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 사커에세이] 데이터만으론 부족한 연봉협상

입력 2009-12-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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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성남의 챔피언결정전이 올해 마지막 축구열기를 불사르고 있는 가운데 경기장 밖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소리 없는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 내년 시즌을 앞둔 각 클럽들의 선수 스카우트 및 연봉협상이 그것이다. 사실 K리그 연봉협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협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협상(Negotiation)이란 양측이 대등한 처지에서 의견차를 좁혀가는 것이지만 K리그에선 아직 클럽이 ‘갑’이고 선수는 ‘을’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선수가 원하는 연봉을 물어보긴 하지만 이미 구단의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협상의 여지는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선수(대리인)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무기 중의 하나는 구단이 작성한 자체 고과표다. 특정 선수의 시즌 팀 공헌도를 각종 지표를 동원해 산출해내는데 클럽마다 제 각각이다. 어지러운 숫자들이 모여 하나의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IT 강국다운 발상이지만 문제는 클럽이 체계적인 분석자료라고 내세우는 데이터가 피부로 느끼는 팀 공헌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수십억개의 유전자로 구성된 사람의 능력을 몇가지 수치로 계량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데이터의 함정’이라는 것도 자료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다. 구단이 만든 데이터는 참고 자료일 뿐 연봉협상의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럽 어느 구단을 봐도 K리그 클럽처럼 복잡하게 연봉협상을 하는 경우는 없다. 매년 연봉협상을 하는 경우도 드물 뿐더러 이처럼 복잡한 데이터를 동원하지도 않는다. 경기 출전시간, 공격포인트, 감독 평가 등 기초자료는 있지만 실제 결론은 스포츠디렉터의 주관적인 평가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스포츠디렉터의 능력이다. 구단과 선수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모나지 않게 결론을 내려면 경기장 안팎에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 유럽클럽들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선수대리인 출신이 이러한 스포츠디렉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1부리그 20개 클럽 가운데 40%%가 선수대리인 출신이 스포츠디렉터를 맡고 있다. 필자 회사 소속 선수들이 뛰고 있는 발렝시엔 FC나 FC낭트 역시 스포츠디렉터가 선수대리인 출신이다. 선수대리인 출신 스포츠디렉터의 전직을 살펴보면 선수 출신이 60%% 이상이고, 축구기자 출신도 20%% 가량 된다.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선수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해 협상을 해야 하는 클럽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아주 그럴싸하다는 생각이다. K리그 클럽들도 스포츠 에이전트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보단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 국제적인 안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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