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장화리 해안제방. 하늘이 온통 불 타는 듯 화려하고 장엄한 노을에 취해 페달링을 멈춘 집단가출팀. 잘곳을 정하지 않은채 달리다 해가 저물면 야영하기로 한 약속에 따라 이 곳 장화리가 첫 캠핑 장소가 되었다.
웃음에도 종류가 있다. 눈웃음, 비웃음, 속웃음, 너털웃음, 함박웃음, 너스레웃음…. 차에서 내리는 허영만 화백이 활짝 웃고 있다.
허화백은 원래 늘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것이 매력이자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자전거 전국일주의 첫 날, 아침 일찍 집결 장소에 도착한 허화백의 웃음에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것들이 섞여 있었다. 뭐랄까. 페이소스(pathos), 혹은 허탈감?
월곶 연미정 부근 <간판 없는 주막집>에서의 짧은 목 축임. 두부와 순무김치를 안주삼아 마시는 강화쌀막걸리는 한반도를 한바퀴 돌기 위해 길을 떠난 나그네들에게 더없이 따뜻한 위로가 됐다. 허화백(왼쪽에서 두번째)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파안대소하고 있다.
빌린 자전거면 어떠리…한바탕 웃고 집단가출 스타트
10분에 차 한대 꼴 해안도로…이보다 좋을 순 없다
손에 잡힐 듯 북 들녘, 황금햇살 아래 처연한데
“나…, 자전거를 안 가져왔어.”
육지와 연결된 서해 최북단의 섬 강화도에서 시작된 자전거 전국일주는 대장인 허화백의 어이없는 ‘건망증 굴욕’으로 시작됐다. 새벽에 서둘러 집을 나선 허화백이 가장 중요한 자전거를 놔둔 채 비박 장비만 달랑 챙겨 온 것이다.
다행히 정상욱 부대장에게 자전거 한 대가 더 있어 남들은 다 자전거를 타는데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빌린 자전거가 워낙 몇 년째 타지 않고 모셔뒀던 탓에 타이어부터 브레이크, 변속기까지 모두 다시 손봐야했다.
‘장가가는데 그걸(?) 떼놓고 온 셈’이라거나 ‘군인이 총 없이 전쟁터에 나온 꼴’ 등등 살가운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 만화가라는 영예로운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허화백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건망증 심각한 대장의 임시 자전거를 정비하느라 예정보다 1시간 가량 늦은 오전 9시에 강화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북쪽 해안도로에서 페달링을 시작했다.
논이 많은 강화도는 가을 햇살을 받아 온통 황금빛이다. 강화도 북쪽해안은 서울을 관통한 한강과 황해도 개성을 거쳐 나온 예성강이 강화만으로 흘러드는 너비 1.5km 남짓의 수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이 북한 땅이다. 해안선을 따라 철책이 섰고 해안도로 대부분이 민간인통제지역이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덕분에 10분에 한 대꼴 밖에 자동차 구경을 못 할 만큼 도로가 한적하다.
자전거로 달리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길.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북한의 들녘도 가을색이 처연하다. 물 빠진 갯골에서 게를 쫓던 해오라기 한 마리가 날아올라 훠이훠이 휴전선을 넘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방향을 틀어 임진강 하구를 향해 날아간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강 건너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 울고/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협동벌 이삭바다 물결 우에 춤추니/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북한 가요 ‘임진강’의 노랫말이다. 60년대 일본의 ‘더 포크 크루세이더’(The Folk Crusaders)가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끌다 냉전으로 금지곡이 되었다. 금지가 풀리며 재일한국인들을 다룬 일본 영화 ‘박치기’의 일본어 OST로 국내에도 소개됐다.
파주 도라산 통일전망대에서는 남한 버전의 ‘임진강’을 거의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다. 북쪽을 향한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실향민들은 노래 첫 소절에서 그만 눈물을 왈칵 쏟을 만큼 멜로디가 심금을 울린다.
자전거용 숏타이츠를 입은 홍성민의 다리가 왠지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리에 털이 한 올도 없다. 개그맨 뺨치게 입담이 좋은 그에게 다리에 털이 없는 사연을 물어보니 자전거로 달릴 때 공기와의 마찰에 의해 속도가 감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에 일부러 면도를 하고 나왔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무슨 자전거 경주에 나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말을 믿어야할까? 대부분의 멤버들은 홍성민의 무모증(無毛症)을 의심했다. 그림에 함께 등장한 팀의 2인자 정상욱 부대장은 자신을 항상 실제보다 더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허화백에게 불만(?)이 많다.
번철에 들기름 두르고 둘둘 부친 두부부침에 막걸리 한대접…“그래 이맛이야”
물론 남한판 ‘임진강’은 남녘은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는데 북녘은 풍년으로 이삭바다를 이룬 것으로 묘사한 2절 가사를 서정적 내용으로 바꿨다.
강화도 북쪽 해안은 바다와 가깝게 난 대부분의 길에 해병대 검문소가 있어 농사를 짓는 현지 주민 외에 사전에 허가를 얻지 못한 외지인들은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 하지만 검문소를 통과하지 않고도 논길로 우회할 수 있어 자전거 코스를 연결해 나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철조망이 쳐진 해안도로보다 탁 트인 이삭바다 사이사이로 가끔 날아드는 메뚜기를 피하며 논길을 가로지르는 것이 더 운치 있고 정겨워 검문소에 막혀 갈 수 없는 길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연미정 주막집 할머니가 차려준 소박한 주안상.
그날 만든 것 그날 팔면 끝
간판도 없는 소박한 백반집
20년 내공 쌓인 환상의 맛
“막걸리에 두부 몇 쪽 주고 돈은 무슨…”
인심좋은 할머니는 손을 내젓고
아!∼ 오늘 술이 아니라 정을 마셨노라
● 쇠말 탄 과객 마음 적신 강화 쌀막걸리
월곶 연미정 앞에서 또 한번 검문소를 만나 우회로를 묻기 위해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들었다. 가게 안 쪽은 살림집인 듯 부엌에서 주인 할머니가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며 나온다. 소녀같이 곱게 나이 드신 주인 할머니에게서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났다. 햇깨를 털어 짜냈을 들기름 향기가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배를 출출하게 만들었다.
“냄새가 좋네요?”
“두부 부쳐요. 점심 때 손님상에 내려고….”
간판도 없는 할머니의 구멍가게는 사실은 백반을 파는 식당이었고 두부라는 말이 나오자 우리는 더 이상 길을 재촉할 수 없었다. 누군가 자전거를 ‘쇠말’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쇠(금속)으로 만든 말(馬)…. 참으로 그럴싸하지 않은가? 우리는 쇠말을 탄 과객이고 마침 이곳에서 적절한 주막을 만난 것이다.
마당 한 켠에 마련된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고 나그네답게(?) 탁주를 주문했다. 할머니는 두부와 순무김치, 그리고 강화 쌀막걸리 두 병을 내왔다. 양은 사발에 따른 막걸리가 뱃속을 짜르르 훑어 내린다.
간척지 쌀이 맛있다는 통설은 헛말이 아니었다. 막걸리 맛은 쌀 맛이고, 강화도의 논은 대부분이 간척지여서 그 쌀로 빚은 막걸리는 걸고도 그윽했다. 번철에 들기름을 두르고 방금 부쳐낸 두부는 길 떠난 여행자들의 허기는 물론 객수(客愁)까지 어루만졌다.
강화에는 이름난 두부공장이 두세 곳 있는데 할머니는 읍내 강화중학교 옆에 있는 단골 두부공장의 것을 쓴다.
“한 20년 됐나? 그 집은 많이 안 만들어요. 그날 만들어 그날 팔면 끝이에요.”
뜨거운 두부 부침에 시원하고 새콤한 순무 김치는 완벽한 미각의 조화여서 막걸리 두 병은 1인 1사발로 댓바람에 동이 났다. 대장을 포함해 입맛만 다실 뿐 모두들 말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전국일주 투어의 첫날인데 뜻밖에 시작된 술추렴으로 일찌감치 퍼질러 앉게 될 것을 걱정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심전심으로 막걸리를 추가해 1인당 두 잔을 마신 뒤 석 잔까지 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초인적 자제력이 필요했다.
잠시 후 할머니는 장화를 신고 가게 아래로 흘러드는 고랑으로 내려가더니 미리 쳐놓은 통발에서 한 됫박쯤의 미꾸라지를 꺼내온다.
연미정 주막집 할머니. 굳이 돈을 받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한편 넉넉한 인심에 가슴이 찡했다.
할머니 혼자서 일하는 식당은 간판도 없는 소박한 백반집이지만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된다. 점심 예약손님 중 추어탕을 주문한 경우 이렇게 통발을 놓아 미꾸라지를 잡는다는 것이다. 시골인데다 예약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식당 운영 스타일이 감동스럽다. 욕심 같아서는 추어탕 점심상을 가로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할머니가 예약된 밥상을 불쑥 나타난 나그네들에게 내줄 만큼 호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추어탕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두부부침, 막걸리 값을 치르려하자 뜻밖에 거절했다.
“밥도 안 먹었는데 무슨. 막걸리에 두부 김치 몇 쪽 주고 돈을 어떻게 받나요.”
아! 할머니. 한사코 거절하는 할머니에게 더 이상 돈을 드리려는 시도는 무의미했고 또한 예의가 아니었다. 우리가 마신 것은 막걸리가 아니라 정(情)이었던 것이다. 마침 배낭 안에 포장을 뜯지 않은 새 티셔츠가 있었다. 선물로 받아달라고 수차례 간곡히 부탁한 끝에야 어렵사리 티셔츠를 드릴 수 있었다. 장화를 신은 할머니는 우리가 논길로 접어들어 가물가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당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