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 이상열 감독. 스포츠동아DB
KB손해보험은 남자부 7개 팀 중 유일하게 새 토종선수의 영입이 없었다. 자유계약선수(FA) 영입도, 유출도 없었다. 4명을 군에 보내고, 2명과는 계약을 끝냈다. 전력이 얇아졌다. 지난 시즌과 달라진 것은 딱 2가지다. 레전드 이상열 감독으로 바뀐 것과 새 외국인선수로 노우모리 케이타를 뽑은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교체가 어쩌면 상상외의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 이 감독은 “KB손해보험 멤버의 이름값이 다른 팀들보다 앞서지도, 기량이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이런 팀들은 많은 훈련으로 기량을 발전시키고, 약점을 줄여야 성공한다고 그동안의 V리그는 믿었다. 상대팀이 따라가지 못할 엄청난 훈련으로 성과를 냈던 팀도 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반대의 선택을 했다. 기술보다는 체력과 컨디션, 분위기로 반전을 꿈꾼다.
이상열표 체력배구와 대범한 배구
이 감독의 생각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거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킨다. 그는 기술의 열세를 인정하면서 극복방법으로는 더 많은 훈련이 아니라 상대보다 앞선 체력을 택했다. 이를 위해 “많이 쉬는 것도 훈련이다. 잘 쉬고 경기 때 상대보다 더 좋은 체력과 컨디션을 유지해 기량의 차이를 좁혀야 이길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고 밝혔다.대부분의 팀은 토요일 오전훈련 후 1박2일간 외박을 나가지만, KB손해보험 선수들은 금요일까지만 훈련한 뒤 쉰다. “이미 마음이 콩 밭에 가 있는 선수들을 토요일 오전까지 잡아두고 훈련해봐야 성과는 없다. 화끈하게 금요일까지 훈련을 마치고 이틀간 잘 쉬다 오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개막이 가까워오지만 여전히 이 말을 지키고 있다.
이 감독은 잔소리도 별로 하지 않는다. 훈련이나 연습경기 때 잘못한 것을 지적한다고 해결되지 않고, 선수 스스로도 알기에 굳이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뜻에서다. 과거 KB손해보험은 위기의 순간 더 긴장하고 예민해져서 범실로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대범한 사령탑 덕분에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새롭게 해보려고 노력한다.
관건은 케이타의 체력?
KB손해보험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때 전체 1순위 구슬을 뽑았다. 선택은 모두가 가능성을 탐냈던 19세의 케이타였다. 7월 2일 가장 먼저 입국했지만 코로나19에 걸려 오랫동안 격리 치료를 받았다. 팀 훈련 참가가 늦어져 제천 KOVO컵에도 출전하지 않았다. 9월 14일 현대캐피탈과 연습경기에 처음 출전한 케이타는 임팩트가 컸다. 최고 점프높이 374㎝를 기록한다는 엄청난 공격타점이 눈길을 끌었다. 어느 팀 감독은 “네트 상단 위로 가슴이 올라온다”며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 날아가면서 때리는 서브도 위력이 있었다. 좋은 폼 덕분에 상대 리시버는 반응하는 시간이 줄어 대응에 애를 먹을 듯하다.반면 체력과 파워는 미지수다. 빡빡한 시즌 일정과 전력구성상 45% 이상 때려줘야 할 공격부담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을지 여부와 회복능력은 장담하지 못한다. 케이타는 16세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해 아직 체계적 웨이트트레이닝을 받아본 적이 없다. “현재는 일반인의 몸이지만 이제부터 프로선수의 몸으로 단련시켜야 한다”는 구단의 말처럼 체력강화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더 무서워질 것이다. 과거 삼성화재 레오는 비슷한 체형이지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파워를 높여 성공했다. 케이타가 레오처럼 되면 KB손해보험은 무조건 성공한다.
KB손해보험 황택의. 스포츠동아DB
새로운 리더 황택의의 커진 역할과 달라진 얼굴들
V리그 공식 최고연봉을 받는 세터 황택의가 케이타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면 KB손해보험은 봄배구에 접근할 수 있다. 이제 팀의 리더는 황택의다. 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주전 레프트 2명과 외국인 라이트까지 모두 황택의보다 나이가 어리다.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하는 편안함이 배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모두가 믿는다. 세터가 공격수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공을 올려줄 때 더 창의적이고 공격적이 된다. 황택의는 이제 동료들을 위해 먼저 지갑도 연다. “쉬는 날에는 자신이 예약한 펜션으로 동료들을 데리고 가서 즐겁게 놀다 올 정도로 이제는 주위를 챙긴다”고 프런트는 귀띔했다.항상 팀의 고민이었던 레프트는 주전의 얼굴이 달라졌다. 에이스 역할을 해온 김정호의 파트너로 2년차 김동민이 선택받았다. 신인드래프트 지명순번이 앞섰던 홍상혁과 경쟁에서 이겼다. 이 감독은 “모두에게 기회는 공정하게 준다. 대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주전”이라는 원칙대로 했다. 김동민은 리시브 능력에서 앞섰다. 김정호(186㎝), 김동민(191㎝)이 리시브의 안정감을 높여준 덕분에 황택의도 훨씬 편하게 공을 배분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높이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다른 변화는 정민수가 빠져 나간 리베로 자리다. 베테랑 곽동혁과 김진수가 역할을 나눠야 한다. 37세의 베테랑 곽동혁이 얼마나 힘든 일정을 버텨줄지가 관건이다. 이 감독은 최대한 많이 쉬게 하면서 체력을 비축시켜주려고 한다. 센터는 박진우~구도현~김홍정으로 지난 시즌과 같다. 케이타가 있기에 속공 비율이 높아지진 않을 듯하다.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또 다른 변화도 있다. 구단주의 관심이다. 처음으로 전임단장을 임명했다. 황택의에게 최고연봉을 안기는 등 배구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도 공격적으로 하겠다는 뜻을 보여줬다. 케이타의 첫 연습경기 때는 조용히 경기를 보고 갈 정도로 열의가 높다. KB손해보험은 겉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안으로 파고들어보면 많은 부분이 조금씩 변했다. 이 조그만 변화의 결과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