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발리볼] 박철우 한국전력 이적, 숨겨진 협상 이야기

입력 2020-04-19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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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 스포츠동아DB

2020년 V리그 남자부 FA시장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삼성화재의 상징이자 미래 감독감이라는 박철우가 한국전력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2004년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가 2010~2011시즌을 앞두고 남자부 첫 번째 FA이적선수로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지 10년 만에 한국전력의 영입제의를 받아들였다. 2010년 6월 박철우를 빼앗겼던 현대캐피탈은 보상선수로 최태웅을 데려갔고 이후 지금의 배구역사가 만들어졌다.

16일 한국전력의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권영민 코치가 얘기를 꺼낸 지 단 하루 만에 계약까지 끝낸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한국전력은 이번 계약으로 얻은 것이 많다. 우선 전력이 탄탄해질 전망이다. 지난 시즌 득점 7위를 기록한 국내 최고의 토종 라이트를 영입했다. 트라이아웃을 신청한 외국인선수 가운데 검증된 레프트 알렉스나 요스바니를 선택할 경우 좌우공격의 파괴력은 훨씬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서재덕이 군에서 돌아오면 포지션의 중복은 있겠지만 일단 새로운 시즌은 전력이 훨씬 강해질 것이다.

그동안 선수단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아오던 한국전력으로서는 박철우를 영입해 과감한 변화의 의지를 팬들에게 보여줬다. 한국전력은 보상선수를 대비해 OK저축은행의 이시몬도 영입했다. 센터보강을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한 트레이드도 할 생각이다. 이번에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박철우를 영입하기 전까지 한국전력은 FA영입 전쟁에서 빈손이었다. 경영진으로부터 전력보강을 위해 과감하게 돈을 써도 좋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탐냈던 선수는 우리카드 나경복이었다. FA선수 역대 최고액을 준비해놓고도 정작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스포츠동아DB

또 다른 영입대상은 우리카드 이수황이었다. 팀의 약점이던 센터를 보강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계약직전까지 갔다.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전력보강을 위해 한국전력의 장준호를 데려갔다. 결과적으로 이수황은 대한항공으로 진로를 틀었다. 졸지에 한국전력은 원하는 선수를 한 명도 잡지 못한 채 필요한 센터마저 빼앗기는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권영민 수석코치가 발상의 전환을 했다. 현재 FA시장에서 팀의 전력을 크게 높여줄 센터가 없다면 차라리 박철우를 영입해서 양쪽 날개공격을 강화하자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선수 지원자 가운데 레프트에는 탐나는 자원이 있지만 라이트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현실도 감안했다.

접촉은 권영민 코치가 맡았다. 두 사람은 인연이 있었다. 2004년 경북 사대부고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려던 박철우에게 “이왕 배구를 하려면 프로 팀에 와서 하라”는 충고를 했던 사이였다. 그 충고를 받아들였던 박철우의 프로생활 연착륙을 도와준 이도 권영민 코치였다. 야간훈련 때마다 박철우에게 공을 올려주며 함께 훈련했던 기억이 많았다. 권 코치는 박철우의 성실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좋아했다. 박철우도 권 코치의 뜨거운 배구열정을 잘 알기에 함께 해보자는 제의를 선뜻 뿌리치지 못했다.

이번 시즌 아픈 몸을 이끌고 삼성화재의 승리를 위해 노력해온 박철우의 헌신은 장병철 감독도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새로운 팀 문화를 만들기 위해 리빌딩을 선택한 장 감독도 후배들이 곁에서 보고 배울 좋은 선배의 중요성을 알았다. FA시장에서 센터영입이 어렵다면 사이드 블로킹을 강화해서 센터의 약점을 커버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도 했다.

사진제공 | 한국전력 배구단


두 사람의 설득에 박철우의 표현처럼 10%도 되지 않던 한국전력행 가능성은 조금씩 높아졌다.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자 코칭스태프는 구단에 알렸다. 공정배 단장은 17일 오전 경영진에게 박철우 영입의사를 밝혔고 OK사인을 받아왔다. 의사결정이 늦어서 자주 손해를 봐왔던 한국전력으로서는 이례적인 초스피드 결정이었다.

구단의 허락이 떨어지자 17일 박철우와 본격적인 협상을 했다. 박철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돈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도리 때문에 이적을 꺼려했다. 하지만 장병철 감독이 “우리 팀을 위해서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담아 설득하자 마음을 돌렸다. 이 바람에 새 감독을 내정해놓고도 발표를 못 한 채 시간만 보내던 삼성화재로서는 팀의 상징인 베테랑을 두 눈 뜨고 내줘야 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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