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베이스볼 벤치스토리] 무명반란 양의지의 찬란한 봄

입력 2010-05-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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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양의지.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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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에 들어갔다. 누군가 읽다 놓아두고 간 스포츠 신문이 눈에 띄었다. 무심히 집어들었다. 그러다 잠시 후 눈을 비볐다. 2010년 3월31일자 1면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글자. ‘양의지, 무명반란!’ 생애 첫 선발출장에서 홈런 두 방을 친 다음날이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수훈선수 인터뷰라는 걸 했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이름과 얼굴이 실렸다. 두산 포수 양의지(23·사진)는 그 때 “마냥 신기했다”고 했다. 입단 후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지난 2년은 경찰청 야구단 소속이었다. 하지만 늘 그리던 꿈이 있다. 1군 경기에서 당당히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그리고 줄 지어 기다리는 동료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달려가는 모습. 늘 궁금했던 그 느낌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짜릿했다.


○군복무 2년간 벼려온 꿈이 현실로

경찰청 시절, 양의지의 관물함 안쪽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제대 후에는 그 누구와 부딪쳐도 이겨내야 한다. 그럴 만한 실력을 쌓아 이 곳을 떠나자.’ 입대 첫 시즌이 시작되기 전, 직접 써서 붙여놓은 2년간의 목표였다. 그의 프로 지명 순위는 2차 8번. 군대에 다녀와서도 그저 그런 선수로 남는다면, 더이상 그 누구의 기대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관물함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시선이 머물렀고, 매번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언제나 ‘작년보다 올해 더 잘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비록 복귀 후 첫 전지훈련을 어깨 부상으로 허송세월했지만, 시범경기를 치르는 동안 그 때의 준비가 빛을 발했다. 3순위 백업 포수로 여겨졌던 그는 시즌 두 번째 경기부터 지금까지 어엿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다.

물론 순탄하기만 한 나날은 아니다. 보약을 챙겨먹으며 아무리 몸관리를 해도, 첫 풀타임 시즌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하지만 “기죽지 말고 편안하게 하라”는 동료들의 박수와 응원으로 매일을 버틴다. 잘한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한 마디씩 던지는 친구들도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중 으뜸은 당연히 가족. 광주 진흥고 출신인 양의지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관중석에 앉아있던 13일 광주 KIA전에서 또다시 홈런을 쳤다. 경기 후 다함께 모인 식사 자리. 아들에게 ‘의지’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애써 미소를 감춘 채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했다. 양의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고 말이다.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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