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감독들의 더 특별했던 V리그 정규리그 우승

입력 2017-03-0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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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박기원 감독-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NH농협 2016~2017 프로배구 V리그 남녀부 정규리그 우승트로피의 주인은 대한항공과 흥국생명이었다. 7일 홈경기에서 대한항공은 삼성화재를, 흥국생명은 KGC인삼공사를 각각 무찌르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인천 계양체육관을 홈으로 쓰는 ‘인천 남매’가 같은 날 동반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 특별한 사연이 있는 두 팀의 사령탑에게도 큰 관심이 쏠렸다. 대한항공 박기원(66) 감독과 흥국생명 박미희(54) 감독에게 이번 우승은 매우 특별했다. 감독으로서 첫 우승을 일궈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서다. 우승 확정 직후 두 감독의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그간의 마음고생을 대변했다.

베테랑 사령탑인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 직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무려 40년 만에 손에 쥔 우승 트로피 때문이다. 젊은 후배 감독들 사이에서 노장의 힘을 보여준 박 감독의 배구인생은 다시 시작이다. 스포츠동아DB



● “40년을 기다렸다” 박기원의 우승이 특별한 이유

박기원 감독에게 ‘우승’이라는 두 글자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제목과 맥을 같이한다. 7일 우승을 확정하기 전까지 그랬다. 2003년 이탈리아 폴리에 배구단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단 한 번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해서다. 이란대표팀~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한국대표팀 감독을 지내면서도 그랬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선 동메달을 차지한 뒤 눈물을 쏟아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만큼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다.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거듭할 때는 “스피드 배구를 접목하는 과정”이라며 애써 웃음 지었지만, 실제 그가 느꼈던 좌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나는 경기에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우승을 확정한 뒤 “40년간 기다렸던 우승인데, 당연히 기쁘다. 우승하기 위해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는 그의 소감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베테랑 감독이 이끈 우승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V리그는 젊은 감독들이 득세하고 있다. 최태웅(41·현대캐피탈), 임도헌(45·삼성화재), 김상우(44·우리카드), 김세진(43·OK저축은행), 강성형(47·KB손해보험) 감독 등 남자부 5개팀 감독이 40대다. 박기원 감독은 남녀부를 통틀어 최고령 사령탑이다. 이에 박 감독은 오히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반문한다. 지론이 확실해서다. 지금은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 “술이 들어가면 밤 8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못 한다. 그 시간에 팀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젊은 감독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만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독직을 제안한 구단에 정말 감사하다. 내 나이에도 믿고 지휘봉을 맡겨준 자체가 고맙다. 선수들도 정말 잘 따라와 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대한항공을 ‘원 팀’으로 만든 데도 박 감독의 공이 컸다. 몇 년 전만해도 대한항공은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엄격한 팀이었다. 젊은 선수들은 경기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만큼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박 감독이 처음 부임했을 때 느낀 것은 간단했다. “대한항공은 우승 DNA가 2% 부족했다.” 연습량을 늘리는 대신 자율을 부여했다. 선수들이 자택에서 출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좋은 예다. 그는 “결혼한 선수들은 집에서 아내에게 기합을 받더라”며 껄껄 웃었다. 팀 분위기가 밝아질 수밖에 없다.

여성 사령탑으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우승을 이룬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성별에서 오는 특별함을 거부한다. 그저 여러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 선수들을 이끌었고,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사진제공|KOVO



● ‘여성 사령탑’의 특별함을 거부하는 박미희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우승을 두고 박미희 감독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여성 사령탑 최초 우승’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에 이은 V리그 2번째 여성 지도자. 그가 부임 3시즌 만에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냈으니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박 감독은 ‘여성’이 아닌 한 명의 지도자로 평가받길 원한다. 우승을 확정한 뒤 “내가 잘돼야 여성 사령탑에 대한 편견도 깨진다. 여성 지도자도 동일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다.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도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이제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박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1983~1990년 실업팀 미도파에서 뛰며 1984LA올림픽~1986서울아시안게임~1988서울올림픽~1990베이징아시안게임 국가대표를 지냈다. 센터이면서 토스워크가 좋아 세터 역할도 도맡았을 정도다. 그만큼 다재다능한 선수였지만, 감독의 무게감은 선수시절과 견줘 확연히 달랐다. 특히 2014~2015시즌 흥국생명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빠져있었다. 이를 바꾸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감정표현을 확실히 하되 선을 넘지 않아야 했다. “그 선을 넘으면 ‘나는 했는데, 너희는 왜 안 되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배구하는 것 자체를 행복하게 생각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머니 리더십’의 한 단면이다.

선수들과 신뢰관계도 끈끈하다. 한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다. 이재영이 “감독님의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 만점에 95점이다. 마음이 너무 여리신 것 같아 5점을 뺐다”고 밝힌 것도 감독과 선수 사이의 믿음이 얼마나 끈끈한지 보여준 좋은 예다. 주장 김나희는 “감독님께선 선수들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선수들의 표정만 봐도 다 안다”고 했다. 시상식에 앞서 박 감독과 김나희가 서로를 끌어안고 기뻐하던 장면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


▲생년월일=1951년8월25일

▲출신교=성지공고∼한양대

▲선수 경력=보안사∼충북시멘트∼종합화학(충북비료)

▲대표팀 경력=1972뮌헨올림픽·1974테헤란아시안게임·1976몬트리올올림픽·1978방콕아시안게임

▲지도자경력=이란대표팀(2003∼2006년)∼LIG손해보험(2007∼2010년)∼한국대표팀(2011∼2016년)∼대한항공 감독(2016년∼현재)


●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생년월일=1963년 12월 10일

▲출신교=화산초∼동성여중∼광주여상∼한양대

▲선수 경력=미도파(1983∼1990년)

▲대표팀 경력=1984LA올림픽·1986서울아시안게임·1988서울올림픽·1990베이징아시안게임

▲지도자 경력=흥국생명 감독(2014년∼현재)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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