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K리그 감독 수난시대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K리그1(1부)에선 12팀 중 4팀(33%)이나 사령탑을 바꿨다. FC서울, 수원 삼성, 인천 유나이티드, 부산 아이파크의 벤치가 상처를 입었다. K리그2(2부)에서는 대전하나시티즌이 유일하게 감독을 교체했다.
이번 시즌 감독 수난의 특징은 중 하나는 수도권 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이다. 특히 최고 흥행카드인 슈퍼매치의 서울과 수원이 한꺼번에 감독을 갈아 치운 게 눈에 띈다. 두 팀이 파이널B(7~12위)로 동반 추락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들에게는 얼룩이 짙은 시즌이다.
또 한 가지는 프런트와 현장의 불화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특히 자진사퇴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경질을 단행한 구단은 프런트의 독단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감독이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지만 구단 또한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한 해였다.
아무튼 한번 잘리면 되돌릴 수 없는 게 프로의 세계다. 감독 교체는 패배 의식에 젖은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결단이다. 관건은 지휘봉을 물려받은 후임자가 어떤 역할을 해주느냐다. 구단의 바람대로 재빨리 안정을 되찾고 부진에서 탈출하면 좋으련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번 시즌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은 지도자는 모두 9명이다. 이들의 성적을 살펴보자.
수원은 7월 중순 이임생 감독이 물러나자 육성 전문가인 주승진 코치를 대행으로 앉혔다. 구단은 주 대행으로 시즌을 마칠 요량이었지만 P급 자격증이 없는 게 한계였다. 또 성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강등을 걱정해야할 처지까지 몰렸다. 2승1무5패의 주 대행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한 구단은 레전드 출신 박건하 감독을 영입했다. 박 감독은 기대에 부응했다. 흔들리던 팀을 재빨리 추슬렀다. 취임 이후 첫 경기인 20라운드 서울과 슈퍼매치에서 1-2로 패한 뒤 포항전 무승부로 한숨 돌린 수원은 이후 강원~서울~인천을 상대로 3연승을 내달리며 사실상 강등권에서 벗어났다. 박 감독 덕분에 선수들은 자신감을 회복했다.
서울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최용수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휘봉을 내려놓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K리그 최고 감독 중 한명으로 꼽히는 지도자가 물러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14라운드부터 김호영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아 반전을 꾀하는 듯 했지만 이 또한 파국을 맞았다. 파이널라운드 돌입 직전에 김 대행이 스스로 물러났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4승3무2패를 기록하며 그런대로 성과를 냈지만 구단과 의견이 맞지 않아 그만둔 것으로 전해진다. ‘대행의 대행’이라는 비아냥 속에 박혁순 코치가 벤치를 지킨 서울은 최근 2연패를 당하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인천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번 시즌을 임완섭 감독과 함께 시작했지만 부진의 연속이었다. 차선책으로 임중용 대행 체제로 꾸렸지만 성적은 여전히 바닥을 헤맸다. 투병 중인 유상철 명예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지만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고, 이임생 전 수원 감독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막판 협상이 결렬됐다. 우여곡절 끝에 조성환 전 제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조 감독은 노련한 팀 운영으로 10경기 동안 5승1무4패를 기록하며 1부 잔류에 대한 희망을 부풀렸다. 24라운드 현재 최하위인 인천이 탈 꼴찌에 성공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최하위로 떨어지며 강등 위험에 처하자 조덕제 감독이 물러난 부산은 이기형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은 가운데 24라운드 서울전 승리로 탈 꼴찌에 성공했다. 인천 감독 시절 잔류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이 대행이 남은 3경기를 어떻게 치를지 주목된다.
황선홍 감독이 자진사퇴한 대전은 강철 수석코치가 한 경기를 맡았지만 패했고, 이후 조민국 전력강화실장이 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 최근 1승3패로 5위로 처졌다. 우승 후보로까지 점쳐졌던 대전은 이제 2~4위에게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진출권도 불안하게 됐다.
스포츠에서 감독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의 전성기를 이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축구에서 99%는 선수고, 감독은 1%다. 하지만 그 1%가 없으면 100%가 될 수 없다”고 한 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감독은 팀의 얼굴이자 팀을 지탱하는 리더다. 감독이 흔들리지 않도록 충분한 지원과 함께 막강한 권한을 주는 게 구단의 역할이다. 그런 다음에 책임을 묻는 게 순리다. 프런트와 현장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시즌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