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2014년 이후 59명, V리그 임의탈퇴제도의 민낯

입력 2020-09-16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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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스포츠동아DB

이숙자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스포츠동아DB

V리그에 임의탈퇴제도가 도입된 이후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한국배구연맹(KOVO)이 공시한 임의탈퇴선수는 총 59명이다. 남자 22명, 여자 37명이다. 남자부 첫 사례는 2014년 6월 30일자로 공시된 이철규(현대캐피탈), 목진영, 최민국, 구본탁(이상 삼성화재) 등 4명이었다. 가장 최근의 임의탈퇴선수는 심장질환 관련 수술을 받아 당분간 선수생활이 어려운 손주형(OK저축은행)이다. 8월 7일 공시됐다. 팀별로는 삼성화재(5명)~한국전력·우리카드(이상 4명)~KB손해보험·OK저축은행(이상 3명)~현대캐피탈(2명)~대한항공(1명)의 순이다. 대한항공은 2015년 6월 5일 공시된 정바다가 유일하다.

여자부도 첫 사례는 2014년 6월 30일자로 공시된 이숙자, 양유나(이상 GS칼텍스)를 시작으로 박슬기(현대건설), 차희선(도로공사), 김민주(IBK기업은행) 등 5명이었다. 가장 최근은 새 시즌 선수단 구성과정에서 빠진 최수빈, 백목화, 김현지, 변지수(이상 IBK기업은행), 정선아, 강지민(도로공사) 등 6명이다. 이 중 백목화는 결혼을 앞두고 유니폼을 벗었다. 정선아는 스스로 배구를 포기했다. 재능을 안타까워한 구단이 몇 차례 면담을 통해 만류했지만 “배구공을 잡으면 손이 떨린다”며 그만뒀다. 일종의 입스 증세다. 정선아는 배구를 떠나 행복한 새 인생을 개척할 수도, 시간이 흘러 코트로 돌아올 수도 있다.

● 왜 여자선수들의 임의탈퇴가 많을까?
1998년생 정선아의 사례처럼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팀에 입단하는 여자선수들은 몇 년간 배구를 포기하더라도 그 뒤 다른 팀에서 선수생활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구단들은 이를 막으려고 남자보다 임의탈퇴를 더 자주 사용한다. 반면 남자는 군 입대라는 현실적 문제도 있는 데다, 몇 년을 쉰 뒤 다시 프로팀에서 활동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2015년 은퇴한 뒤 현역으로 복귀한 한국전력 안요한은 정말 예외적 사례다.

황당한 것은 배구를 잘했던 몇몇 여자선수의 사례다. 구단이 은퇴식까지 해준 이숙자 KBSN스포츠 해설위원, IBK기업은행 사회공헌부 스포츠단 직원으로 일하는 남지연 과장 모두 임의탈퇴선수다. 팀별로는 IBK기업은행(9명)~도로공사·GS칼텍스(이상 8명)~흥국생명(6명)~KGC인삼공사(4명)~현대건설(2명)의 순이다.

선수와 구단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다. 계약기간 중에는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구단은 계약서에 명시된 월급과 훈련 및 경기에 필요한 시설, 인원을 제공하는 대신 선수에게는 열심히 훈련해 경기 때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 때 서로가 기대했던 최선의 행동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분쟁이 생기고,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임의탈퇴를 동원한다. 리그 운영을 위해선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최근 이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V리그의 임의탈퇴제도가 선수에게만 아주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말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 모든 제도의 기본은 균형과 양보의 정신
V리그에선 임의탈퇴 공시 뒤 한 달 이후에는 원 소속팀에 복귀할 수도 있다. 프로야구는 이 기간이 1년이다. 선수가 마음대로 팀을 옮기려고 하면 리그가 성립될 수 없기에 이를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다만 최근에는 구단들에 의해 선수에게 족쇄를 채우는 방법으로 제도가 변질되긴 했다.

처음 임의탈퇴제도를 만들었을 때의 정신은 ‘임의탈퇴선수=해당 구단 소속 선수’였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가뜩이나 적은 선수단 엔트리에서 임의탈퇴선수가 나오면서 신인선발이 어려워졌다. 해마다 적정 인원을 프로팀에서 뽑아주지 않으면 아마추어배구가 고사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결국 2014년부터 지금의 방식대로 임의탈퇴선수를 팀의 엔트리에서 제외했는데, 이렇게 하다보니 좋은 취지와 어긋나게 선수들의 발목을 잡게 됐다. 이참에 다시 한 번 긍정적 개선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다.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선수와 구단의 균형과 양보 정신이다. 구단이 욕심을 부리면 제 아무리 좋은 제도도 망가진다. 이를 막으려면 선수들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공부하고 투쟁해야 한다. 몰라서 억울한 경우를 당해도 도와줄 사람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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