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이다영. 스포츠동아DB
중계를 담당했던 KBSN스포츠가 수훈선수인 흥국생명 이다영을 인터뷰할 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그는 이날 개인통산 500득점과 한 경기 개인최다인 6개의 블로킹을 기록했다. 이숙자 해설위원은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던 이다영을 향해 “혹시 우는 것 아니죠. 울었다면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순간 이다영은 감정이 북받치는 듯 고개를 숙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뒤 “그동안 자신감이 떨어지고 잘 안됐는데 (이)재영이도 도와주고 (김)연경 언니도 도와줬는데 미안해서 많이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짧은 발언이었지만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이적을 결정한 세터. 전 소속팀의 열성 팬들은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다. 그동안 V리그의 흥행에 앞장서온 쌍둥이 자매의 결합이 리그와 흥국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이다영은 자주 화제의 중심에 섰다. 좋았을 때도 있었지만, 나빴을 때도 많았다. 흥국생명이 3라운드에 주춤거릴 때는 불협화음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았다.
그를 향한 비난은 현대건설 때부터 있었다. 다행히 잘 버텨왔다. 이는 팀의 결과에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는 세터의 운명이다. 사람들은 코트나 소셜미디어(SNS)에서 드러나는 모습만 생각하지만, 화려한 세리머니와 웃음 뒤에 가려진 세터만의 고민은 있다. 명세터 출신으로 누구보다 이를 잘 알기에 이숙자 위원도 눈물의 의미를 물었을 것이다.
“세터는 시간이 지나야 자신의 색깔이 나오는데 흥국생명에서 어떤 색깔을 보여주고 싶냐”는 질문에 이다영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팀에 녹아들고 싶다. 우리 팀은 나만 잘하면 된다”고 답했다. 자신이 이적해오기 전부터 강팀이었고, 이름 앞에 ‘세계적 선수’라는 칭호가 항상 따라다니는 김연경의 가세로 우승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흥국생명의 주전 세터로서 그가 어떤 생각과 부담감을 갖고 있는지 잘 드러났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이런 이다영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지금 이다영이 느끼는 부담감은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선수’에게 공을 올려줘야 하는데 결과가 좋으면 김연경이 잘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은 세터가 뒤집어쓰는 상황을 의미한다.
어떤 세터도 김연경에게 공을 올려주기는 쉽지 않다. 잘해야 본전이다. 김연경이 유별스럽게 까칠한 것도 아니다. 세터를 편하게 대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보이는데, 세터와 에이스의 역할이 그렇게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박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조송화도 이재영에게 공을 올려주면서 이런 비슷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로공사 베테랑 정대영도 팀의 상승세 이유를 설명하면서 “세터 이고은이 우리들에게 잘해주려고 하고 우리도 잘해주려다 보니 좋은 뜻이지만 서로 부담을 느꼈고, 그래서 힘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말했다. 항상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칭찬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V리그의 모든 세터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