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한국전력 연고지 이전요구에 얽힌 숨겨진 얘기들

입력 2019-03-18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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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사진제공|KOVO

한국전력. 사진제공|KOVO

요즘 봄 배구에 팬들의 눈길이 쏠리는 뒤로 더 중요한 사항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전력 배구단의 연고지 이전 얘기다. 12시즌 동안 수원시와 함께 해온 한국전력은 2018~2019시즌을 끝으로 3년간의 연고지 협약이 끝났다. 수원시는 새로운 협약을 맺으려고 한다. 정식으로 의향서도 제출했다. 이런 와중에 광주지역의 정치인과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연고지 이전을 요구하는 다양한 압박이 한국전력에 밀어닥치고 있다.


● 연고지 이전 요구는 정당한가

몇해 전부터 잊을만하면 나오던 연고지 이전요구는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몇몇 사람들이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기업이 우리 동네에 있으니 스포츠 팀도 우리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한국전력과 V리그는 이런 주장을 무시해왔지만 최근 정치권을 매개삼아 전방위로 몰려드는 압력은 도가 지나쳤다. 가뜩이나 외풍에 약한 공기업의 경영진에게 협박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전을 강요한다. 지역 팬들의 열망을 담아 연고지 이전을 요구하고 이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강요와 압력은 다른 문제다. 아직 광주시에서는 공식 의향서도 한국배구연맹(KOVO)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연고지 이전은 KOVO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해온 행동을 보면 이사회의 반응이 좋을 수도 없다.

이번 연고지 이전 요구는 광주지역의 몇몇 배구인이 앞장서고 지역 정치인들이 나서서 다양한 경로로 압박을 넣는 모양새다. 이들은 김천의 도로공사도 내려왔다. 우리가 KOVO의 각 구단을 찾아가서 설득하고 안 되면 정부, 청와대까지 찾아가서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프로스포츠단의 이전에 굳이 청와대까지 들먹여야하는지 이들의 생각은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 연고지는 정치적 흥정물도 정치인의 전리품도 아니다


연고지는 프로스포츠 비즈니스의 근본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뜻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게다가 이미 터를 잡은 곳에서 잘해왔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옮길 이유도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전력에게는 오래 인연을 맺어온 수원시와의 협의가 먼저다.

한국전력이 수원에 터를 잡은 과거를 잘 기억해보라. 2005년 V리그 출범 때 아마추어 초청구단으로 시작한 한국전력은 현대건설과 함께 창원에서 V리그를 시작했다. 현대건설과 현대건설은 2005~2006시즌 뒤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김혁규 초대 총재의 정치적 연고지에 터를 잡았지만 너무 불편했다. 훈련장과 홈구장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사실상 시즌 내내 원정경기를 했다. 상대팀들도 이동거리가 멀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관중도 매스컴도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방경기를 외면했다. 결국 한국전력의 창원 마지막 경기에는 고작 4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그래서 수원을 선택했다. 광주에서 과거의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정말로 광주에서 프로배구를 하고 싶다면 좋은 인프라를 제공해 한국전력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면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홈구장으로 쓰라는 체육관은 낡았다. 한 시즌은 아예 쓰지도 못한다. 결국은 돈 문제인데 책임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이 것을 보장하겠다는 의사표시도 없다.

반대로 수원시는 한국전력이 원하는 클럽하우스 건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상식선에서 한국전력이 어떤 지역을 선택할지는 뻔하다. 지금 이전 요구는 상식이 통하는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그냥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다.

● 남의 것을 빼앗지 말고 축복받는 창단을 하라

우리의 이득을 챙기자는 욕심만 앞세우다보니 연고지 이전이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팀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의 고민은 빠져 있다. V리그의 수준에 맞는 경기장 시설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먹고 자고 훈련하는 환경이다. 무조건 오고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방식은 곤란하다. 정부정책에 따라 본사는 옮겨갔지만 스포츠 팀이 연고지를 정하는 것은 정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업은 자신들이 하고픈 곳에서 하는 것이다.

지금 김천의 도로공사를 제외하고 12개 구단이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를 연고로 하는 V리그의 좁은 시장은 문제다. 도시연고를 택하면서 생긴 문제다.

하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V리그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다. V리그는 시키지 않아도 좁은 연고지의 한계를 알고 확장을 생각한다. 그 결정도 V리그 구성원들이 한다. 남이 나서서 강요할 것이 아니다. 한국전력의 연고지 이전 주장은 남의 부부관계에 제3자가 억지로 끼어든 꼴이다.

스포츠에서 정치는 빠져야 옳다. 연고지는 몇몇 정치인들이 지역주민들에게 생색을 내는 전리품도 아니다. 정말로 광주에서 프로배구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창단을 해라. 괜히 남의 것을 빼앗지 말고 연고이전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배구단 창단에 힘을 보태는 것이 정정당당하다. 남자는 7개 구단으로 운영되면서 일정 짜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KOVO 이사회도 배구 팬도 지역 팬도 모두 원하는 길을 두고 굳이 어렵게 가지 말자.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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