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코트에 돌아온 모비스 함지훈. 상무 입대전 우승 감격을 누렸던 그는 ‘입대 전 우승, 제대 후 또 우승’을 차지했던 팀 선배 양동근처럼 올시즌 모비스의 우승이란 큰 꿈을 꾸고 있다. 용인|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군대와 축구,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남성들의 대화라고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최악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다. 그럼 군대에서 농구한 이야기는 어떨까. 그리고 그 주인공이 농구스타 함지훈(28·모비스)이라면 재미있을까.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코트로 다시 돌아온 함지훈을 만나 군대에서 농구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웠고 많은 의미가 느껴지는 대화였다. 특히 병영일기는 80%가 거짓 혹은 과장이라고 하지만 함지훈의 병영 스토리는 100% 진실임을 보장한다.
빗물 섞인 밥·야외 취침
군 생활 큰힘 돼준 가족·여친·팬들의 편지
힘들다는 이등병땐 행운의 태극마크
그래도 난 특기병,슈팅 갈고 닦았죠
말년 휴가때도 훈련장서 땀뻘뻘
고무신 바꿔신지 않은 여친과 4월 결혼
키작은 포워드?…하지만 내 무기는 자신감
고마운 그녀에게 사랑의 슛 프러포즈
○훈련병: 팬레터에 파묻혀 지냈던 농구스타, 편지 한 장에 뭉클
함지훈은 2009∼2010시즌 모비스의 통합 우승을 이끌며 시즌과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그리고 2010년 4월 19일 입대했다. 프로농구 최정상에 올랐고 최고의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는 머리를 짧게 깎고 훈련소에 들어갔다. 국가대표 선수도 최고의 한류 스타도 단 며칠 만에 자신의 이름보다 ‘000번 훈련병’이 더 익숙해지는 그 곳, 함지훈도 부모님의 편지 한 장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며 군인이 되어갔다.
“모든 것이 다 바뀌잖아요. 처음 훈련소에 가면 며칠씩 화장실에서 볼일을 못 보는 친구들도 있고…. 모든 일상과 행동 하나 하나 규정을 지켜야 하고 훈련병은 모두 처음에 외로움도 타고 적응에 고생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부모님과 여자친구, 가족들이 보내준 편지가 가장 큰 힘이 됐어요. 팬들도 그곳까지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잊을 수가 없어요. 읽고 또 읽고…. 그 전까지는 편지를 언제 써봤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는데 제가 부모님은 물론 누나한테까지 편지를 썼다니까요. 하하하. 영원히 잊지 못한 추억이죠.”
최고의 환경에서 운동에 전념하던 농구 스타는 군대에서 비를 맞으며 밥을 먹고, 천막을 치고 야외에서 잠을 잤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군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야외 숙영 훈련을 나가 밥을 먹는데 비가 내리더라고요. 피할 곳도 없고 빗물 섞인 밥, 국을 맛있게 먹었죠. 바로 엊그제처럼 기억이 생생하네요. 하하”
○국가대표팀에서 보낸 행복한 이등병
훈련병이 힘들었다면 이등병은 서럽다. 훈련소는 수 십, 수백 명의 동기들과 함께 하지만 이등병이 되면 고참들과 함께 부딪치며 생활해야한다. 함지훈은 국군체육부대 상무에서 군 생활을 했다. 특별한 부분도 있지만 상무도 군대는 군대다. 상무에서도 이등병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상무는 모두 같은 직종에서 종사하던 사이다. 전역 후에 모두 다시 코트에서 만난다. 함지훈은 “아무래도 다시 만날 사이이기 때문에 농구 선배가 후임이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군대는 군대, 계급에 따른 역할은 일반 부대와 똑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는지 이등병 생활을 참 편하게 했어요.” 왜? 고참들이 모두 농구 후배였나? “아니요. 아무리 고참이 후배라도 계급이 우선이고 이등병은 이등병이죠. 사실 저는 이등병 생활 대부분을 국가대표에서 보냈어요.(웃음)”
○군대에서 한 단계 성장한 농구선수
군 생활 잘한 사람들은 그 기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는다. 뚱뚱하거나 말랐었지만 건장한 몸으로 되돌아오고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성숙하는 경우도 많다. 특기병으로 입대한 함지훈은 농구를 더 갈고 닦았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슈팅이 많이 좋아져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더 성장한 모습으로 되돌아가자는 마음가짐이 컸어요. 어차피 꼭 한번은 가야할 군대, 팀이 우승한 다음에 입대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어요. 대신 농구 많이 배워서 돌아오자고 다짐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열심히 배우고 왔습니다.”
○휴가 때 팀에서 훈련한 분대장
농구대잔치에서 우승도 하고, 농구하랴 훈련하랴 청소하랴 시간은 빨리 흘렀다. 함지훈은 어느 덧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에서 일병, 상병을 거쳐 병장이 됐다. “그 뭐라고 할까요. 뭔가 모를 자신감? 하하하. 말년이 되면 다 열외죠. 상무도 군대, 똑같습니다.(웃음) 생각해보면 군대에서 잘 먹고 좋은 몸 만들었어요. 상무는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사들이 모여 있어서 식단도 조금 다르다고 들었어요. 빵과 우유, 간식도 매일 나오죠.”
전역이 다가오면 걱정 반, 기대 반이 된다. “굉장히 다급해지더라고요. 팀을 위해, 그리고 손꼽아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더 잘해야 한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자 그런 마음이 강했어요. 병장이 되고 분대장이 되고 제법 군인다운 모습이 됐는데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자 느긋이 말년을 즐기지 못하겠더라고요. 시즌 중에 전역이고 플레이오프에 가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어요. 저는 마지막 휴가 때 팀에서 훈련 했어요.”
○떨린 복귀전, 그리웠던 집 울산
2월 3일 전역 그리고 하루 뒤인 4일 복귀전.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프로무대로 돌아왔다. 그토록 그립던 프로 코트.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MVP 출신이지만 2년 만에 프로경기는 떨렸다. “정신이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많은 관중이 있는 프로경기니까 분위기도 다르고 살짝 어색한 느낌도 들고, 긴장을 많이 했어요. 두 번째 경기부터 조금 달랐어요. 특히 홈 울산에서 하니까 굉장히 마음이 편하고 집에 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많은 분들이 반겨주셔서 고마웠죠. ”
여자친구 김민경 씨와 함지훈. 사진제공|울산 모비스
○거꾸로 신지 않은 고무신, 그리고 결혼
입대 전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중 하나는 단절 그리고 이별이다. 다행히 함지훈에게 그런 아픔은 없었다. 4월 결혼식을 올리는 여자친구 김민경 씨와는 6년간 열애를 했다. “힘이 됐죠. 편지도 보내주고. 4월에 결혼해요.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한국농구는 스타에 목마르다. 농구대잔치 스타였고 프로 탄생의 원동력이었던 문경은은 벌써 감독이 됐다. 최고의 스타였던 이상민도 지도자 준비에 한창이다. 세상을 들썩 들썩할 수 있는 새로운 대형 스타가 빨리 나와야 프로농구도 다시 뛰어 오를 수 있다. 함지훈은 리그에서 가장 잘 생긴 선수다. 영화배우나 모델을 했어도 충분한 빼어난 외모를 갖췄다. 결혼은 열성 여성 팬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민은 결혼 후에도 ‘영원한 오빠’였다. 군복무를 마친 함지훈도 리그를 대표하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는 시기다. 특히 그의 포지션에 큰 의미가 있다.
○스타에 목마른 한국농구
프로농구 출범 이후 서장훈, 김주성, 하승진처럼 2m를 훌쩍 넘는 대형 센터를 제외하면 파워포워드와 센터 골밑을 책임져야하는 포지션에서 대형 스타가 드물었다. 신체적 능력이 월등한 외국인 선수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함지훈은 198cm로 2m가 되지 않는 골밑 플레이어다. 흑인 용병들과 비교해 폭발적인 점프는 없지만 정교하고 영리한 플레이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앙대 후배인 오세근(25·KGC)과 함께 토종 파워포워드로 프로농구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희망이다. 오세근이 가장 닮고 싶은 선수 중 한 명도 함지훈이다.
함지훈은 “골밑에서 작은 편이죠. 프로에 데뷔했을 때 유재학 감독님이 ‘외국인 선수가 수비를 하면 더 자신감 있게 붙어라’고 말씀하셨어요. 높이도 중요하지만 더 자신감 있게 승부하면 이길 수 있다고 믿어요. 세근이요? 대학 졸업반 때 입학 예정이었던 오세근과 함께 훈련을 했어요. 프로에 들어와 저렇게 잘 하고 있는 것이 조금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워낙 뛰어난 선수였죠. 좋아하는 후배지만 프로이기 때문에 경기에서는 꼭 이겨야 하잖아요. 앞으로 (오)세근이와 대결이 많이 기대돼요. 이기기 위해서 연구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대 전에 우승했고 전역해서 우승한 양동근
인터뷰 마지막으로 다시 데뷔한 것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온 프로무대에서 새 목표를 물었다. 함지훈은 “계속 (양)동근이형 따라 가야죠”라며 웃었다. “동근이형이 입대 전에 우승했고 다시 전역한 다음에 또 우승했어요. 제 목표는 무조건 동근이형 따라가기입니다. 돌아왔으니 동료들과 함께 또 우승해야죠.”
함지훈?
▲생년월일=1984년 12월 11일
▲출신교=미아초∼삼선중∼경복고∼중앙대
▲키·몸무게=198cm·100kg
▲드래프트=200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모비스 지명
▲군 복무기간=2010년 4월∼2012년 2월
▲주요 수상경력=2008∼2009시즌 우수후보선수상, 2009∼2010시즌 MVP·베스트5, 2010년 동아스포츠대상 남자농구 올해의 선수상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