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내야수 고영민(32). 스포츠동아DB
은퇴라는 단어를 꺼내들기까지 고민이 잇따랐다. 고영민은 지난해 11월 친정팀 두산으로부터 방출통보를 받았다. 구단이 발표한 65인 보류선수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2002년 프로 데뷔 이후 15년간 몸담았던 친정과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은퇴의 기로에서도 현역연장을 향한 의지를 쉽게 꺾을 수는 없었다. 방출 직후 ‘선수’로서 재기하기 위해 다른 구단의 러브콜을 기다렸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최근 이렇다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30대 중반 내야수를 품을 구단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고영민은 최근 스포츠동아와 전화통화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게 현실인데 어쩌겠는가”라며 짧은 은퇴의 변을 남겼다.
그 사이 두산 시절 연을 맺었던 kt 김진욱 감독이 고영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새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김 감독은 “아직 은퇴하기엔 이른 나이지만, 일찍이 지도자로서 재목감으로 평가했다”며 선임 이유를 밝혔다. 이어 “두산에 함께 있을 때 일화가 있었다. 후배 내야수의 포구동작에 부족함이 많아 고영민에게 지도를 직접 지시했다”면서 “그런데 고영민이 자신의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하더라.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숨은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고영민과 kt간 코치계약은 최종도장만 남은 상태다.
비록 고영민은 현역 유니폼을 벗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꽤 굵직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빠른 발과 센스 넘치는 수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고영민. 당시 팀 동료 이종욱(37), 민병헌(30)과 함께 ‘두산 육상부’를 구축해 팀의 발야구를 이끌었다. 수비 역시 일품이었다. 특히 2루수임에도 외야까지 나가 빗장을 거는 모습은 KBO리그 수비 패러다임을 바꿔 지금까지도 많은 후배들이 그의 포메이션을 애용하고 있다. 팬들은 그의 전매특허 수비에 ‘고제트’, ‘2익수’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야구인생 정점은 국제무대였다. 고영민은 2008베이징올림픽 쿠바와 결승전에서 경기를 끝내는 병살 플레이로 한국야구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그러나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프로 16번째 시즌을 앞두고 현역 은퇴에 이르게 됐다. 통산성적은 879경기 타율 0.252, 292타점, 427득점, 46홈런, 133도루.
한편 kt 관계자에 따르면 고영민의 보직은 2군 작전주루 혹은 수비코치 중 하나로 정해질 전망이다. 막내 구단의 젊은 선수들에게 고영민만이 가진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이 ‘코치’로서 첫째 임무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