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낯설음과 부담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도전이기에 성공했을 때 오는 짜릿함과 쾌감은 크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 두려움 역시 상당하다. 그렇기에 ‘처음’이라는 것은 배우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어려운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이룬 배우가 있다. 배우 차주영이다. 한때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에서 ‘큰 거 좋아하던 스튜어디스 혜정이’로 불렸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tvN·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극본 이영미 연출 김상호)을 통해 ‘조선 국모’ 원경왕후로 이미지로 갈아입었다.

작품 종영 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차주영은 “종영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떨린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작품에 관한)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다. 정리되지 않은 것이 많아 소회를 풀어내는 것에 여러 생각이 든다”고 ‘원경’을 떠나보내는 심경을 밝혔다.

드라마 ‘원경’은 차주영에게 첫 사극이자 첫 주연, 첫 타이틀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 무엇보다 실존 인물을 다룬 사극이다. 차주영이 연기하는 원경은 고려 재상지종 15대 가문 중 하나인 여흥 민씨 집안 출신으로 남편 이방원을 조선의 제3대왕 태종으로 만들어냈으며, 세종대왕 모친이다.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원경이라는 인물은 시청자들에게 크게 각인될 수밖에 없다.


차주영은 “타이틀롤에 첫 주연이다. 게다가 사극이다. 어떻게 이 인물을 소화해야 하는지에 부담이 컸다. 현장에서 많이 도망가고 싶었다. 뻔뻔해지는 게 어렵더라. 그러면서도 순간 내 약한 모습이 작품 방향성을 잃게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하는 게 답이라고 주문을 걸었던 것 같다. 버티려고 했다”고 여러 부담감을 언급했다.

원경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태조 이성계나 태종 이방원과 달리 원경왕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비워진 부분을 창조하는 게 필요했다. 그 부분은 오롯이 내 연기로 해줘야 했다. 역사라는 게 때로는 불친절하게도 느껴졌다. (문헌과 다른 작품 등을) 참고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 시도가 제한될 것 같아 내 감정을 기준으로 원경을 표현해보려고 했다”라며 “태종 이방원을 다룬 작품을 보며 공부했다. 최명길 선배가 했던 원경왕후 연기를 참고했다. 전인화 선배 등 중전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는지 참고한 것 같다.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기에 참고만 했다”고 설명했다.

원경은 실존 인물이다. 역사 기록이 부족해 인물을 재해석했다고는 하나 자칫 역사 왜곡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때문에 많은 사극이 역사 왜곡 논란에 직면한다. ‘원경’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대해 차주영은 “역사를 다루는 거라 한 장면을 촬영하는 데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을 보며 불편한 분도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한다.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연기했다. 진심을 다해 연기해 설명되게끔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다. 핑계나 이유를 대면서 할 수 없으니까 답답한 부분도 있었고 죄송스러운 부분도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종일관 ‘어렵다’는 말을 꺼내놓는 차주영. 가장 어려웠을 노출 장면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실제로 ‘원경’은 방영 초반 선정성 논란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만큼 여배우에게 노출은 다소 불편할 수 있는 포인트다.

차주영은 “과감한 것에는 용기 있는 편이다. 배우로서 거리낌이 없다. 다만, 너무 잘 알려진 분들(역사적 인물)에 대해 시도하는 것에 있어 조심스러웠다. 많은 합의가 필요했다. ‘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안다. 다만, 이야기 중심은 ‘조선 왕실 부부의 사랑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것에는 ‘좋은 시도였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어떤 것에는 ‘굳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많은 부분 오해와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안에서 최선과 차선으로 끝까지 노력했다”고 전했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로망이 있다”는 차주영은 역사에 진심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과거 어떤 시대 속 캐릭터 삶을 연기하고 싶다고. ‘원경’을 이제 온전히 떠나보내는 차주영은 “유의미한 작품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기에 애틋하고 안쓰러운 작품이다. 이제야 연기라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의 일생을 다루는 작품을 해버려서 다 소진된 느낌이다. 앞으로 무슨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최선이든 아니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끌어다가 휘발시킨 느낌이다. 그래서 아직 다음 작품에서 이만큼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 사이 새 작품에 들어갔다. 어쩔 수 없다. 주어지면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쏟고 못할 것 같다가도 재미있는 것을 보면 또 해보는 것 같다”고 ‘원경’ 아닌 또 다른 모습을 예고했다.

홍세영 동아닷컴 기자 project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