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선 올해 초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KBO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종종 투수가 타석에 서기도 한다. SK 김광현(왼쪽)은 신인 시절이던 2007년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낸 바 있고, 한화 권혁은 지난해 5월 17일 대전 넥센전에서 6-6 동점이던 9회말 2사 만루 찬스서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등장해 이색 볼거리를 제공했다.
최동원 1984년 승리투수·결승타 동시기록
선동열·임창용·송진우 등도 통산 1안타
최근 메이저리그(ML)에선 내셔널리그(NL)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 여부가 화두가 되고 있다.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DH)’는 수비는 하지 않고 투수 대신 타격만 하는 타자를 일컫는데, 1973년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아메리칸리그(AL)와는 달리 NL은 1876년 리그 창설 이후 투수가 타격을 하는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지명타자 제도는 ML에서 양대 리그의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해왔다.
● 뜨겁게 달아올랐다 꺾인 NL 지명타자 제도 논쟁
NL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이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은 ML을 관장하는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연초 NL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취임 2년째를 맞은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지난달 22일(한국시간) “모든 팀이 같은 룰로 경기해야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르면 2017년부터 NL에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 뜻을 드러냈다. 이에 앞서 ESPN의 칼럼니스트 짐 보든이 연초 NL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주장한 칼럼을 게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불을 지핀 바 있다.
이후 ML 단장들은 물론 현역선수들도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1월 27일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ESPN과의 인터뷰에서 “가까운 미래에 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당분간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NL이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전체 구단의 4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1월말 플로리다에서 열린 구단주 회의에서 NL 구단주들의 반대에 부딪쳤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KBO리그는 원년부터 지명타자 제도
ML처럼 일본프로야구도 양대 리그가 지명타자 제도를 놓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퍼시픽리그(PL)는 AL처럼 지명타자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센트럴리그(CL)는 NL처럼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투수가 직접 타석에 서서 공격을 한다. 반면 단일리그인 KBO리그는 1982년 출범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고수해왔다. 투수 대신 공격력이 강한 지명타자를 활용하는 것이 득점생산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KBO리그에서 투수가 타격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 도중 선수 교체를 하면서 종종 투수의 타격을 감상할 기회가 있다. 야구규칙 6.10 ‘지명타자 소멸’ 규정이 있는데, ▲지명타자가 수비에 나갔을 때 ▲등판 중의 투수가 다른 수비위치로 나갔을 때 ▲지명타자의 대타자 또는 대주자가 그대로 투수가 되었을 때 ▲등판 중의 투수가 지명타자의 대타자 또는 대주자가 되었을 때 ▲타순표에 기재된 야수가 투수로 되었을 때 ▲야수를 교체하면서 등판 중 또는 새로 출장하는 투수를 타순표에 넣었을 때다. 이럴 때 그 팀은 지명타자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수가 타석에 서야 한다.
● KBO리그 원년 김성한의 투타 원맨쇼
팬들은 투수가 타격을 하는 모습을 보면 묘한 긴장감과 재미를 느낀다. 특히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KBO리그에선 투수의 타격을 볼 기회가 드물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화 권혁과 박정진이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등장해 이색 볼거리를 제공한 바 있다.
투수의 타격을 말하자면, KBO리그 초창기에 투수와 타자를 넘나든 김성한을 빼놓을 수 없다. 원년인 1982년 투수로 10승을 올리면서 타자로도 3할 타율(0.305)을 작성한 진기록의 주인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시즌 80경기로 치러진 그해 김성한은 26경기에 등판해 완투 3차례, 완봉 1차례를 포함해 10승5패1세이브, 방어율 2.88을 기록했다. 팀 내 다승 1위, 방어율 1위였다. 그러면서 타자로 전 경기에 출장해 69타점으로 원년 타점왕에 올랐고, 두 자릿수 홈런(13개)과 도루(10개)를 기록하는 등 팔방미인으로 활약했다. 김성한이 등판하는 날 해태는 지명타자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팀과 대결했다. 2차례나 한 경기에서 결승타(당시 승리타점)와 승리투수를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다. 투수로는 1986년까지 활약했는데, 통산 15승10패2세이브, 방어율 3.02의 성적을 남겼다.
● 전설적 투수들의 타격 성적
김성한은 초창기 특수 사례로 보고, 전문 투수만 놓고 얘기하자면 최동원도 방망이로 전설 한 토막을 남겼다. 롯데 시절이던 1984년 8월 16일 구덕구장에서 열린 MBC전. 1-1 동점이던 8회말 1사 만루서 상대 에이스 하기룡을 상대로 2타점 우월2루타를 날려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김성한을 제외하면 KBO리그 최초 승리투수와 결승타 동시 기록. 최동원은 통산 1타수 1안타를 기록해 ‘영원한 10할 타자’로 남아있다.
선동열도 안타의 발자취가 있다. 통산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는데, 해태 시절이던 1988년 7월 21일 광주 빙그레전에서 1-1 동점인 9회말 2사 1루서 한용덕을 상대로 우전안타를 때렸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연장 13회초 고원부에게 홈런을 맞고(시즌 첫 피홈런)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OB 윤석환(통산 3타수 1안타)은 1985년 6월 9일 삼성 권영호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기록한 뒤 세이브를 따냈고, 한용덕(통산 3타수 1안타)은 빙그레 시절이던 1992년 4월 19일 태평양 정명원에게서 1타점 적시타를 뽑고 완투승까지 거뒀다.
임창용(통산 7타수 1안타)은 해태 시절이던 1998년 4월 27일 OB전에서 4-2로 앞선 9회초 2사 1·2루서 상대 마무리 진필중을 2타점 2루타로 두들긴 뒤 세이브를 올렸다. 삼성 시절(2007년 8월 18일 LG전)에는 3루 대주자로 나가 강봉규의 희생플라이 때 결승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한화 송진우(통산 4타수 1안타)는 2001년 6월 3일 청주 LG전서 7-7 동점인 9회말 1사 2·3루서 그해 다승왕 신윤호를 상대로 끝내기 우전안타를 날렸다. 역대 유일한 투수의 대타 끝내기안타 기록이다. LG 서승화는 통산 8타수 3안타(0.375)를 기록하며 타격에 소질을 보였다.
● 2005년 이후 기록들을 살펴보니
2005년 이후로 좁혀 보면 전문 투수가 안타를 기록한 것은 4차례였다. 지금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는 두산 조현근(통산 2타수 1안타)이 2005년 6월 7일 대구 삼성전에서 7-1로 앞선 9회초 2사 1·2루서 대타로 나서 2타점 3루타를 뽑아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역대 유일한 투수의 3루타 기록이다. 두산 임태훈(2타수 1안타)은 2007년 5월 11일 한화전에서 8회 안타를 기록한 뒤 4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올렸다. 2008년 SK 가득염과 2013년 한화 윤근영(현 kt)은 깜짝 안타를 뽑아내며 통산 10할 타자(1타수 1안타)로 남아있다. 안타는 뽑지 못했지만 SK 김광현은 신인 시절이던 2007년 8월 30일 수원 현대전에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타점을 올리기도 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