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류현진의 아재’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 그 역시 국가대표다!

입력 2019-11-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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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뱌아흐로 ‘괴물의 시대’다. 류현진(32)은 2019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29경기에 나서 14승5패, 평균자책점(ERA) 2.32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ML) 전체 ERA 1위. 그리고 시즌 후 발표된 사이영상 투표에서 1위표 한 장을 받는 등 전체 2위에 올랐다. ERA 1위와 사이영상 1위표 득표 모두 아시아 선수 최초의 ‘역사’였다.

괴물의 활약도 혼자 완성된 것은 아니다. 류현진 스스로가 입버릇처럼 강조했듯 ‘숨은 공로자’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53)의 헌신이 숨어있었다. 류현진 전담 스태프로 숨가쁜, 하지만 행복했던 1년을 보낸 뒤 최근 귀국한 김 코치를 만났다. 그가 느낀 류현진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주당의 금주, 자신과의 약속

1989년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 트레이너를 시작으로 지난해 LG 육성군 트레이닝 코치까지…. 김 코치는 꼬박 30년간 야구 현장 일선에서 선수들의 몸을 돌봤다. 류현진과 인연은 2016시즌을 마친 뒤를 시작으로 3년간 비시즌마다 그의 몸을 돌보며 시작됐다. 2019시즌을 앞두고는 류현진이 김 코치에게 풀타임 동행을 부탁했다.

3년간 쌓은 신뢰, 여기에 ‘괴물투수’ 류현진의 존재감에도 김 코치 입장에서 선뜻 미국행을 결정하긴 어려웠다. 한국에서 다져둔 안정적인 입지를 모두 포기해야 했으며, 학업을 마치지 못한 두 아들과 아내가 눈에 밟혔다. 그런 김 코치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자부심, 그리고 학구열이었다. 그는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은 대부분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했다. 당장 마에다 겐타(다저스)도 그렇다. 하지만 박찬호부터 추신수, 오승환 등 한국 선수들은 그러지 못했다. 류현진이라는 최고의 선수에 어울리는 지원을 하는 게 1차 목표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 코치는 “ML이라는 큰 무대의 트레이닝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부딪혀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땅을 밟은 김 코치의 첫 과제는 다름 아닌 금주였다. 자타공인 ‘주당’이었던 그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맥주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행여 훈련장에서 술 냄새를 풍기기라도 한다면, 그 이미지가 곧 한국인 스태프들을 대표하게 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개인적 컨디션 난조로 한두 경기쯤 휴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ML에서는 다르다. 난 오로지 현진이만 돕는 사람이다.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오히려 내 몸 관리부터 신경 썼다. ML 구단들은 경기 후 선수들의 식탁에 맥주를 구비해둔다. 외로운 날에는 술 한 잔에 기대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전국구 스타’ RYU의 인기는 기대 이상!

LA에서 류현진의 입지는 김 코치의 기대 이상이었다. 평균관중 4만6000명의 다저스 팬덤 사이에서도 확고한 스타로 자리매김했으며, 어디로 원정을 가든 식당에서 류현진을 알아보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2019시즌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기에 위상은 시즌 초와 비교해도 몇 계단 올랐다.

유독 하이라이트가 많았던 류현진의 2019시즌 중에도 김 코치는 2경기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첫째는 3월 29일 애리조나와 개막전이었다.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역대 2호 개막전 선발투수. 류현진은 당시 6이닝 1실점 깔끔투로 시즌 첫 승을 챙겼다. 겨울부터 봄까지 그와 함께 했던 김 코치가 마음을 한결 놓은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9월 15일 뉴욕 메츠전이었다. 류현진은 메츠전에 앞선 4경기에서 승리 없이 3패, ERA 9.95로 고전했다. 김 코치의 진단은 “아무래도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기 때문에 한 번쯤 쉬어야할 타이밍이었다”고 돌아봤다. ‘역대급 시즌’을 소화하던 류현진에게 의문부호가 달린 시점. 그는 열흘의 휴식을 취한 뒤 돌아와 7이닝 무실점으로 버텼다. 류현진이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를 수 있던 반등의 계기였다.

●“수준 저하 논란? 환경 조성이 먼저”

KBO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김 코치도 ML 현장에서는 새내기처럼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배웠다. 그러면서 느낀 건 인프라의 차이였다. KBO리그 1군에 트레이닝 파트 담당자는 대개 4~5명이 배치된다. 하지만 ML 구단들은 두 배가 넘는 10명이 선수들의 컨디셔닝에만 매달린다.
물론 시장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신구장에도 원정팀의 컨디셔닝 공간이 없는 건 결국 경기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코치의 지적이다. 관중석이나 라커룸 등은 ML과 견줘도 부족하지 않지만, 컨디셔닝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기에 나온 결과다.

김 코치는 “미국에서도 KBO리그를 꼼꼼히 체크했다. 2019년엔 ‘수준 저하’에 대한 얘기가 유독 많이 나왔다”며 “선수들이 원정에서도 경기에 전념할 환경이 만들어진 뒤 수준을 논하는 게 좀 더 건설적인 논의가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아재는 괴물이 자랑스럽다

류현진은 인터뷰마다 김 코치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는다. 21살의 나이 차에도 ‘아재’라는 친근감 가득한 별명으로 너스레를 떤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류현진의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탓에 김 코치의 2020년 거취도 불투명하지만, 그는 언제든 기다리겠다는 각오다. 김 코치에게 류현진에게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머쓱하다며 망설이던 김 코치는 이내 진심을 전했다.

“현진아, 2019년 네가 기록한 모든 건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다. 그 노력을 옆에서 도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하다. 앞으로 ML에서 몇 년을 더 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의 성실함이라면 더 선명한 발자취를 남길 것으로 확신한다. 아시아를 넘어 어느 선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화려한 역사를 쓰도록 응원할게!”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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