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 알렉스-대한항공 비예나-현대캐피탈 다우디(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15일 오후 3시. V리그 남자부 구단들에게는 시즌 농사의 성패를 결정할 중요한 순간이다.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벌어지는 2020년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 그 무대다. 이전과는 달리 현장에서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할 수 없다. 에이전트들이 보내준 영상만 보고 성공가능성을 예측해야 하는 깜깜이 지명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당초 추진했던 체코에서의 트라이아웃이 취소됐다. 국내에서도 행사를 못하자 영상을 통한 지명방식을 결정했다. 어느 때보다도 선택에 위험요소가 크다. 외국인선수들의 이적도 쉽지 않아 잘못 뽑으면 교체하기도 어렵다. 어느 때보다도 그 팀의 정보력과 행운이 필요하다.
● 어떤 방식으로 트라이아웃이 진행되나
의외로 행사는 짧게 끝난다. 각 팀이 이미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드는 선수를 복수로 점찍어놓은 상태다. 지명 순번이 오면 플랜 A,B,C 가운데 남아 있는 선수를 호명하면 끝난다. 선수가 없어서 감독, 단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일도 없다. 에이전트와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구단이 선수를 선발하면 그 선수의 소개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상위순번으로 지명이 가능한 외국인선수들은 현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지명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시도할 생각이다. 에이전트에 협조를 부탁했다. 시차와 통신사정 때문에 매끄럽게 인터뷰가 진행될지는 KOVO도 확신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구슬 확률추첨이다. 지명순번만 가리면 행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추첨확률은 지난 시즌 성적의 역순이다. 구슬은 한국전력(35개)~KB손해보험(30개)~삼성화재(25개)~OK저축은행(20개)~현대캐피탈(15개)~대한항공(10개)~우리카드(5개)다. 140개의 구슬이 어떤 마술을 부릴지 알 수 없기에 누구도 1순위를 장담할 수 없다.
● 각 구단의 얘기를 들어보니
최대한 안정적인 선택을 꿈꾼다. 에이전트들이 보내준 영상만 보면 모두가 엄청난 기량을 가졌기에 영상보다는 그 선수가 지금껏 쌓아온 통산성적과 활약했던 리그의 수준이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선수를 뽑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V리그에서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들이 더 유리하다. 예전 같으면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갑자기 눈에 들어서 발탁된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사례가 드물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은 팀에서 탐내는 선수는 KB손해보험에서 뛰었던 알렉스다. 한국전력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알렉스는 폴란드리그에서 소속팀과 2년 계약을 맺었지만 1년 만에 파기하고 트라이아웃을 신청했다. 코로나19 탓에 유럽의 많은 리그가 언제 정상적으로 열릴지 알 수 없고 선수들의 연봉도 30%씩 깎였다. V리그만 연봉을 100% 다 줬다. 연봉(첫 계약 30만 달러, 재계약 35만 달러)과 세금혜택, 집과 자동차, 항공권 등의 혜택까지 감안한다면 실제로 연봉 50만 달러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 정도 몸값이면 현재 국제배구시장에서 특급이다. 그래서 에이전트가 설득했고 알렉스도 이를 알기에 지원을 했다.
이번 트라이아웃에서는 레프트 포지션을 원하는 팀이 의외로 많다. KB손해보험, OK저축은행, 우리카드도 기회만 온다면 레프트에서 잘하는 선수를 뽑겠다고 한다. 한국전력은 FA영입선수 박철우가 라이트에서 큰 활약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KB손해보험도 베테랑 김학민을 라이트에 두는 것이 전력구성상 더 좋다고 판단한다. OK저축은행과 우리카드도 조재성과 나경복이 있기에 라이트 포지션의 외국인선수보다는 레프트 겸용을 더 원한다. 처음부터 라이트만 보고 있는 팀은 삼성화재다.
사진제공ㅣKOVO
● 에이전트의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트라이아웃
대한항공의 비예나와 현대캐피탈의 다우디는 새로운 시즌에도 함께한다. 14일까지 KOVO에 재계약서를 제출하면 끝이다. 두 선수는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고국에도 가지 못하고 있어서 이번 트라이아웃 행사장에 참가도 가능하다. 다만 KOVO가 형평성 차원에서 현장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방침을 알려줬다.
이번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선수가 아니라 에이전트다. 선수를 대신하는 그들의 신뢰성이 검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각 구단은 점찍은 선수에 정말로 알고 싶은 것들이 있다. 평소의 성격과 생활태도, 동료들과의 관계,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은 장단점과 부상 정도 등의 디테일한 내용이 궁금하다. 최종지명을 앞두고 에이전트들에게 이 것들을 물어봤는데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의 거래는 없다.
그래서 이번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은 선수의 실력보다는 에이전트의 신뢰성 검증무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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