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박병호-두산 김현수(오른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12일 베네수엘라전 중심타자 기습도루 성공
단판승부의 흐름 바꾸는 돌발변수로 주목
야구국가대표팀이 ‘첫 콜드게임 승’을 거둔 베네수엘라전에선 또 다른 수확이 있었다. 도루로 상대를 흔드는 한국 특유의 ‘발야구’를 확인한 것이다.
국제대회 때 한국의 스피드는 상대를 흔드는 ‘무기’다. 상대적으로 스몰볼에 능한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빠른 스피드를 지닌 타자들이 누상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이를 통해 상대의 볼 배합을 교란시켜 장타를 노리는 플레이에 특화된 야구를 추구하는 것이 한국이다. 대표팀 테이블세터로 경험 많은 이용규와 정근우(이상 한화)를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도루왕’ 출신인 두 명 모두 여전히 단독도루에 능하고, 작전수행능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테이블세터의 출루와 작전, 중심타선의 해결로 이어지는 공식은 많이 볼 수 없었다. 상대 역시 우리를 잘 안다. 발 빠른 두 타자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8일 일본전과 11일 도미니카공화국전까지는 도루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12일 베네수엘라전은 달랐다. 13-2로 완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도루가 2개 나왔다. 점수차를 벌리기 전에 나온 도루들이었다. 모두 상대의 허를 찌른 장면이었다.
스타트는 ‘홈런왕’ 박병호(넥센)가 끊었다. 3-2로 앞선 3회말 2사 1루 나성범(NC) 타석에서 2루를 훔쳤다. 박병호는 도미니카공화국전에 이어 베네수엘라전에서도 방망이는 침묵했지만, 발로라도 팀에 도움이 되려고 했다. 박병호는 2012년 20홈런-20도루 달성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발이 빠른 스타일은 아니다.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능력은 좋다. 변화구가 들어올 타이밍을 정확히 예측해 도루에 성공했다.
4회에는 3번타자 김현수(두산)가 뛰었다. 6-2로 달아난 2사 1루서 이대호(소프트뱅크) 타석 때 2루를 훔쳤고, 적시타로 득점까지 성공했다. 김현수의 도루가 쐐기점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쉽게 뛸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나온 중심타자의 도루 시도였다.
발이 빠른 타자만 뛰는 게 아니다. 남은 경기, 특히 8강전 이후 단판승부에선 승부의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처음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합류한 도루 분야 스페셜리스트인 김평호 1루코치(삼성)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상대의 투구를 관찰하고, 볼배합 패턴과 습관을 간파해 주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도루에 능하지 않은 중심타자 박병호와 김현수가 이를 입증했다.
타이베이(대만)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