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레이더] 정글로 변해가는 KOVO 이사회와 리더십의 부재

입력 2020-04-13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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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요즘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를 놓고 걱정스런 말들이 들린다. 9일 여자부 샐러리캡을 다수결로 결정한 것도 그렇고,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미룬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V리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서로 주장이 다를 때 조정자 역할을 해줘야 할 리더십의 부재다. 사실 자기 구단의 이익을 먼저 따져야 하는 단장들의 행동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래서 의견조정이 쉽지 않았지만, 단장보다 더 오래 현장을 경험했던 전문가들의 실무회의를 거치면서 합리적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왔다. 그 덕분에 과거의 이사회는 사전정지작업을 거친 정제된 안건을 사실상 추인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이사회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회의 도중 파열음이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실무회의의 역할은 축소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무국장들을 제치고 단장들이 앞장서서 의견들을 주고받다보니 이사회의 모습도 달라졌다. 현실을 모르는 설익은 아이디어가 난무한다. 때로는 기존의 규정까지 무시하는 주장도 용감하게 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생산적으로 토론해서 좋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다.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를 면박주는 일도 생겼다. 고함소리가 회의장 밖으로도 들린다. 이사회에서 주고받은 말이 그대로 공개된다면 파장이 클 것 같다. KOVO는 회의록 작성을 위해 이사회의 발언을 녹취하고 있다. 그 음성파일이 혹시나 밖으로 새어나올까봐 두렵다.

지금 이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눈앞의 이익에만 너무 매달린다는 것이다. 단장들은 내 임기 동안 우리 팀이 손해를 보지 않고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생각에 미래를 보지 않는다. V리그 최고의 의결기관에서 대한민국 배구와 리그의 발전을 위한 장기계획에 관심을 두지 않다보니 비전도 없다. 길어야 2~3년의 임기를 마치면 V리그에 관심도 두지 않을 단장들은 너무나 큰 권한을 가졌는데, 안타깝게도 잘못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결정만 하면 모든 게 다 된다”는 위험한 태도다. 여자부 개인연봉 상한선 25% 조항도, 아시아쿼터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그렇다. 모두 문제가 많다고 얘기하지만 이사회는 무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시즌 중단과 조기종료 때도 판단의 바탕에는 ‘우리 팀의 이익’이 깔려있었다. 팬과 스폰서, 주관방송사는 물론이고 선수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그들만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성적이 나쁜 학생 몇 명이 빨리 이번 학기를 끝내자고 앞장서서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이사회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우등생이 손해를 보는 모양새다. 이사회에서 간혹 튀어나오는 황당한 생각은 팬들의 분노마저 유발한다. 과거의 이사회도 그런 의견이 간혹 있었지만, V리그 공통의 이익이라는 채를 통해 많은 것을 걸렀다. 지금은 문제의견을 걸러주는 과정이 사라졌다.

최근 이사회는 몇몇 특정구단 단장들의 큰 목소리에 이끌려가고 있다. 이들의 생각이 리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하향평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이번 여자부 샐러리캡 결정과정에서 확인됐듯 이제는 몇몇 구단이 담합해서 표 대결을 요구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이사회가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했는지 안타깝다. 합리성이 조금은 남아있었던 과거 V리그의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갈수록 노골적인 구단의 욕심을 자제시키려면 KOVO가 올바른 명분과 여론의 힘으로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힘의 균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리더십의 부재를 말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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