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V리그 사상 첫 시즌 조기종료가 남긴 뒷얘기들

입력 2020-03-24 10:5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동아DB

스포츠동아DB

23일 한국배구연맹(KOVO) 임시이사회가 2019~2020시즌 V리그의 조기종료를 결정했다.

지난 3일 6라운드 도중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이후 20일 만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V리그도 희생양이 됐다. 워낙 전파력이 강해 2월25일부터 무관중 경기를 하며 일정을 소화하려던 KOVO의 노력은 무산됐다. 조기종료 결정 이후 대다수 팬들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 결정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혹시나 너무 서두른 결정이 아니었는지 걱정하던 KOVO 관계자들에게는 다행스런 여론이다.

아쉬운 부분도 많다. “앞으로 2주간 더욱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해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자”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에 따른다면 4월6일부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KOVO 조원태 총재가 23일 임시이사회를 마친 뒤 “1분 만에 조기종료는 결정됐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각 구단은 현재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여겼다. 조기종료의 결정타는 21일 나온 정세균 총리의 “앞으로 2주간 실내체육시설 사용 자제” 발언이었다.

이번 임시이사회에서 조기종료를 주장하는 쪽과 정규리그만이라도 다 소화하자는 주장, 현재의 성적을 기준으로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자는 구단의 의견은 4-5-4로 갈라졌다. 많은 얘기가 오간 임시이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느 성적 하위 팀 단장의 발언이었다.

많은 팀들이 혹시나 우리 팀에서 감염자가 나올 것을 우려해 시즌을 포기하려고 할 때 그는 프로팀의 존재이유를 얘기했다. “감염이 됐다고 해서 그 사람이 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 것을 두려워해서 팬과의 약속인 시즌마저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반드시 시즌은 다 소화해야 주장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V리그가 이번에 팬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쉽다. 만일 4월6일 이후 감염자가 줄어들어 국민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 그들에게 즐길거리, 볼거리를 줘야할 V리그가 없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그동안 V리그가 휴일과 명절에도 쉬지 않고 경기를 했던 것은 팬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V리그의 존재이유인 팬보다는 우리 팀의 이익만 먼저 생각해서 또 코로나19로 인한 책임을 지기 싫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길 바란다.

KOVO는 시즌 조기종료로 약 13억원의 손해를 봐야 한다. 방송중계료와 타이틀스폰서 계약 가운데 치르지 못한 6라운드 24경기와 봄 배구 최대 17경기의 가치다. “약속된 경기를 다 한다는 계약이었기 때문에 치르지 못한 경기만큼은 받지 못한다”고 KOVO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밖에 경기장에 있는 다양한 광고시설도 치르지 못한 경기 숫자만큼의 돈은 돌려줘야 한다. KOVO는 계약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다.

스포츠동아DB

스포츠동아DB


KOVO는 시즌 조기종료로 1년 수입의 10% 이상 손해가 예상되지만 구단들은 2~3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현재 V리그는 관중수입에 비해 각 구단이 경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큰 구조다. 경기를 할수록 손해나는 상황이었기에 이익이 필요했던 어느 구단은 특히나 앞장서서 조기종료를 주장했다. 외국의 리그처럼 아직 선수들의 연봉을 줄이겠다는 팀은 없다.

임시이사회는 종기종료를 결정한 뒤 성적기준을 놓고 많은 토의를 했다. 최종결론은 모든 팀들이 같은 숫자의 경기를 소화한 5라운드 종료시점이었다. 참고로 5라운드 종료 때와 시즌 종료를 선언한 23일까지의 성적을 보면 상위권 팀의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5라운드 종료를 기준으로 여자부 1위 현대건설은 승점52로 2위 GS 칼텍스에 1점 앞섰다. 남자부 1위 우리카드는 승점64로 2위 대한항공에 2점 앞섰다.

가장 극적인 것은 현대건설이었다. 5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2월23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GS칼텍스와의 맞대결이었다. 그날 현대건설은 먼저 2세트를 내주고 완패당할 흐름이었지만 3~4세트를 만회한 뒤 2-3으로 졌다. 그 경기 뒤 이도희 감독은 “괜찮아, 잘했어. 오늘 따낸 승점1이 앞으로 중요할지 몰라”라며 선수들을 달랬다. 결국 그 승점1이 1위와 2위를 갈랐다.

현대건설은 시즌 조기종료로 큰 한숨도 돌렸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해외의 모든 미국인들에게 조기귀국을 권고했다. 이 발언에 외국인선수 헤일리가 크게 흔들렸다.

자칫했으면 구단과 헤일리가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었는데 23일의 조기종료 선언으로 구단은 홀가분하게 헤일리에게 “이제 편하게 돌아가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리베로 김연견의 부상으로 급히 영입했던 김주하도 조기종료의 승자다. 구단은 김주하의 재등록을 서두르면서 2개월짜리 단기계약을 맺었다. 다음 시즌 김주하가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을지 여부는 FA선수 김연견의 복귀여부에 달려있다. 그래도 김주하는 이도희 감독의 러브 콜을 거부하지 않은 덕분에 단 한경기도 뛰지 않고 1500만원을 벌었다.

모든 성적의 기준을 5라운드 종료로 정하면서 손해를 보는 선수도 나왔다. V리그는 해마다 시즌성적을 기준으로 포지션별 최고선수인 베스트7을 뽑는데 5라운드를 기준으로 할 때와 시즌 종료가 선언된 3월23일의 성적을 기준으로 했을 때와 차이가 나는 선수가 3명 나왔다. 임시이사회에서 이들을 구제할 방법을 놓고 얘기가 오갔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