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운명바꾼짐레이리츠의한방

입력 2009-01-28 1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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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는 결정적인 홈런 한 방으로 승부가 갈린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1951년 메이저리그 최고 라이벌인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의 NLCS에서 나온 바비 톰슨의 ‘세상에 울려 퍼진 한 방’(The shot heard round the world)이 그랬고, 1978년 ‘다저스-자이언츠’에 못지않은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간의 ALCS에서 터졌던 버키 덴트의 결승 3점 홈런 역시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팬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됐다. 이외에도 유일한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인 빌 마제로스키와 1993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월드시리즈 권좌에 올려놓은 조 카터의 홈런, 비록 팀은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 명장면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1975년 월드시리즈에서 칼튼 피스크가 때린 폴대를 맞추는 홈런까지 메이저리그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수의 극적인 홈런을 연출해 냈다. 하지만, 1996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짐 레이리츠가 터뜨린 3점 홈런만큼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홈런이 또 있었을까? 1996년 당시 뉴욕 양키스는 현재와 같은 메이저리그 최강팀이 아니었다. 1980년대의 오랜 암흑기를 지나 팀을 재건하던 시점이었고,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 또한 과도한 투자를 자제하던 시기였다. 양키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맞붙었던 ALCS에서도 객관적인 전력 비교에서 열세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1차전 8회말에 터진 데릭 지터의 우익수 플라이(혹은 담장을 맞추는 타구)를 팬이 낚아채 홈런으로 만들어준 사건(?) 덕분에 기세가 올랐고, 결국 오리올스를 4승 1패로 잠재우며 1981년 이후 15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15년 만에 진출한 월드시리즈에서 1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려봄직한 양키스였지만,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대다수의 전문가는 양키스의 우세를 점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월드시리즈에서 맞붙게 될 내셔널리그 우승팀이 다름 아닌 1995시즌 월드 챔피언이자 메이저리그 최고의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였기 때문. 사이영 선발 3인방과 강력한 불펜이 조화를 이룬 마운드와 기존의 프레드 맥그리프에 새롭게 등장한 ‘더블 존스’의 활약은 브레이브스의 백 투 백 우승을 점치기에 충분한 전력이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팬들의 예상대로 브레이브스는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번의 원정 경기에서 양키스를 압도했다. 존 스몰츠와 그렉 매덕스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빈틈없었고, 방망이마저 양키스를 압도하며 3,4,5 차전이 펼쳐지는 브레이브스의 홈구장 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에서 시리즈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팀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나타나듯이 1996년의 짐 레이리츠도 그러했다. 데이빗 콘-마리아노 리베라-존 웨틀랜드를 내세운 완벽한 계투 작전으로 3차전을 잡아내 기사회생 한 양키스는 4차전에서 브레이브스의 선발 데니 니글의 퀄리티 스타트와 4번 타자 프레드 맥그리프의 홈런 등에 막혀 7회까지 3-6으로 뒤지고 있었다. 니글의 뒤에는 당대 최고의 소방수 마크 월러스가 버티고 있었고, 브레이브스의 5차전 선발은 1996시즌 24승을 거둔 존 스몰츠로 예고 된 상태였다. 이대로 4차전을 패하면 월드시리즈 패권을 브레이브스에 넘겨줄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 하지만 양키스는 8회 터진 짐 레이리츠의 쓰리런 홈런에 힘입어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고, 연장 10회초 노장 웨이드 보그스가 결승점이 된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4차전을 8-6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4차전이 종료된 후 시리즈는 2승 2패 동률. 하지만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브레이브스 선수들의 사기가 한풀 꺾였고, 이와 달리 양키스 선수들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4차전에서 기세를 올린 양키스는 5차전에서 더욱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1996시즌을 최고의 해로 장식했던 당시 브레이브스의 에이스 존 스몰츠가 5차전 선발로 나서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지만, 양키스 선발로 나선 2년차 에이스 앤디 페팃이 스몰츠에 뒤지지 않는 구위로 브레이브스 타선을 압도하며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된 것. 5차전과 마찬가지로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인 풀턴카운티스타디움에서 펼쳐진 6차전에서(이 경기는 풀턴카운티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가 됐다.) 양키스는 바로 전 해인 1995년까지 4년 연속 사이영 상을 수상한 그렉 매덕스를 상대로 3회 3득점에 성공했고, 선발로 나선 지미 키의 절묘한 컨트롤이 브레이브스의 타선을 잠재우며 대망의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뉴욕 양키스의 ‘18년만의 월드 챔피언 등극’으로 시리즈가 종료된 후 MVP는 4세이브를 기록한 존 웨틀랜드가 수상했지만, 숨겨진 진짜 주인공은 시리즈의 향방을 알 수 없던 4차전에서 압도적이었던 브레이브스의 기세를 꺾는 동점 쓰리런 홈런의 주인공 짐 레이리츠였다. 1996시즌 우승을 차지한 양키스는 이후 그 기세를 이어나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룩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이 선봉에 섰던 1920~30년대와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이 각각 이끌었던 1940~50년대에 뒤지지 않는 새로운 왕조를 이룩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2001년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지만, 매년 우승후보로 평가 받을 만큼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으며 선수들도 ‘핀스트라이프’에 자부심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의 양키스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된 것은, 1996 월드시리즈 승부의 갈림길이었던 4차전에서 나온 짐 레이리츠의 한 방 덕분은 아니었을까? 조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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