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간간한 게국지 맛은 곰삭은 서산 인심이었네…

입력 2011-01-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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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당진~안면도<상>

웅도에서의 식사는 바닥에 깔개를 까는 등 평소보다 격식(?)을 갖출 수 있었다. 비박 모임 <침낭과 막걸리> 멤버들이 자전거 전국일주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덕분.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한 허 화백(왼쪽에서 두번째)이 마치 에스키모 원주민같다. (작은사진-게국지)


하루 중 가장 추울 때가 해 뜨기 직전이라는 얘기는 허언이 아니었다. 동짓달 아침 해는 느릿느릿 소걸음으로 떠올라 4차 투어의 출발점인 석문방조제의 이른 아침 추위는 가혹했다.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사방이 바람벽 하나 없이 탁 트인 바닷가인지라 체감 온도는 훨씬 낮았다. 주행을 시작하자마자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시리다. 방조제 안쪽의 호수는 며칠간의 추위로 이미 얼음평원으로 변했다.


노숙전 저녁반찬은 토속음식
식당밥 싫어 초빙한 토박이 부부
무청 상큼함+밴댕이 젓국 조화
국물맛에 취할 무렵 찾아온 손님
아저씨 손엔 굴 한 보시기가…
추워도 포근했던 그날 밤
푸짐했던 서산 인심 덕분


헤엄칠 곳을 잃은 청둥오리 몇 마리가 얼음판 위에서 서로 몸을 맞대고 아침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기가 더욱 사무친다. 일자로 길게 뻗은 방조제 길로 접어들자 체온을 높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RPM을 높였다. 서해안의 북부는 방조제가 많고, 그동안 방조제 길을 달릴 때마다 우리는 맞바람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이번엔 운좋게도 동풍, 뒷바람이다. 방조제 상단길은 며칠 전 내린 눈때문에 곳곳에 빙판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는 바람의 도움으로 평균시속 22km로 질주했다.

10km 남짓한 석문방조제를 건너 장고항으로 접어들었을 때 비로소 해가 솟아 바다와 대지에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장고항 남쪽을 돌아 서산으로 이어지는 647번 지방도로는 확장 공사 때문에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는데다 덤프트럭이 분주히 오가고 있어 잔설이 하얗게 쌓인 해안 비포장길로 내려선다. 장고항에서 자동찻길을 버리고 바닷가를 한 구비 돌아 용무치항. 물이 멀리 빠져나간 갯가에 어선 몇 척이 전날 내린 눈을 뒤집어쓰고 꽁꽁 언 채 시린 바닷바람을 견디고 있다. 용무치의 백사장은 모래가 깊어 자전거 바퀴가 푹푹 빠졌다.

“누가 자전거로 더 멀리 갈 수 있는지 내기 하자. 꼴찌가 오늘 야영 때 막걸리 책임지기!”

지독한 추위에 입까지 얼어 묵묵히 페달질만 하는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허영만 화백이 모래밭 멀리 달리기 내기를 제의했다. 페달링 파워가 부족하거나 급격하게 핸들을 돌리면 여지없이 넘어지는 모래밭 레이스는 일행들을 순식간에 동심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출발하자마자 뒷바퀴부터 모래에 빠지는 바람에 1m도 못 가 넘어진 정상욱 선배가 막걸리에 당첨됐다. 모래밭에서 자전거와 뒤엉켜 웃고 떠들고 나뒹구는 동안 추위에 위축됐던 몸과 함께 마음도 풀려갔다.

허영만 화백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벽같이 바다에 나가 굴을 캐서 돌아오는 길이다.



# 지옥 같은 업힐 이후 만난 삼길포 앞바다 비경

해안 비포장길로 왜목항에 이르자 대호방조제로 연결되는 615번 지방도로 왼쪽으로 지평선이 보일만큼 드넓은 교로리 간척지가 펼쳐졌다.

간척지 평원으로 들어서려면 잠깐이긴 하지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이른바 끌바(길이 험해 바이크를 타지 못하고 끌고간다는 의미의 자전거 은어)를 해야 한다.

아스팔트길과 논길 중 어디로 갈지 저울질하고 있는 차에 선두에 선 허영만 화백이 먼저 자전거를 끌고 간척지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서 길잡이를 맡은 필자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호젓한 길을 좋아하는 자전거 식객들은 투어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통해 점점 길을 선택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좀 돌아가더라도, 그래서 거리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심전심 자연미가 살아있는 한적한 길로 핸들을 틀게 된 것이다. 겨울 간척지는 텅 비어 스산했지만 자전거 바퀴를 통해 전해져 오는 흙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다. 오늘 아침 이 길을 밟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닌 모양이다. 간밤에 이삭을 찾아헤맨 고라니, 멧돼지 발자국이 복잡하게 엉켜있고 그사이에 오리 발자국이 어지럽다. 야생동물들의 발자국 위에 타이어 자국을 덧찍으며 삼길포로 접어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위성지도를 확인한 결과 삼길포에서 대산항 뒤쪽으로 돌아나가는 구절양장의 환상적인 임도가 발견됐다. 문제는 자동찻길로 가는 것보다 거리가 무려 4배에 달하고 초반 업힐(UP HILL)이 상당히 가파르다는 사실.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이렇게 멋진 길을 외면할 수는 없지.”

허영만 화백이 호기롭게 말했다.

MTB의 변속기는 일반적으로 앞 3단, 뒤 9단으로 모두 27단이다. 수프라켓에 달린 뒷 기어 중 토크가 가장 큰 9단은 최후의 업힐을 위해 아껴두고 8단 기어까지를 주로 사용하는데 삼길포 뒷산 임도로 올라붙는 시멘트 도로는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상체로 찍어누르지 않으면 앞바퀴가 저절로 들릴 정도여서 초반부터 최고의 토크를 요구했다.

게다가 응달에는 얼음과 눈이 남아있어 지그재그로 팥죽같은 땀을 흘리며 곰비임비 언덕을 올라갔다. 페달을 누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입김과 목덜미에 흐른 땀에서 나는 김때문에 마치 증기 기관차같다.

40여분간의 지옥같은 업힐을 마치고 능선에 올라서자 용을 쓰며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비경도, 대조도, 소조도, 우무도… 그리고 소난지도, 대난지도…

삼길포 앞바다는 물빛이 남해의 그것처럼 쪽빛이었다. 자전거에 기대어 서서 발 아래 펼쳐진 서해의 비경을 굽어보며 땀을 식히는 것은 최상의 풍류였다.

“봐라, 찻길로 갔으면 이런 경치를 어떻게 볼 수 있었겠나?”

수첩을 꺼내 삼길포 앞바다의 정경을 스케치하는 허영만 화백의 이마에는 아직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밤 야영지인 웅도는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만 길이 열린다.

웅도 건너편에 도착한 것이 오후 5시.

물이 아직 덜 빠져 섬으로 들어가려는 주민이 삼삼오오 모여 바다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산시내 친척 결혼식에 다녀온다는 촌로 한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할아버지: 아니, 이 겨울에 자장구를 타고 워디를 그렇게 다닌댜?

자전거 식객: 전국일주 중입니다. 강화도에서 출발해서 서해, 남해, 동해를 거쳐 다시 강화도까지 가는 거에요. 우리나라 한 바퀴 돌기


할아버지: 자장구로 댕기믄, 안 추우유(안 추워요?)


자전거 식객: 그래서 옷을 단단히 입었습니다


할아버지: 잠은 워디서 잘라구유?


자전거 식객: 선착장에서 텐트 치고 자려구요.


할아버지: 환장허겄네. 얼어죽을라구 그류? 우리집이 저 건너편인디 우리집으루들 와유. 자구 가유.


자전거 식객: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다 준비를 해왔어요.

여행중에 시골마을을 지날 때면 특히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들은 노숙을 하겠다는 우리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신다.


이번 투어에는 정상욱 선배의 아내가 게스트로 참가했다. 부부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보기 좋았으나 정선배의 아내는 평소 장거리 주행 경험이 없는지라 10여km를 달린 뒤 지쳐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는 못가겠다고 항복을 선언했다. 정선배는 이 지점에서 고민을 한다. 정선배는 대한민국 해안선 전국일주 코스를 누락되는 구간 없이 온전히 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후환이 두려웠는지 결국 아내와 함께 남은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했다. 사실 매달 한번씩 집단가출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아내에게 잘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다. 자전거식객팀에서 나이로는 허영만 화백에 이어 두번째 연장자인 정선배는 허영만 화백과 은근히 보이지 않는 경쟁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결국 자동차 신세를 지면서 마일리지에서 뒤쳐지고 말았다. 역시 정선배를 경쟁 상대로 생각해온 허화백이 싱긋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삽화=허영만>

석문방조제 출발점에서 본격적인 페달링에 앞서 체조로 몸을 푸는 자전거 식객들. 다리를 꼬고 팔을 위로 뻗는 동작이 마치 발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추위가 심해지면서 예비운동과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허화백 호기 멋졌지만…지옥의 업힐 신음만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멋진 길을 외면할 수 없지”
허영만 화백 쫓아나선 언덕길
경사 심해 앞바퀴가 들릴 정도
팥죽같은 땀이 쉴새 없이 흐르고
능선 오르니 쪽빛 바다가 한눈에
40분간 용쓰며 오른 보람이…


웅도는 굴의 생산지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 웅도 토박이 할아버지께 이 지역 주민은 전통적으로 굴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여쭤보았더니 ‘장지짐’이 최고라고 한다.

굴을 살짝 볶다가 된장을 많이 넣고 끓이는 것으로, 국이 아니라 강된장 스타일의 걸쭉한 조림이다. 끼니때가 된 터라 할아버지의 ‘굴 장지짐’ 요리법 설명을 들으며 군침이 돌았다.

아낙들이 굴을 캐고 남자들은 운반을 맡는다. 옛날에는 지게로 등짐을 져나르거나 소달구지를 이용했으나 이제는 경운기가 대신하고있다. 자전거식객들과 굴 실은 경운기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안을 달리고 있다.



# 무청 아삭함+밴댕이젓…게국지

마침내 물이 빠져 웅도로 접어들자 마을입구 노인정에서 할머니들이 마치 학교가 파한 어린아이들처럼 왁자지껄 ‘퇴근’ 중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할머니들과 보조를 맞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길에 해가 바다로 잠겨 노을이 붉었다. 선착장에 야영준비를 마치고 저녁 반찬을 만들 굴을 사기 위해 근처 민가를 방문 했으나 50대 중반의 주인 내외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굴이 많이 생산되지만 영어조합에서 일괄적으로 수매하기 때문에 따로 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굴 없이 저녁을 지었다. 저녁 반찬으로 준비된 것은 서산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지역 전통음식인 게국지. 김장하려면 무, 배추를 다듬는데 그때 떨어져 나온 배추 겉잎과 무청을 모아 게장간장이나 젓갈 국물을 뿌리고 생선 토막 등을 넣어 김치처럼 항아리에서 숙성시켜 두고두고 찌개로 끓여 먹는다.

요즘엔 별미를 찾는 식도락가들을 위해 드물지만 식당에서 팔기도 하지만 우리는 식당이 아니라 진짜 가정에서 먹는 게국지를 체험하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서산 토박이 박광식(54), 김화숙(47) 부부를 찾아내 자전거 식객의 야영에 초대한 것도 박씨부부가 전통적인 게국지를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박씨 부부는 식당과 전혀 관계없고 서산읍내에서 지물포를 운영 중이다.

“김장할 때 같이 담가요. 어느 해는 꽃게간장을 넣고 어느 해는 그냥 젓갈 국물을 쓰기도 하는데 올해는 밴댕이젓국을 썼어요. 밴댕이젓국이 기름기가 없어서 숙성단계에서 생길 수 있는 누린내가 덜하고 구수하거든요.”

게국지의 첫 맛은 짰다. 웃소금을 따로 치지 않았지만 몇년 숙성시킨 젓국을 듬뿍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저질이 계속되면서 비로소 맛이 느껴졌다. 보통은 그냥 버려졌을 배추 겉잎과 무청의 상큼하고 아삭한 맛이 곰삭은 밴댕이젓국의 짠맛과 어우러져 제3의 맛을 낸다.

“가정에서는 점점 화학 조미료를 덜 먹는데 화학조미료 판매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대량 생산되어 마트에서 팔리는 음식에 엄청나게 들어가기 때문이지. 된장은 물론 젓갈에도 화학조미료를 넣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데 이 국물은 화학조미료에서 나는 가파르고 경박한 맛을 제거해 순하고 깊다.”

그도 그럴 것이 박씨부부가 게국지 재료로 쓴 밴댕이젓은 천일염으로 직접 담은 것.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게국지 국물에 심취해 있을 때 누가 찾아왔다. 바로 초저녁에 굴이 없다고 했던 부부였는데 아저씨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깐 굴 한 보시기.

굴이 없다고 우릴 돌려보내기는 했으나 못내 마음이 무거워 자신들의 저녁거리로 남겨둔 굴을 갖고 온 것이었다. 밤에 기온이 꽤 내려갔으나 춥지 않았던 것은 우모 침낭때문이 아니라 굴을 들고 찾아온 아저씨 아주머니의 푸근한 인심 덕분이었다.

텐트 없이 침낭만으로 잠자리에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낮달로 떠서 일찌감치 중천에 솟은 달. 달을 배경으로 오리 한마리가 별빛 총총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며 까무룩히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우리가 피워놓은 모닥불 주변에 누군가 있다. 모닥불 곁에 가보니 굴을 캐러나온 동네 아주머니들. 배가 오기를 기다리던 아주머니들이 곁불을 쬐러 모여들어 행여 우리를 깨울까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시골 사람들은 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노숙을 하는 우리를 걱정했으나 이 강추위에 물때에 맞추느라 새벽부터 중무장하고 갯벌 투입 대기중인 아주머니들을 보며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주머니들께 해줄 수 있는 것은 장작 몇 개를 더 넣어 불땀을 키우고 커피를 끓여 한 잔씩 대접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커피를 마시며 굴을 캐고, 캔 굴을 까고, 깐 굴을 다시 갯가로 가져와 씻어서 돈으로 바꾸기까지 굴 작업의 하루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앞으로 어디서든 굴 한 점을 먹을 때면 짠물에 쩍쩍 갈라진 굴 캐는 아주머니들의 거친 손등이 생각날 것이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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