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항명사건, 그 비극의 숨은 얘기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1-11-22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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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 전 감독. 스포츠동아DB

IBK기업은행은 2011년 V리그 여자부 6번째 구단으로 출범해 2번째 시즌인 2012~2013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줄곧 강팀으로 군림해왔다. 이정철 감독의 단호한 지도력 덕분에 6시즌 연속 ‘봄배구’에 진출했고, 3차례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2차례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런 팀이 하루아침에 팬과 배구인, 지도자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극의 시작은 계약기간이 1년 남은 이 감독을 2019년 경질하면서부터다. 당시 팀은 정규리그 4위로 봄배구에 나가지 못했는데, 이를 기회로 여긴 프런트가 슬금슬금 선수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감독의 카리스마에 눌려 눈치만 보던 프런트는 몰래 컨설팅이란 명목으로 선수들의 의견을 모으더니 교체를 결정했다. 자진사퇴로 포장됐지만, 프런트 주도의 경질이었다.


프런트는 원하는 바를 이뤘지만, 수습능력은 없었다. 선수단 구성에 필요한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차일피일 사령탑 선임을 미루다 결정한 방법이 인기투표였다. 선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새 감독을 결정했는데, 이 때 창단 멤버로 팀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김희진의 의견이 크게 반영됐다. 김희진의 은사였던 인연으로 지휘봉을 잡은 김우재 감독은 선수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가능하다면 편안하게 대해줬지만, 돌아온 것은 기대와는 너무 달랐다.


갑자기 많은 자유를 얻은 선수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이들은 김 감독이 알았던 학창시절의 순수한 선수들이 아니었다. 특히 몇몇 주전들은 권력이었다. 여기에 김희진의 포지션을 놓고 갈등이 생겼다. 김 감독 부임 첫 시즌에는 레프트에 외국인선수 어나이가 있어 김희진이 원하는 대로 라이트에서 뛰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모든 감독들이 눈독을 들였던 라이트 라자레바를 IBK기업은행이 운 좋게 잡았다. 그 바람에 원하지 않는 센터로 뛰어야 했던 김희진을 감독은 끝까지 의지하려고 했다.

김우재 전 감독. 스포츠동아DB


김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줘 경쟁력을 높이려고 했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선참들은 이를 싫어했다. 결국 김희진을 제외한 선참들이 주도해 감독을 ‘왕따’시켰다. 몇몇 프런트는 이들의 ‘여왕놀이’에 가담했다. 이 때문에 IBK기업은행은 어린 선수들이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다른 팀으로 탈출하려는 구단이 됐다. 그나마 지난 시즌에는 내부사정이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아 모든 잘못을 전임 감독과 몇몇 스태프에게 뒤집어씌웠지만,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회사 최고위층이 원하는 새 감독 후보는 따로 있었다. 이 카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채택되지 않았다. 2번째 카드는 선참들과 한 배를 탄 김사니 코치였는데, 이 또한 불발됐다. 결국 서남원 감독이 낙점됐다. 그런데 개막하자마자 연패가 이어지면서 서 감독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이 틈을 타 선참과 코치, 프런트가 감독을 몰아내는 쿠데타를 벌인 게 최근의 상황이다. 이 시도가 성공할지는 아직 모른다.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제 IBK기업은행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몰아내는 그런 수준의 팀이 됐다. 어린 선수들은 그동안 벌어진 하극상을 직접 봤다. 김사니 감독대행과 선참들이 이들에게 열심히 하자고 설득하거나 충성심을 요구할 수 있을까.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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