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리뷰] 닫혔던 ‘한국 공포영화’의 문 열고 등장한 ‘장산범’

입력 2017-08-10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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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무더운 날씨와 열대야로 밤잠 이루지 못하는 여름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 단 하나의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희소성으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 있다.

‘숨바꼭질’로 560만 관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허정 감독이 4년 만에 미스터리 스릴러 ‘장산범’으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아들을 잊지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아가던 희연(염정아). 희연은 남편 민호(박혁권)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장산으로 이사 온다. 수상한 동굴 근처에서 희연은 우연히 겁을 먹고 숨어있는 소녀(신린아)를 만나고 연민을 느껴 소녀를 집에 데려온다. 하지만 남편은 딸 준희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이 소녀를 수상하게 여긴다. 소녀가 찾아온 뒤 하나 둘 씩 실종되는 사람들. 사라진 시어머니(허진)와 남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으로 희연은 소녀와 함께 직접 가족을 찾아 나선다.

‘장산범’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라는 괴담을 스크린에 옮겼다. 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답게 이 영화는 독특한 사운드 연출로 주목받는다. ‘한 사람의 입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라는 설정을 완성하기 위해 ‘장산범’은 일반 영화의 5배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하여 ADR(후시녹음)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운드 표현은 동굴씬에서 가장 극대화 되었다. 실제 동굴에서 느껴지는 깊이감과 차가운 느낌, 그 공간을 뚫고 장산범의 기운이 느껴졌다. ‘희연’의 약점을 파고드는 장산범의 목소리가 마치 내 머리 속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듯한 사운드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 소리가 아니다. ‘장산범’은 소리를 통해 사람의 기억과 마음을 건드린다.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소리로,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운 소리로, 때론 그리운 소리로. 낯선 공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청각적 긴장감과 함께 사람들의 가장 약한 감정을 건드리며 그 존재를 드러내 공포감을 조성한다.


청각적 요소들과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로 하여금 심리적 불안감을 일으키게 했다.

‘장화, 홍련’ 이후 14년 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온 염정아는 ‘원조 스릴러 퀸’답게 스릴러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아이를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희연’의 애절한 모성애 또한 과하지 않게 전달되었다. 염정아의 어딘가 예민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는 관객들을 공포와 슬픔의 사이로 오가게 한다.

박혁권은 염정아에게 느껴지는 먹먹한 갈증을 조금은 해소시킨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박혁권. ‘장산범’에서 그는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가장 ‘민호’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너무 평범한 캐릭터라 반전 없는 것이 반전이다”라고 소개했다. 염정아가 날카롭게 사건을 앞에서 만들어간다면 박혁권은 이성적이고 안정적으로 그 뒤를 받쳐준다.


신린아는 염정아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며 ‘연기천재’의 면모를 어김없이 발휘한다. 일단 신린아의 외모 자체가 신비스럽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면 속에 비밀이 가득할 것 같은 느낌과 연민마저도 느껴진다. 신린아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할 정도로 어리지만 자신이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 어떤 식의 표정을 지으면 관객들이 공포를 느낄지를 아는 눈빛이었다. 신린아의 열연은 ‘장산범’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장산범’은 기존에 보아왔던 스릴러들의 틀을 깨고 소리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해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 영화의 사운드에 집중한다면 캐릭터의 감정과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17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정은 동아닷컴 인턴기자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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