노동건은 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다. 원정 응원을 온 수원 서포터스는 노동건 이름을 연호했다. 노동건은 “어려운 경기에서 승리해 너무 기뻤다”며 “내가 내 자리에서 제 몫을 했고 팀이 이겼다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노동건은 프로 3년차다. 2014년 고려대를 졸업한 뒤 수원에 입단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돼 금메달에 힘을 보탰다. K리그에서는 2014년 4경기(4실점) 출전에 불과했지만 2015년 16경기(20실점)에 나섰다.

국가대표로 오래 활약한 정성룡이 일본으로 떠난 올해부터는 명실상부한 주전이다. 올 시즌 개인기록은 6경기 9실점. 팀 성적도 1승4무1패로 K리그 6위.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다.

“수원하면 골키퍼 명문이라고 하지 않나. 내가 그걸 잇지 못할까봐 걱정도 많았고 이전보다 더 많이 노력했다.”

과거 대표적인 수원 수문장은 이운재, 정성룡이다. 둘 모두 대표팀 주전으로 뛰었고 월드컵 무대도 밟았다. 노동건은 “지난해 11월 기초군사훈련을 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며 “흥분하지 말자, 조금 더 진지하게 훈련하자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낼 때마다 휴대전화 속에 적은 메모를 본다. 감바 오사카전에 앞서서도 메모들을 훑어봤다. “2012년 연세대와 두 번 싸워 6실점하며 모두 졌다. 이번에는 져서는 안 된다. 나를 더 단련시키자.” 그는 그해 세 번째 대결에서 선방을 거듭해 승리를 지켜냈다.

“골인이 된 공도 골라인을 통과하기 전에는 내 손을 무조건 거쳐야만 한다.” 네덜란드 출신 세계적인 골키퍼 에드윈 반데사르의 말로 골키퍼가 막지 못하는 슈팅은 없다는 의미다. 이런 메모들을 본 노동건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오랫동안 곱씹어온 자신만의 문구를 떠올렸다.

“공격수가 골을 넣으려는 열망보다 그걸 막으려는 내 열망이 더 크면 모든 슈팅을 막아낼 수 있다.”

그가 감바 오사카전에서 과감한 플레이로 잇따라 ‘선방쇼’를 펼친 힘이다.

노동건은 올 시즌에 앞서 개인적인 목표를 많이 세웠다. 전 경기 풀타임 출전, 게임 평균 0점대 실점, 연속 경기 무실점 방어…. 그건데 의미가 점점 사라졌다. 노동건은 “내가 개인 기록에 욕심을 부려도 팀이 이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목표는 팀이 이기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위기마다 골키퍼로서 제 몫을 해내는 것뿐”이라고 했다. 감바 오사카 전 플레이가 꼭 그랬다.

키 1m91의 대형 골키퍼인 그는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에 뽑혀 인천아시안게임을 포함해 8경기를 뛰며 3실점했다. 아직 국가대표팀에 뽑힌 적은 없다. 노동건은 “내가 좋은 기량을 기복 없이 보여준다면 기회는 오리라고 생각한다”며 “나도 국가대표가 돼 형들이 지켜온 골키퍼 명문 수원의 명예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로부터 ‘노동건, 오랫동안 수원 골문을 정말 잘 지켰지’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희망했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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