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4년을 기다려 기회를 잡은 우리카드 하승우의 숨겨진 얘기들

입력 2020-02-26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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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드 하승우. 스포츠동아DB

우리카드 하승우. 스포츠동아DB

2016~2017시즌 V리그 남자신인선수 드래프트 때였다. 최고화제 선수는 성균관대학교 2학년으로 드래프트를 신청한 황택의였다. 그 과정을 놓고 뒷얘기가 많았다. 학교가 반발해서 지금 프로에 가면 졸업을 시켜주지 않겠다고 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공교롭게도 신인드래프트 첫 번째 순번은 김상우 감독이 이끄는 우리카드였다. 황택의를 성균관대로 스카우트했던 주인공이었다. 우리카드는 주전세터 김광국을 군에 입대시켜야 할 때였다. 그 자리를 메울 세터가 필요했다. 황택의는 팀에 필요한 퍼즐이었다.

순번을 정하는 구슬 뽑기 때 작은 해프닝이 나왔다. 김형실 경기위원장이 추첨기를 돌렸다. 파란색이 나왔다. 가장 많은 50%의 확률을 가진 우리카드 쪽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하지만 그 구슬은 추첨기로 되돌아갔다. 추첨기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우리카드는 실망했다. 다시 제대로 돌린 추첨기에서 나온 구슬은 노란색이었다. 35%의 확률을 가진 KB손해보험과 강성형 감독은 환호했다. 우리카드는 2순위로 중부대학교의 하승우를 선택했다. 김광국은 계획을 바꿔 군 입대를 한 해 미뤘다.

2016~2017시즌이 끝나자 박상하가 팀을 떠났다. FA선수로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삼성화재의 보호선수 명단과 우리카드의 선택이 궁금했다. 여기서 누구도 예상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삼성화재를 상징하는 유광우가 보호선수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신진식 감독의 결정이었다. 김상우 감독은 유광우를 선택했다. V리그 최고의 세터가 보상선수로 왔다. 이제 프로 2년차가 되는 하승우에게 주전 세터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김광국이 입대한 뒤로도 여전히 경기에 출전할 선수들이 뛰는 A코트가 아니라 B코트가 그의 자리였다.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스포츠동아DB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스포츠동아DB


프로 3년차에 신영철 감독이 왔다. 기회가 올 뻔 했다. 2018~2019시즌 초반 팀은 4연패를 당했다. 신영철 감독은 전위에서 블로킹 벽이 낮은 약점을 커버하고자 하승우로 주전세터를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터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한국전력 노재욱이었다. 하승우 선발카드는 사라졌고 노재욱은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하승우는 A코트도 B코트도 아닌 곳에서 선배들의 훈련을 지켜봐야 했다. 설상가상 지난해 7월 하승우는 입스에 걸렸다. 훈련 때 갑자기 속공패스를 하지 못했다. 잘 해보고픈 의지와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좌절감,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생각에 몸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군에서 복귀할 김광국을 포함해 팀내 서열 4번째 세터는 미래가 없었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배구를 포기했거나 다른 팀에 보내달라고 사정했을 테지만 그는 달랐다. 입스를 이겨내며 기회를 기다렸다.

2019~2020시즌을 앞둔 연봉협상 때였다. 코트에서 별로 보여준 것이 없었기에 연봉협상 담당자가 되려 하승우를 걱정했다. “어떻게 할래, 안타깝다”고 하자 하승우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연봉은 알아서 주세요”라고 했다. 신영철 감독은 이런 하승우의 인내심과 강한 멘탈을 높게 평가했다. 2019~2020시즌 뒤 노재욱의 군 입대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 감독은 “하승우를 꼭 쓴다”면서 B코트의 그에게 희망을 줬다.

우리카드는 2019~2020시즌을 앞두고 유광우를 대한항공에 트레이드했다. 교통정리가 끝나자 새로운 기회의 문이 계속 열렸다. 김광국이 피부 알러지로 훈련에 잠시 빠졌다. 하승우는 열심히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며 기회를 기다렸다. 3년 내내 없던 기회는 마침내 프로 4번째 시즌 5라운드 때 불쑥 찾아왔다. 노재욱이 허리통증으로 출전이 어려워졌다. 신영철 감독은 2월16일 OK저축은행 경기 때 하승우를 선발세터로 출장시켰다.

그동안 하승우가 어떤 상황이었고 기회를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것을 잘 알기에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고 했다. 초등학교 동기인 리베로 이상욱은 좀더 편안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리시브에 정성을 다했다. 강렬했던 프로 데뷔전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23일 KB손해보험과의 원정경기까지 3연속 주전세터로 뛰며 팀에 3연승, 승점9를 선물했다.

아들이 V리그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하승우의 아버지는 23일 구미에서 의정부까지 올라와 경기를 지켜봤다. 하필 마지막 유관중으로 벌어진 경기였다. 신영철 감독은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며 하승우의 기량을 칭찬했다. 레전드 세터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신영철 감독은 그 발언으로 하승우의 기를 살려주면서 또 다른 메시지도 주려고 했다. “누구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한성정에게 자리를 내준 황경민에게도 펠리페에게 줬던 메시지도 같았다.

그렇게 기다렸던 출전의 꿈을 이룬 하승우가 이제 어떤 세터로 남을지는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선배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출전한 뒤 그대로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롱런하고 있는 대한항공 한선수의 길을 갈 수도 있고 다시 B코트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참고 견디면 기회는 언젠가는 온다는 것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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