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대한항공 선수 가족들이 자가 격리에 들어간 이유는

입력 2020-03-17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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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한선수-곽승석-정지석(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요즘 남녀 13개 구단의 사령탑들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1등은 1등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이 감독의 숙명이지만 지금 상황은 이례적이다. 시즌 마무리 단계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만든 무관중 경기에 이어 무기한 시즌중단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아시아대륙 최종예선전을 위해 이미 한 차례 시즌을 멈췄지만 그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당시는 언제 경기가 재개된다는 정확한 일정이 있었고 눈앞의 성적과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기에 모두가 참고 버텼다. 선수단과 부대끼고 있는 대한항공의 박기원 감독은 “깜깜한 밤에 불빛이 없는 곳을 가는 느낌이다. 목표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나도 선수들도 처음 겪는 일이다. 이럴 때 일수록 자기가 해야 할 일을 100% 하고 있으면 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했다.

시즌이 중단됐어도 훈련을 멈출 수 없는 대한항공은 기혼선수만 출퇴근시키고 있다. 미혼선수들은 3일 한국배구연맹(KOVO)의 시즌중단 발표 이후 숙소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목표가 없는 훈련도 힘들지만 훈련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문제다. 혈기가 넘쳐나는 선수들은 한계상황에 있다. 코로나19가 크게 번지기 전까지 대한항공은 자율적으로 숙소를 이용했다. 원하는 사람만 숙소에서 생활했고 기혼 선수들은 대부분 출퇴근을 했다. 훈련과 경기, 성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가능하다면 집에서 풀고 오고 훈련시간만큼은 집중해서 알차게 하는 것이 박기원 감독과 대한항공이 추구해온 방식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3주 가까이 숙소에 있는 미혼선수들이 특히 걱정이다. 코치들은 이들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최신영화를 다운받아서 보여주고 즐거운 게임을 하면서 훈련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도 풀면서 무료한 시간도 보내도록 했다. 이 바람에 졸지에 레크레이션 강사 역할까지 떠맡은 코치들도 머리가 아프다. “지금은 최대한 선수들을 달래는 중”이라는 박기원 감독의 말에 지금의 상황이 모두 담겨져 있다.

그렇다고 출퇴근하는 선수들도 편한 것은 아니다. 자칫 부주의로 코로나19 감염자가 되면 V리그를 중단시킨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몸조심을 한다. “선수들이 V리그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조심 한다”고 어느 구단관계자는 말했다.

출퇴근 선수들도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행동을 조심한다. 훈련 뒤 집으로 돌아가면 외출을 삼가고 가족들과만 지내다가 다시 다음날 훈련장으로 돌아온다. 이 바람에 더 힘든 사람이 생겼다. 바로 가족이다. “남편들 때문에 대한항공 선수들의 모든 아내와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사실상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고 박기원 감독은 귀띔했다. 그만큼 선수와 가족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상황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 내로 예정된 남녀 13개 구단 단장들의 모임에서 정확한 시즌재개 여부와 일정이 나와야 한다. 각 팀이 준비는 하고 있지만 막연히 훈련하는 것과 정확한 경기일정에 따라 준비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 것을 알기에 KOVO도 최소한 경기개시 사흘 전에는 각 팀에 구체적인 일정을 알려줄 생각이다. 23일 리그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늦어도 19일에는 공식발표가 나와야 한다. 이는 V리그가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데 꼭 필요한 데드라인이다.

“지금은 위급상황이다. 우리 팀의 유, 불리를 떠나 위에서 정해주면 그대로 따르겠다. 지금 모두가 어수선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고 박기원 감독은 말했다. 단장들의 모임이 언제 열려서 어떤 결론을 낼지 V리그의 모든 구성원들은 지금 KOVO만 바라보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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