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선재도 ‘노부부표 꽃게무침’에 푹 빠지다

입력 2010-1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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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초지대교∼전곡항<하>바닷바람 뚫고 전력질주
배어나는 땀에 몸은 풀려가고

손쓸새 없이 함께 풀려버린 체인
자전거일주팀 체면에 만지작 만지작

모래밭서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열띤 수리 강좌…맥가이버 울고 가겠네
2차 투어의 종료지점인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구멍가게에서 페달링으로 뜨거워진 몸을 ‘아이스케키’로 식히고 있는 자전거 식객들. 허영만 화백(왼쪽 끝)은 팥으로 만든 특정 회사의 B아이스바를 매우 좋아해서 화실 냉장고에는 항상 B아이스바가 채워져 있다.

2차 투어의 종료지점인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구멍가게에서 페달링으로 뜨거워진 몸을 ‘아이스케키’로 식히고 있는 자전거 식객들. 허영만 화백(왼쪽 끝)은 팥으로 만든 특정 회사의 B아이스바를 매우 좋아해서 화실 냉장고에는 항상 B아이스바가 채워져 있다.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싶더니 바람이 강해지고 급기야 천둥 번개가 내리친다.

번개의 섬광 속에서 돌풍이 방풍림을 흔들 때마다 해송 숲은 첼로처럼 낮고 음산한 소리를 냈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체온 유지를 위해 스토브를 켜 뜨거운 차를 끓여 마시는 동안에도 비바람은 텐트를 날려버릴 듯 울부짖으며 사납게 몰아쳤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은 텐트 안은 따스하고 안락했다. 낮에 80여km를 달려 피곤했던 대원들은 빗소리, 바람소리를 자장가 삼아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 기절하듯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치고 하늘은 다시금 말갛게 개었지만 침낭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을만큼 몹시 춥다. “달려야 열이 난다. 출발!”

따끈한 누룽지죽 한 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추위에 전의를 상실하고 뭉기적대자 허영만 화백이 먼저 자전거에 올라 타 길을 재촉한다.



● 선재도에서의 즉석 자전거 수리 강좌

초원을 찾기 위해 가재도구를 몽땅 챙겨 떠나는 유목민처럼 간밤에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 텐트와 침낭 등 야영장비를 걷어 자전거 식객들은 또 다시 길 위로 나섰다. 추위에 뻣뻣하게 굳은 몸은 40여분을 전력 질주해 선재도에 도착한 뒤에야 겨우 땀이 배어나며 풀렸다.



선재도에서 게스트로 참가한 안진수 씨의 자전거가 말썽을 일으켰다. 무리한 변속을 한 탓에 체인이 뒤틀리며 끊어져버린 것이다. 체인이 끊어지면 자전거를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체인이 바퀴에 휘말려 들어갈 경우 부상의 위험까지 있다.

명색이 전국일주인만큼 간단한 고장은 현장에서 수리할 수 있도록 필수 공구를 휴대하고 다니는 이진원, 김경민이 체인 툴을 이용해 끊어진 체인을 간단하게 다시 연결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이 닥칠 텐데 수리 담당 한두 명에게 의존하지 말고 멤버 누구나 기본적인 수리 방법쯤은 알고 있어야겠다. 잠깐 시간을 내서 배워보자”

탐구심이 강한 허영만 화백의 제안에 썰물 때 선재도 본섬과 모래톱으로 이어지는 목섬(현지 사람들은 불섬으로 부르기도 한다)으로 들어간 뒤 즉석에서 자전거 수리 강좌가 열렸다. 자전거 전국일주 경력이 있는데다 한때 자전거 수입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 이진원과 김경민이 강사로 나섰다. 타이어 펑크 때우는 법, 끊어진 체인 연결하는 법, 앞뒤 변속기 세팅하는 법 등 자전거 여행자라면 꼭 알아둬야 할 알토란같은 강의가 이어졌다.

허화백은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전에서 대처하는 것은 다르다며 펑크 때우는 과정을 일일이 따라 해보는 열의를 보여 해변에서의 강의 분위기는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처럼 사뭇 진지해졌다. 주말을 맞아 목섬을 찾은 관광객들은 모래밭에 자전거를 눕혀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우리들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삽화=허영만>

자전거 식객 전국일주 투어에는 매달 한사람씩 초대 손님이 참가한다. 대부도, 선재도 구간에는 두꺼비가 상징인 모 소주 회사에 근무하는 안진수씨가 페달링을 함께했다. 날이 저물고 캠핑을 하던 중 자전거는 물론 등산, 인라인스케이트 등에도 조예가 깊은 안씨가 10여년 전 인라인스케이트를 처음 타던 당시를 회상했다.

“한강에서 인라인스케이팅을 하면 모두 신기해 쳐다봤다. 아마 내가 대한민국 인라인 1세대일 것이다”라는 안씨의 얘기에 구석에 앉아있던 홍석민이 이의를 제기했다. 족보(?)를 따져본 결과 홍석민이 나이는 10살 정도 아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로는 대선배인 것으로 판명됐다. 홍석민은 모험스포츠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10대 시절부터 암-빙벽등반, 고산등반, 카약, MTB 등 다양한 레포츠를 선구적으로 섭렵한 스포츠마니아.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셈이 됐다.

선재도 어부 부부의 안방을 차지하고 받은 가정식 백반 상차림. 인공 조미료 음식에 식상해 있던 우리들에게 이 날의 밥상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선재도 어부 부부의 안방을 차지하고 받은 가정식 백반 상차림. 인공 조미료 음식에 식상해 있던 우리들에게 이 날의 밥상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해풍 먹은 간재미찜에 바지락 조림 캬!
음식에 인심 버무린 생애 최고의 성찬



● 꽃게무침과 말린 간재미찜…‘진짜배기 가정식 백반’

강의가 끝나자 어느덧 점심시간. 영흥도로 가기 위해 선재도 해안길로 접어들자 작고 아담한 갯마을인 선재리가 나타났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끈 것은 집집마다 높다랗게 세워둔 간짓대에 매달린 간재미들. 바닷바람을 맞아 꾸둑하게 말라가고 있는 간재미의 짭쪼름하고 비릿한 내음은 끼니때를 맞은 나그네들의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변엔 식당이 없다. 마침 경운기에 그물을 싣고 지나는 노부부에게 달려갔다. “저…, 실례지만 혹시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물론 밥값은 치르겠습니다.”

전국일주 자전거투어를 시작한 이래 조미료로 뒤범벅이 된 식당 음식에 적잖이 실망해온 우리들로서는 민촌의 가정집에서 밥을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시골이라 밥상이 변변찮은데…그래도 괜찮겠소?”1. 부부가 전날 조업에서 잡아온 꽃게를 즉석에서 양념에 버무린 게무침. 10마리가 넘는 게가 들어있는 통이 결코 작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게무침은 10분만에 바닥을 드러냈다.2.토장국. 두부는 아침에 부쳐먹고 남은 것을 썼는데도 환상적인 맛을 냈다.3. 겨울철 별미 간재미찜. 아무런 양념 없이 떡을 찌듯 증기로 쪄냈다. 간짓대에 사나흘 매달아두면 해풍과 태양에 마르면서 발효가 이뤄져 제3의 맛을 낸다.4. 낯설은 나그네들의 무례한 부탁에도 흔쾌히 밥상을 차려준 임순옥 아주머니. 이팔청춘 시절 영흥도에서 시집와서 줄곧 선재도에 살고 있다.

“시골이라 밥상이 변변찮은데…그래도 괜찮겠소?”
1. 부부가 전날 조업에서 잡아온 꽃게를 즉석에서 양념에 버무린 게무침. 10마리가 넘는 게가 들어있는 통이 결코 작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게무침은 10분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2.토장국. 두부는 아침에 부쳐먹고 남은 것을 썼는데도 환상적인 맛을 냈다.
3. 겨울철 별미 간재미찜. 아무런 양념 없이 떡을 찌듯 증기로 쪄냈다. 간짓대에 사나흘 매달아두면 해풍과 태양에 마르면서 발효가 이뤄져 제3의 맛을 낸다.
4. 낯설은 나그네들의 무례한 부탁에도 흔쾌히 밥상을 차려준 임순옥 아주머니. 이팔청춘 시절 영흥도에서 시집와서 줄곧 선재도에 살고 있다.


초면의 주민에게 밥을 해달라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부탁. 그러나 노부부는 우리들의 행색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흔쾌히 그러마고 하신다. “시골이라서 뭐 먹잘 게 없는데…. 된장국에 김치라도 좋다면 그렇게 하세요. 한 시간 후에 오세요.”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까지 왕복한 18km의 코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안길이었지만 진짜배기 ‘가정식 백반’에 대한 기대로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노부부의 안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된장국에 밥뿐이라던 임순옥 아주머니의 예고와는 달리 앉은뱅이 밥상에는 상상했던 진수성찬이 그대로 차려져 있었다.

꽃게무침, 말린 간재미찜, 말린 바지락 볶음, 그리고 뜨거운 밥, 호박을 숨벅숨벅 썰어 넣은 된장국과 겉절이….

노부부의 직업은 꽃게잡이라고 했다. 대부도 인근에서 조업을 하는데 오늘 무친 꽃게는 어제 잡아온 것이고 바지락은 아주머니가 초가을에 직접 캐서 말려둔 것을 간장에 볶았다는 것이다. 꽃게무침은 생선으로 치자면 ‘회무침’이다.

생물을 그대로 큼직큼직하게 잘라 고춧가루, 마늘, 간장, 깨, 그리고 매운 풋고추를 넣고 버무리는 이 방식은 간장게장처럼 숙성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즉석 요리. 씹으면 생게의 속살이 입안 가득 들어온다.

금방 먹는 것이므로 짜게 만들지 않아 바가지 가득 담긴 꽃게무침을 향한 젓가락질이 분주하다. 살이 결대로 쪽쪽 찢어져 궁극의 식감을 안겨주는 간재미찜은 해풍에 마르는 동안 적당히 숙성이 이뤄져 아련하게 삭힌 홍어의 맛이 느껴졌다. 꽃게 무침과 간재미찜을 바닥낸 뒤 고추장을 청해 바지락조림을 넣고 남은 밥을 비벼먹었다.

영흥도가 고향으로 꽃가마 대신 어선을 타고 선재도로 시집온 뒤 50여년을 줄곧 선재리에 살고 있다는 임순옥 아주머니는 마치 고향집 어머니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표정. “바지락 맛이 어때요? 나 젊을 땐 한번 나가면 리어카로 하나 가득 바지락을 캐왔는데 이제는 양도 줄고 속이 옛날처럼 꽉 찬 게 별로 없어. 그래도 깨끗하게 씻어서 파리 한 마리 안 달라붙게 잘 말린 거라서 몸에는 좋을 거야.”

이런 음식이 어디 몸에만 좋으랴. 밥을 먹는 동안 가슴까지 따뜻해졌다. 이날 선재도에서의 점심식사는 ‘자전거를 탄 식객’을 표방하고 9월에 투어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성찬이었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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